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김문숙
갑자기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수많은 쓰레기통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흘렸을 땀냄새다
건설현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닌 양말이 뱉어내는 모래는
생각이 많은 하루처럼 종일 까끌하다
묵은 세탁기의 거름망에
소화시키지 못한 거무튀튀한 먼지 뭉치가
해결되지 않은 빚더미가 되어
덜컹덜컹 혼잣말을 궁시렁거린다
999계단 중턱을 오르는 만년 취업준비생
발 아래 동전하나가 떨어지더니
아래로 아래로 굴러간다
강냉이 /김문숙
하모니카처럼 아련한 첫사랑
밤새 낯선 발자국이 헤집어 놓고 간
설익은 사랑의 늪에 빠져
햇살이 두드리는 기척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뿌연 김서림처럼 애닳기도 하고
자일리톨처럼 애매하기도
황홀지경이기도 한
외눈 사랑
그대의 거친 피부
빛바래져 푸석해진 수염
빠져버린 아랫니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랑만을 위한 사랑입니다
이글거리는 불덩어리 속에서
더욱 짙어지는 사랑의 농도
눈을 감고 '오빠생각'을
불러봅니다
마루가 웃는다 /김문숙
머릿니 같은 햇살이 스물스물 마루를 기어다니던 날
검정비틀이고둥 한 냄비가 끓고 있다
짭쪼룸한 갯벌 향이 마당까지 퍼지면
아이들의 코는 이미 갯벌을 뒹굴고
예쁜 셋째 누나는 옷핀을 준비하지만
어느새 마루 틈에
닦지않은 아이들의 까만 이가
박혀서 깔깔깔거리며 웃는다
그 마루를 박재해서 걸어두면
그 아이가 찾아올까
캠프 /김문숙
명중을 하면 지는 게임
칼끝이 세포를 건들이기 시작한다
어느때는 4분의 4박자 저돌적으로
어느때는 엇박으로 천천히
몸 구석구석을 침투하면
하늘 높이 튀어오르기만 하면 된다
승부욕에 씰룩이는 입꼬리
긴장한 눈빛을 봤을 때 튀어올라야
쫄깃하다
더 높이 더 높이를 외치다가
고두박질 치면
환호와 함성이 우주 끝까지 튀어오른다
피터팬의 나라에서
아이들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장마 /김문숙
작달비가 밤새 지붕을 두들겨대더니 무담시 놀다간게 아니었다
종달새의 고운 노래가 물고 온 나무말미 아침
전깃줄에 걸쳐진 젖은산이
리듬을 타듯 물기를 털어내고 있다
젖은바람이 거미줄에 걸려 시나브로 몸을 말리고 있는 사이
마루에 걸터앉은 군뜻이
먼 하늘을 바라본다
개울물의 호통 소리가 하늘에 닿자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고추나무 찢어진 가지 위에 걸려서
그렁그렁하다
기다려준단 것 /김문숙
어쩌다보니 의도치 않은 길에 서 있다
검은 그림자를 느끼고
질끈 눈을 감는 순간
커다란 바퀴가 비껴간다
고운손을 내미는 이는 없었다
발로 툭툭 차고 짓밟고
들키고 싶지 않은 속을
곪은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음에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선다
무서워서
상처받기 싫어서
겹겹이 껴 입은것 뿐인데
기다려주면 얽힌 실타래 풀리듯이 내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누구도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속을 보여주면 편안하게 다가올까
입을 크게 벌려본다
가을날 노을빛이 주홍글씨로 박혀
입맛이 떫다
기다리지 못한 건 나일지도
잊고 있었던 노란 향기가 스친다
카페 게시글
2019 문집 곳간
2019 문집용(김문숙)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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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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