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KBS 추적60분에서 ‘공장에서 병원까지 방사선 피폭의 진실’이라는 방송이 나간 적이 있다. 울산지역조선소에서 용접검사를 하는 비파괴노동자 3명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을 다뤘다. 당시 사망한 노동자들 모두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이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방사선에 과다피폭되어 비참하게 사망한 내용이 공분을 일으켰다. 방송이 나간 후 노동부가 비파괴검사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안전보건기준을 개정하는 등 몇 가지 조치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두달전 비파괴검사를 10년정도 하다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노동자 부인을 만났다. 대구에서 친구와 함께 사무실을 찾아왔다. 남편이 병원에서 항암치료중이라 대신 왔다고 했다. 아직 소녀같은 웃음이 남아 있는 젊은 새댁이었다. 그동안 전화와 이메일로 서로 연락하고 준비했던 산재신청서류를 함께 검토하기 위해 온 것이다.
남편은 10명이 일하는 비파괴검사 전문업체에서 10년 넘게 방사선검사 등을 해왔단다. 선박이나 철강제품을 검사하는 일을 했는데 방사선을 비롯한 톨루엔, 크실렌, 아세톤, 클로로메탄 등 유해물질에 노출돼 왔다. 보통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을 하지만 중간중간 출장업무가 많았다. 울산에서 문제가 된 노동자들처럼 조선소에도 많이 다녔다. 방사선 작업 시 피폭을 막아줄 차폐시설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차폐시설이 없을 때는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작업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주어진 작업량을 다 할 수 없어 적정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을 했단다. 회사동료가 림프종(혈액암 일종인데 방사선 피폭으로 발병하는 암 중 하나 임) 진단을 받았고 3개월 후 남편마저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되었단다. 백혈병 치료가 길어지자 회사는 퇴사권고를 했다. 버티다 병가처리기간이 다되어 어쩔 수없이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단다. 지금은 남편은 치료중이고 부인은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다.
조근조근 얘기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가 참 대견했다. 다행히 산업의학과 전문의 소견에서도 업무와 관련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소견을 받았다. 서류검토를 마치고 힘내라며 그녀를 보냈다. 며칠전 역학조사가 진행된다며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남편 대신 현장에 가야하는 아내에게 역학조사에 임하는 자세와 중요사항 등을 얘기했다.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산재준비를 해 온 과정을 보면 누구보다 잘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산재 관련해서 확고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결국 승리했다는 얘기를 해줬다. 열심히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픈 남편을 간호하고 애들 돌보는 것도 벅찰 부인이 자신이 일해 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 공단을 상대로 산재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 말이 된단 말인가? 노동자들이 주장처럼 노동자가 유해하고 위험한 일에 노출된 경력이 있는 경우 업무상질병으로 추정하고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근로복지공단이 증명하도록 산재입증책임전환이 이뤄져야만 산재노동자와 그 가족이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지금도 남편의 산재승인을 위해 온몸과 맘으로 뛰고 있을 그녀를 위해 힘찬 응원을 보낸다.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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