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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5, 물)
할례를 행하다 circumcise
물( , 4135)은 '할례를 행하다, 잘라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7회 나온다.
할례를 행하는 것은 양피, 즉 음경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표징(혹은 표시)으로서 이 피흘림을 사용하는 것임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할례를 그와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표징이자 보증으로 삼으셨다. 할례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표하며, 인치는 것이다. 미첼(O. Michel)은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속해 있다는 표시이다... 그것은 언약에서 약속된 축복의 보증이다'고 했다.
이스라엘 남자는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데 "팔일"은 할례의 시기를 말한다. 이것은 할례가 사춘기 의식에서 엄격히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표시로 바꾸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음경의 포피를 잘라내는 습관은 아브라함 시대 훨씬 이전에 사용된 관습이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성년이 되는 특권을 통과했음을 나타내는 사춘기 의식으로 오늘날 행해지듯이 행해졌던 것 같다. 이 의식은 약 13세된 사내 아이에게 행해졌다.
할례를 받아야 할 대상은 유대인 부모에게서 난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집에서 났건 사왔건 노예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를 믿게된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적용된 것이 분명하다(창 17:12 이하).
오로지 할례를 받은 자들만이 유월절의 식사에 참예할 수 있다(출 12:43-48). 예레미야는 마음(렘 4:4)과 귀(렘 6:10)의 할례에 대해 언급한다.
동사 물( , 4135)은 구약성경에서 약 37회 나온다(창 17장; 창 21:4; 창 34:15 이하; 출 4:25; 출 12:25; 수 5:2 이하 등). 그러나 명사 물라( , 4139)는 단 한번 나온다(출 4:26).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어 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템노는 17회 나오며, 제의적 용어로 '할례를 행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눅 1:59과 눅 2:21은 유대 율법에 따라 세례(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이름을 생후 8일째 되는 날 그들의 할례 때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행 7:8). 요 7:22 이하는 또한 안식일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에 관한 랍비적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관습과그것의 모세의 율법 안에서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 모순은 여덟째 날이 바로 안식일인 경우, 안식일을 모독하기는커녕 할례가 행해졌다는 사실에 있다(참조: Shab. 132a).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다.
(b) 골 2:11에서 페리템노는 세례(침례)와 관련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c) 초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할례 받지 않은 이방 기독교인들 사이에 긴장이 있었다(고전 7:18; 참조: 엡 2:11; 행 11:3; 롬 4:10). 이 두 집단은 각기 베드로 및 바울과 연관을 맺고 있었는데 유대 기독교인들이 할례는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충돌하였던 것이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 행 15:5, 할례와 모세 율법의 준수가 결부되어 있음).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이방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조차도 할례의 율법에서 자유롭다고 가르쳤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질책하였다(행 21:21). 결국 바울은 그의 선언의 중심 요점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며, 율법에 대한 유대주의적인 열정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 베드로에게 위임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참조: 갈 2:7)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을 위한 복음이 자신에게 위임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분명히 할례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이것은 그가 사도공의회에서 인정받은 것이며(갈 2:6 이하; 참조: 행 15:19 이하), 그리고 그것은 디도와 같은 그의 동료 교역자도 포함하였다(갈 2:3).
몇몇 학자들은 디모데의 할례가 유대인들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실제로 바울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행해졌는가에 대해서(행 16:3; 대조적으로 갈 6:12 이하) 의심을 품고 있다. 디모데가 유대 법률에 따라 할례를 받음으로써 유대인이 되었다는 사실과, 바울은 그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참조: H. -C. Hahn; G. Stahlin).
[참고 - 구약성서에서 이 동사의 사용은 창세기 17장에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여호와는 창 12:1-3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과 그의 언약을 확증한다. 음경의 포피를 잘라내는 관습은 아브라함의 시대 훨씬 이전에 사용된 관습이었다(O1d Kingdom Egyptian tomb art and hieroglyphs Egyptian Grammar, A. H. Gardiner, p. 448). 이것은 아들에게 성년이 되는 특권을 통과했음을 나타내는 사춘기 의식으로 오늘날 행해지 듯이 행 해졌던 것같다. 이 의식은 때로 방탕한 의미도 수반한다. 이 수술은 약 13세된 사내 아이에게 행해졌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표시로서 이 피흘림을 사용하는 것임을 계시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어린아이가 태어난지 8일째에 그에게 할례를 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사춘기 의식에서 엄격히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표시로 바뀌어졌다. 이런 유아할례는 고대에 독특한 것이었던 것 같다. 현대인들은 이 관습이 위생적인 가치를 지난다고 증명했지만 구약성서에는 이런 주장이 나오는 곳은 없다.
이 관습이 하나님의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을 상징하였으므로, 할례가 영적인 의미를 파생시킨 것은 이 언약의 여러 측면에서부터 이다. 이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구약성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대한 복종의 표시였다. 종교적 상징주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 듯이, 히브리인들은 깊은 영적 실재를 나타내는 이 표시를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인양 사실상 사용하였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자동적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으로 잘못 사용하였다.
선지자들은 이런 악용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단순한 육의 할례, 즉 살아있는 신앙을 수반하지 않는 할례에 대항하여설교하였다. 예레미야는 마음의 할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렘 4:4)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 보다 더 오랜 이전에 백성들은 이런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 사실상 예레미야는 신 10:16을 인용하고 있다. 신 30:6 에서 이 동사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할례가 히브리 종교의 가장 깊은 영적 실재를 상징했다고 한 앞의 진술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이 구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마 22:36-40 에서우리 주님은 이것이 실로 가장 큰 계명이며 모든 율법과 예언의 개략이자 본질이라고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치셨다. 신명기의 구절은 참된 할례는 인간의 마음 속에 새긴 하나님의 행위 -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창조하신 영적인 생활이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골 2:11 에서 가르친 바로 그것이다. 이 구절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말한다(참조 : 롬 2:28-29과 롬 4:9-12). 세례와 할례는 모두 언제나 죄로부터의 정화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갱생시키는 역사를 상징하므로,교회의 어떤 무리의 사 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약성서의 성도들에게 명하여 유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던 것처럼, 그들의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교회의 다른 분파는 이런 유추를 강조하지 않고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 - E.B.Smick.] (p820*).
구약성경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 17: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 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창 17: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창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 17: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창 17: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창 17: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창 17: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창 17: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창 21: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창 34: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창 34:17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창 34:22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창 34:22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창 34:24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출 12: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출 12: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레 12: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신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 30: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수 5: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수 5: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수 5: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수 5: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수 5: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수 5: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수 5: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수 5: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시 118:10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시 118:11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시 118:12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시 58:7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시 90: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렘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렘 9: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4061, 페리토메)
할례 circumcision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페리토메(Agatharchides, BC. 2세기)는 페리템노, 4059)에서 유래했으며, '할례'를 뜻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페리토메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물(할례를 행하다, 잘라내다, 창 17:13), 물라(할례, 출 4:26)의 역어로 각 1회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페리토메는 신약성경에서 36회 나오며, '할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초대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할례 받은 자들 사이에서 난 신자들, 곧 유대 기독교인들(행 10:45; 행 11:2; 롬 3:30; 갈 2:12; 골 4:11; 딛 1:10)과 할례 받지 않은 이방 기독교인들(엡 2:11; 롬 4:10; 고전 7:18) 사이에 긴장이 있다. 이 두 집단은 각기 베드로 및 바울과 연관을 맺고 있었는데 유대 기독교인들이 할례는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충돌하였던 것이다.
(b) 바울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 베드로에게 위임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갈 2:7)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을 위한 복음이 자신에게 위임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분명히 할례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이것은 그가 사도공의회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c) 유대인과 유대 기독교인 양자에 있어서 할례의 인정이 율법 준수의 의무를 의미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한 것이 곧 바울이 그토록 비타협적이었던 이유이며, 그토록 심각하게 베드로를 용납하기를 망설였던 이유이다(갈 2:11-14; 갈 6:12 이하. 인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례를 지지하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비판). 유대적인 신앙은 할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특성을 부여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분명히 언약의 백성의 성원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주장을 이용해서 단지 아무런 유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 한해서 할례는 언약의 참 징표라고 강조함으로써 할례와 율법 사이의 관계에서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 율법을 파기한다는 것은 곧 할례가 무할례로 되는 것을 의미했다(롬 2:25).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한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생명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은총에 의해서만 영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참조: 갈 3장; 롬 10:4).
교회의 있어서의 할례는 유대주의에서 가졌던 중요성을 결코 가질 수 없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 빌 3:5; 갈 6:13 이하). 바울은 롬 3:1 이하에서 할례에 관계된 약속으로 인해 할례에 부여되어 있는 상대적인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약속의 성취는 할례와는 무관하게 신앙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롬 3:30).
(d) 롬 4:7-12은 한 사람이 할례를 받고 안받고는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은 유대 기독교인의 신앙과 이방 기독교인의 신앙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하여 그 증거로 주로 아브라함을 들고 있다. 아브라함은 공히 두 집단에 대해 동등하게 신앙의 선조가 된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롬 4:11 이하). 만약 바울이 롬 15:8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신실하심을 위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함으로써 이방인들에게 경고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롬 11:17-24(참조: 롬 15:5 이하)의 문맥속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
(e) 근본적으로 할례나 무할례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그 둘 모두 어떤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총체적인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는가이다. 인간은 많은 할례자들이 바울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할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을 믿어 신앙이 사랑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도 한다(참조: 고전 7:19; 갈 5:6; 갈 6:15; 골 3:11). 신학적으로 할례의 문제는 그 사람이 성령을 통해 마음의 할례를 받았는가에 달려 있다(롬 2:29; 참조: 행 7:51). 그리고 그것은 진짜 유대인 뿐만 아니라 복음을 통해 거듭난 새 인간이 되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모세 율법의 한계가 어떻게 극복되고 있는가는 바울의 다음과 같은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할례당이라"(빌 3:3). 예수 그리스도는 할례자와 무할례자(엡 2:14 이하)를 하나의 새로운 피조물(갈 6:15)로 만드셨다.
그러나 이 새 인간은 골 2:11 이하에서 영적인 할례로 묘사되어 있는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을 때, 대조되는 옛 것은 새로운 실체에 의해 중지당하고 만다. 미래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혹은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9 이하; 참조:
신약성경
요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요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행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행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행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롬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롬 2: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롬 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롬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 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롬 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롬 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롬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롬 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롬 15: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고전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갈 2: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갈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 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갈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갈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 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딛 1:10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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