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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Hera) 역시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이다. 제우스의 누이인 동시에 정실부인이다. 눈처럼 흰 팔을 갖고 있는 헤라는 매우 아름다웠다. 파리스의 사과를 놓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함께 미를 다툴 정도로 아름다웠다. 위엄어린 헤라의 모습은 정숙함이 깃들어 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이 여신은 해마다 '나우플리아(Nauplia)' 에 있는 '카타노(Kathano)' 샘에서 목욕을 하여 처녀성을 되찾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헤라에게 반한 제우스는 사랑을 고백하고 어울리길 원했지만 평소의 제우스의 행실을 잘 아는 헤라는 좀처럼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제우스는 어느 날 헤라가 산에 홀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둥의 신 제우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를 내리게 하고 자신은 조그만 뻐꾸기로 변신하여 여신의 무릎에 내려앉았다. 천둥이 무서워 가련하게 떠는 작은 새를 측은하게 여신은 가슴에 새를 안았다. 그러자 제우스는 제 본모습으로 돌아와 헤라를 덮쳤다. 여신은 완강히 반항했다. 제우스가 헤라를 정실부인으로 맞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여신은 제우스를 받아들였다.
올림포스에서의 결혼식은 성대했다. 무사이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했고 카리테스들이 춤을 추었다. 운명의 여신들인 모이라이가 축가를 지어 불렀고 모든 신들이 참석하여 축복했다. 헤라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와 나중에 헤라클레스에게 신부로 준 영원한 청춘의 신 헤베, 그리고 해산하는 여인들의 수호신인 에일레이튀이아를 낳았다. 또 제우스가 여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아테나를 낳자 자신도 남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올림포스 밑으로 던져 버렸다. 불사의 몸이었던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 일을 배운 후 아름다운 의자의 마술에서 헤라를 풀어 줄 수 있었다. 어머니 헤라를 의자에서 풀어준 후 아들과 어머니는 화해했다. 그 뒤로 이 두 모자(母子)는 사이가 남달리 좋았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 이외에도 헤라는 여러 아이들을 돌보았다. 특히 포세이돈의 딸이며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친딸처럼 키웠고 성장한 뒤에도 보호자가 되어 항상 보살펴 주었다. 또 '휘드라(Hydra)' 섬의 괴물 '레르나이아(Lernaia)'와 '네메아(Nemea)' 지방의 사자, 세상의 서쪽 끝인 '에스페리스(Esperis)' 지방의 사과나무를 지키는 뱀을 손수 키웠다. 후에 이 괴물들은 모두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고 만다. 이토록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한 뒤에도 제우스의 바람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제우스는 폭군 같은 가부장이었다. 이를 참을 수 없었던 헤라는 포세이돈과 아테나, 아폴론의 도움을 받아 잠든 제우스를 가죽 끈으로 묶어 버렸다. 천하의 제우스의 패권도 이로써 끝날 뻔했다. 그러나 친딸처럼 길러 준 테티스가 모든 신들의 존경을 받는 브리아레오스를 바닷속 깊은 곳에서 불러내어 제우스를 구출하는 바람에 이 음모는 실패하고 말았다.
일설에는 제우스의 패권에 가장 위협이 되었던 튀폰도 제우스의 폭거에 시달린 헤라가 제우스를 몰아내기 위해 낳은 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신화에는 푸로메테우스도 제우스를 견제하기 위해 헤라가 낳았다고 한다.
이런 시도가 모두 실패한 뒤로 복수의 방향을 제우스의 정부들에게로 돌리게 된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레토로 하여금 해산할 곳을 찾지 못해 헤매게 만든 것이 바로 헤라였다. 어느 땅이든 레토에게 해산을 허락한 곳은 헤라의 저주가 뒤따를 것이기에 모두가 레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델로스 섬만이 레토에게 해산을 허락했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에파포스를 낳은 이오는 헤라에 쫓겨 소의 모습으로 도망 다녀야 했다. 헤라는 자신의 연적인 이오를 눈이 백 개 달린 괴물 아르고스(Argos)를 시켜 감시하게 했다. 아르고스는 자신은 백개의 눈을 번갈아 자면서 이오는 잠들지 못하게 괴롭혔다. 가엾은 이오가 잠을 못 자게 하는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못한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이오를 구해 주었다. 헤르메스는 누구든 잠들게 하는 황금 지팡이로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을 모두 잠들게 한 후 죽여 버렸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을 공작의 꼬리에 붙여 주었다. 헤르메스가 아르고스를 죽인 후에도 헤라의 복수 는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헤라는 등에를 시켜 끊임없이 몸을 물어뜯게 하여 이오를 괴롭혔다. 물을 마시고 잠깐이라도 쉬고 싶어도 이오는 쉴 곳을 찾지 못했다. 헤라의 사주를 받은 각 지방의 신들은 이오를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오의 고난은 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오가 이집트에 도착하자 제우스는 이오의 몸에 손을 대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집트에서 이오는 에파포스를 낳는다. 아파포스는 커서 이집트의 왕이 된다.
아르카디아 지방의 요정 칼리스토 역시 제우스의 사랑을 받고 아들 아르카스를 낳은 벌로 헤라의 저주를 받아 곰으로변신했다 자기 아들의 창에 맞아 죽게 된다. 디오니소스의 신의 어머니인 '세멜레'에게 의심의 마음을 집어 넣어 제우스에게 본래대로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조르게 한 것도 헤라였다. 세멜레는 무시무시한 제우스의 모습을 보자 공포에 차서 죽고 만다. 헤라의 복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제우스가 어린 디오니소스를 세멜레의 언니 '이노(Ino)'에게 맡기자 이노와 그녀의 남편 '아타마스(Athamas)'를 미치게 하여 자신들의 자식들을 죽이게 만든다. 디오니소스 신 자신도 헤라의 저주를 받아 한동안 미쳐 여러 지방을 헤매 다니게 된다.
그러나 제우스의 자식에 대한 헤라의 복수 중에서 가장 치열하고 집요하게 행해진 것은 헤라클레스에 대한 복수이다. 헤라는 헤라클레스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기 위해'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를 먼저 태어나도록 한다. 아직 젖먹이인 헤라클레스의 요람에 뱀을 집어 넣을 것도 헤라이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었던 헤라클레스는 이 뱀을 목졸라 죽였다.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한 것도 헤라였고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임무를 주어 헤라클레스를 시험한 것도 모두 헤라의 짓이었다.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한 대가로 헤라 역시 제우스에 의해 손목에 쇠고랑이 채워져 하늘에 매달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헤라는 또 아마존의 여왕 '히폴뤼테(Hippolyte)'의 허리띠를 구하러 간 헤라클레스를 왕권을 탐하러 왔다고 중상모략하여 공연한 전투를 일으켰다.
헤라의 집요한 복수는 헤라클레스의 친구에까지 미친다. 헤라클레스가 독약에 중독되어 죽어 가는 순간에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주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덜어 준 친구 '필로크테테스(Philoktetes)'는 트로이로 가던 중에 헤라가 보낸 뱀에 물렸다. 그는 뱀에게 물린 상처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동료들의 버림을 받고 트로이 원정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숭배를 게을리 한 '라이오스(Laios)'를 벌하기 위해 테바이에 스핑크스를 보내 사람들을 잡아먹게 한 것도 헤라였다. 라이오스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자신의 아들 오이디푸스의 손에 죽게 된다. 헤라의 복수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로 하여금 자신의 어머니 '이오카스테(Iokaste)'와 결혼하게 만들어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을 만들었다. 오이디푸스의 아들들을 서로 싸우다 죽게 만들고 끝내 테바이 시가 적의 손에 멸망하게 만든 것도 헤라의 무서운 복수의 결과였다.
헤라는 가부장적 제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가정을 위협하는 짓을 한 자도 용서하지 않았다. 제우스의 유일한 정실부인으로서 헤라는 일부일처제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반하는 어떤 도전도 용납할 수 없었다.
정당한 계승자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 '이올코스(Iolkos)'의 왕 '펠리아스(Pelias)'는 헤라의 복수를 피할 수 없었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원정대의 대장 이아손을 도와 준 메데이아를 펠리아스에게 보냈다. 늙은 아버지를 다시 젊어지게 해 줄 수 있다는 메데이아의 말에 속은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토막내어 솥에 삶아 죽여 버린다.
트로이 전쟁 때 헤라는 아테나, 포세이돈과 함께 그리스 편에 서서 트로이를 공격한다. 제우스 몰래 그리스군을 돕기 위해 헤라는 아프로디테에게서 욕정을 일으키는 허리띠를 빌려 한낮에 제우스를 유혹한다. 제우스가 헤라와 사랑을 하는 동안 포세이돈과 아테나는 마음껏 트로이군을 유린한다. 헤라가 트로이에 적대감을 갖는 이유는 파리스 때문이다. 헤라로서는 미인대회에서 자신을 제쳐놓고 아프로디테에게 항금사과를 넘겨준 파리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파리스는 정당한 결혼으로 맺어진 가정을 파괴한 죄를 저질렀다. 그는 자신을 친절하게 손님으로 대접해 준 메넬라오스를 배반하고 그의 정실부인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로 달아난 가정 파괴범이다. 가정 파괴범을 벌하는 것은 헤라의 직분이다. 개인적인 복수를 겸한 파리스에 대한 헤라의 처벌은 가혹했다. 파리스 자신에게 죽음을 내린 것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과 조국까지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 헤라의 복수는 항상 이렇게 무섭고 철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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