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이 남긴 전통문화유산을 제대로 보고 맛을 즐기려면 몇 가지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유산에는 문서기록물도 있지만 우리가 답사하면서 주로 접하게 되는 것은 건축물과 조각품, 도자기, 금속공예품과 그림들입니다.
전통건축물이라면 기와집을 연상할 것이고, 조각품들이라면 불상이나 무덤 앞의 석물들을 떠올릴 것이고, 도자기라면 흔히 청자와 백자를 먼저 꼽아볼 것이며, 금속공예품이라면 사리함과 장신용 귀금속 등을 생각할 것이고, 그림이라면 붓과 먹의 유연함과 농담(濃淡)을 살려낸 산수화와 인물화, 풍속화 등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문화와 서구문화에 익숙해진 요즈음 사람들에게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 집들을 보면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단청을 보면 지나치게 화려한 것 같기도 하면서 영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몇 번을 함께 답사를 다니다보면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친근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고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라도 편안하고 아늑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우리 내면 깊숙이에 잠겨 있던 우리의 문화의식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깊이 잠들어 있던 우리의 의식을 깨워볼까요? 건축물을 하나의 예로 들어봅시다.
① 먼저 서양건축물과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의 차이를 얘기해봅시다. 북유럽의 귀족들이 살았던 집과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들이 살았던 집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다음 내용에서 어떻게 다른지 얘기해 볼까요?
주재료 / 지붕모양 / 대문형태 / 집안구조 / 마당과 정원의 형태 / 침실구조 / 마루 / 난방방식
다같이 사람이 기거하는 집이지만 많이 다르지요?
왜 무엇 때문에 동서양이 이렇게 다른 집의 모양이 나왔을까요? 환경입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들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적응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변 환경에 자신들의 생활양식이 맞춰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위에서 얘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우리나라는 지구의 북반부에 위치하면서 (1)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이 길어 난방과 함께 냉방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했기에
(2) 집을 정남향집으로 지으면서 (3) 방바닥은 온돌을 깔면서 마루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4) 방문을 남쪽과 북쪽에 동시에 설치하였고,
(5) 산이 많은 지형이라 주로 목재를 이용해 집을 지었고, (6) 지붕을 두껍게 만들고 처마를 길게 뺐으며, (7) 여름에 비가 많다보니 마당은 그대로 텅 비게 놔두거나 작은 꽃들을 심는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습기가 많은 여름철을 시원하면서도 보송보송하게 지낼 수 있고, 겨울에는 따끈따끈하면서도 햇빛을 집안 가득 받아들여 이중난방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한발 더 나아가 현대건축물인 아파트와도 비교해봅시다. 아파트는 현대 건축물이자 서구식 건축물임에도 서양집에 없는 온돌구조를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남향의 아파트를 가장 선호합니다. 요즈음에는 한지의 공기투과성과 보온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재발견하여 아파트 이중 창문에도 안쪽에는 한지를 바른 문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날까요?
서양의 생활방식이 세련된 듯하고 편리한 것 같아 도입했는데 살다보니 도리어 불편한 점도 많고 여러 단점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환경에는 썩 적합하지 못하기에 우리 식대로 바꿔가는 것입니다. 아파트가 대단위로 지어지기 전에 한동안 성냥갑 같은 가옥들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떠했습니까? 지붕이 평편하다보니 아무리 방수를 잘해도 그 많은 비를 감당 못해 집안 안쪽의 천정과 벽에는 자주 곰팡이가 슬고, 외풍이 많아 겨울에 춥고 여름에는 더웠습니다. 그래서 바꾼 것이 조선식의 지붕모양을 조금 흉내내어 지었지만 지붕을 활용하려는 욕심 때문에 제대로 바꾸지 못하고, 가끔 방수공사를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서 사는 도시에서의 현대 건축물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 지어졌을까요?
실용성입니다. 땅값이 비싸 적은 면적에 많은 공간을 확보하려다보니 자꾸만 위로 높아집니다.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 높은 건물을 유지하려면 유지보수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고비용을 물어가면서 살려고 하다보니 분명 생활은 풍족해진 듯한데 늘 바쁘고 쫓기는 듯 삽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건축물 하나를 보면서 바로 우리들이 사는 모습까지를 들여다 보게 되었네요.
답사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② 전통건축물이라고 하여 다 같은 모습은 아닙니다. 사람의 모습이 각각 다르듯이 집도 각각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기와집이라고 하여도 다 같은 형태의 기와집이 아닙니다. 불교 건축물인 절집과 유교 건축물인 사당과 조선시대의 궁궐, 그리고 백성들이 사는 가옥(살림집)이 다 다릅니다.
각각의 집이 갖는 역할을 말해보세요.
자, 그러면 그 역할에 따라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집 짓기가 힘들다구요?
그러면 가장 간단한 대문만 하나 만들어볼까요? 그 집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해야겠지요?
• 절집 → 사람들의 소망, 믿음을 들어주는 곳이다 →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워 다 품어줄 것 같이 지어야 한다 →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아무나 오고갈 수 있어야 한다. → 대도무문(大道無門), 곧 일주문이라고 하는 문은 있지만 문짝이 없다.
• 궁궐 → 왕의 살림집이기도 하지만 정치공간의 의미가 훨씬 더 크다 → 강한 권력을 상징하는 권위와 위엄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권력은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없게 한다. → 육중한 삼문(예:광화문, 흥례문, 근정문)을 통과해야만 조정에 닿을 수 있다.
• 살림집(민가) → 가족들의 단란한 휴식처이다 → 함께 어울려 사는 동네 속의 한 집이다. → 밖에서 부르면 쉽게 들릴 수 있는 구조이다 → 민가의 대문, 삽짝문, 제주도의 통나무문
③ 그 건축물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주변 환경과 함께 찬찬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풍수지리를 따져 명당 자리를 고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신륵사나 계신리 마애불은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아시겠지만 남한강은 조선시대에 배편을 이용한 중요한 물류 이동로였습니다.
하지만 배에 짐을 잔뜩 싣고 가다가 도적들에게 강탈당할 수도 있고, 급류에 휩싸여 재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오가는 길 아무 탈이 없도록 잘 보살펴 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원의 표상이 바로 계신리 마애불과 신륵사 다층전탑입니다.
어떤가요?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속에는 이러한 깊은 뜻이 서려 있음을 쉽게 찾아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어색한 마음이 없이 절집의 문을 성큼성큼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의 문화유적답사는 바로 이러한 의식을 일깨우면서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은 물론 자연친화적 순리성과 과학성, 역동성을 발견하여 오늘에 접목시키는 혜안을 키우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가 답사 다니는 도중에 만나는 여러 가지 문화유산들은 그 영역은 다양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며 곱씹어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보는 눈’을 넘어서 ‘창조의 행위’를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떤 길을 가야할지도 분명히 드러날 수 있겠지요?
자, 그럼 하나하나씩 찾아나서 봅시다. 첫 답사에서는 자료에 제시된 너무 전문적인 용어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니다보면 필요에 의해 저절로 익혀지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잘 살펴보면 됩니다. 자료는 다만 꼭 기억하고 싶은 용어인데 영 생각나지 않을 때 들춰보시면 됩니다. 자, 함께 가볼까요?
<출처 : 2004년 家苑 어린이.학부모 문화유적답사 안내 프로그램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