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 브레이크는 이번 시승기 주인공의 모델명이다. 하지만 자동차 문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슈팅 브레이크가 메르세데스-벤츠의 모델명이기 이전에 자동차의 한 카테고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슈팅 브레이크에서 브레이크는 프랑스어(수레)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 영국에서 태어난 자동차 스타일을 의미한다.
귀족이나 부유층의 레저이며 사교이기도 한 사냥을 하려면 날씬한 라이플 케이스와 사냥해서 잡은 동물들, 그리고 사냥개를 운반할 수 있는 자동차가 요구된다. 그런 필요에 알맞게 탄생한 자동차가 바로 슈팅 브레이크다. 사냥에 필요한 용도로 자동차를 변경하려면 사륜구동 모델만큼 대대적인 변경이 필요하지는 않는데, 럭셔리 2도어 쿠페의 바디 뒤쪽을 왜건화하면 그 요구를 스마트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 영국 자동차 잡지에는 슈팅 브레이크로 개조한다는 전문 업체의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었는데, 실용을 중시한 사람들 사이에서 차량의 개조를 원한 고객들이 꽤나 많았다고 전해진다. 해외에서 자동차 전문서적을 잘 찾아보면 이런 방식으로 리어 부분을 개조한 차량들만 전문적으로 소개한 책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슈팅 브레이크란 자동차를 하나의 카테고리라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벤츠는 왜 사냥도 많이 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 슈팅브레이크란 이름의 모델을 출시한 것일까? 이는 유럽, 특히 독일과 영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계속 유지하는 패스트백 차량에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를 더 설명하자면 실용성을 중시하긴 하지만 스테이션 왜건 정도의 화물칸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는 사용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라 해석할 수 있다.
스타일상 4도어 세단이면서, 쿠페라고 부르는 자동차가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그것이 바로 메르세데스-벤츠의 CLS 클래스다. 그 CLS를 기반으로 색다른 모습의 메르세데스-벤츠가 등장한 것이 바로 2012년 발표된 CLS 슈팅브레이크다. 이는 1년 전 데뷔한 2세대 CLS 쿠페의 베리에이션이기도 하다. 역시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왜건 같은 리어 스타일이다. 카고 룸의 크기는 물론 넉넉하긴 하지만 왜건과 비교하자면 그렇게 까지는 크지 않다. 그래서 스포츠 쿠페 투어러(Sports Coupe Tourer)라 부르기도 하지만 역시 슈팅 브레이크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메르세데스-벤츠에게 쿠페인 CLS를 기반으로 왜건을 만드는 것은 슈팅 브레이크의 취지에 적합한 변화다. 실제로 이 스타일링의 콘셉트카는 2010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세상에 공개된 바도 있었는데 결과물인 슈팅 브레이크는 매우 유려한 디자인으로 세상에 나왔다. 슈팅 브레이크라 불리는 일부 모델들의 뒷모습이 답답하거나 혹은 둔해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모델은 그런 느낌이 극히 적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슈팅 브레이크라 불리는 모델들 치고 디자인은 매끈하고 세련되게 잘 빠졌다.
슈팅 브레이크라는 카테고리는 특별 모델을 주문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 밖에 탈 수 없는 호화스러운 차였다. CLS 슈팅 브레이크도 그런 특별한 느낌이 잘 녹아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수석디자이너인 고든 바그너는 슈팅 브레이크 모델은 디자인을 먼저 결정하고 다른 기능이 거기에 맞추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특별한 느낌의 아우라가 강하다. 카고룸 용량은 표준시 590 리터, 뒷좌석을 잡으면 최대 1,550 리터까지 늘어난다. E클래스 스테이션 왜건이 표준 시 655리터, 최대 1,910 리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슈팅 브레이크로서는 적당한 용량이다.
CLS 슈팅 브레이크의 크기는 CLS 쿠페에 대비 전장이 불과 15mm 길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그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루프 라인과 테일 게이트의 구별이 없는 것처럼, 매우 아름다운 마무리다. 꽃잎 같은 LED 테일램프도 화려하고, 어딘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분위기다. 이 모델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시각은 리어 쿼터다.
긴 루프는 유려한 라인을 그리며 빨려 들어가듯 리어 엔드로 흘러 들어가고 뒷바퀴 펜더의 부푼 것도 있고 후면 스타일에는 푸짐한 존재감이 있다. 왜건 바디인데 어찌 보면 요염하고 심지어 섹시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쿠페보다 약 5mm 정도 높을 뿐인데 더 크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상적인 루프라인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그만큼 잘 속는다. 디자이너는 이 루프의 형태를 결정하기 위해 라인을 수백, 수천 번 다듬었음에 틀림없다.
실내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쿠페와 동일하다. 가격이 비싼 모델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실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재들의 질감도 무척이나 우수하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여러 곳의 질감을 느껴보면 충분히 고급스럽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을 감아 시각적 사실의 전달을 막더라도 가죽을 비롯한 많은 부분들의 질감이 말해준다. 개인적으로 시승차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선택 사양인 Designo 우드 짐칸 바닥을 구경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원목 소재 중에서도 최고 상급으로 꼽히는 오픈 포어 아메리칸 체리우드 바닥을 볼 수 있었다면 호사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을 것이다. 방수도 가능한 이 우드 소재는 미끄럼 방지 고무를 조합한 알루미늄 레일이 끼워지는 등 외모뿐만 아니라 사용하기에도 좋다. 물론 874만원이라는 비용을 감수해야 하긴 하지만 슈팅브레이크라는 이름을 내건 이상 요트의 갑판처럼 사치스러워도 좋다.
슈팅 브레이크는 2,875mm의 휠베이스, 전장은 4,960mm이다. 시트에 앉으면 몸이 기억하는 그 감각은 확실히 쿠페다. 실내 공간은 적당히 조여진 느낌도 받는다. 그렇지만 갑갑하지는 않다. 앞 좌석은 S 클래스와 손색 없을 만큼의 공간을 가진다. 자동차의 성격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잘 디자인되어있다. 대시보드의 구조도 좋고, 기분이 좋다. 뒷좌석은 쿠페의 2인승 레이아웃이 아니라 3인승으로 제공된다. 뒷자리의 레그 룸, 헤드 룸 모두, 175cm 성인도 빡빡한 느낌 없이 탈 수 있다. 사이드 윈도우가 작아서 갇힌 느낌이 살짝 들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타이트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기분이 좋을지도 모른다.
주행의 첫 느낌은 메르세데스-벤츠 운전자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배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안락함과 스포츠함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적인 맛을 무게와 스티어링감 측면에서 튜닝해 운전의 즐거움을 강조했다는 의도가 전해져 온다. 차고와 감쇠력을 자동 조정하는 에어 서스펜션은 촉촉한 느낌으로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나가는 듯 부드럽고 플랫한 승차감이 제공한다.
한편 액슬은 전후 모두 네거티브 캠버가 붙여져 고속 영역에서의 코너링 성능을 더욱 향상을 노리고 있다. 코너링이 즐거우니까 이해 가는 것이 서스펜션 구성이다. 프론트는 새롭게 개발된 코일 스프링, 리어는 적재 하중을 고려해서 셀프 레벨링기구를 갖춘 에어식 스프링이다.
CLS 슈팅 브레이크를 타면서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승차감의 세련됨이다. 어떤 순간에는 그야말로 스포츠의 일면을 담담하게 보여주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넉넉한 세단의 안락함도 전해준다. 신기하게도 극단적인 두 영역을 절묘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이 절묘한 서스펜션 컨트롤은 항상 실내를 평평하게 유지해준다. 메르세데스-벤츠 라이드라고 부르는 특유의 승차감은 이 모델에서도 확실히 이어지고 있다. 왜건을 통한 리어 주위의 차음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CLS 쿠페와의 차이는 거의 없다.
CLS 슈팅 브레이크를 체험해보면 메르세데스-벤츠가 대형차 만들기에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우수한 밸런스다. 그 수준은 정말 과한 칭찬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타면 탈수록 슈팅브레이크의 새로움은 확실히 드러난다. 동력 성능에 아무 불만이 없을 뿐만 아니라, 2.1리터 디젤엔진의 안정성과 함께, 럭셔리 SUV의 대안으로도 제대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어 보인다.
저속에서도 고속에서도 안정감은 그대로 유지되고 코너에서 거세게 몰아붙여 봐도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다. 시승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 차체만 보고 섣불리 예상했던 부분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직선이던 곡선이던 어떤 코스를 만나도 밸런스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만일 AMG 모델도 들어온다면 한층 견고한 핸들링과 함께, 희귀한 슈퍼 스포츠 왜건으로 캐릭터로 확실하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LS 쿠페에서도 그랬지만 주행에서만큼은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쿠페의 우아함과 왜건의 유틸리티를 모두 겸비한 전천후 스포츠 세단. 거의 서른 자에 가깝도록 길어진 표현이 욕심처럼 보이지만, CLS 슈팅 브레이크는 이처럼 두루두루 넉넉하게 포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물론 그 기원과 뿌리는 존재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겠다. 그래서 차별화된 상품성 또한 나름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슈팅 브레이크를 두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호불호는 갈릴 수는 있다. 하지만 만족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충분히 획득할 수 있는 모델이라 생각된다.
시승을 하면서 만났던 지인 중 하나는 이런 어정쩡한 모델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절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 목에 힘을 주며 단언했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지인은 조심스럽게 슈팅브레이크가 앞으로 메르세데스-벤츠의 새로운 간판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도 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두 명 모두 메르세데스-벤츠를 타는 오너라는 사실이다. 메르세데스-벤츠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모델이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국내에서 슈팅 브레이크 모델이 안착하지 못한다면 자동차 문화의 성숙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개성이 공존할 수 있는 시장, 그리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모델을 누구나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자동차 문화가 우리나라에 정착되려면 슈팅 브레이크 같은 모델이 보란 듯이 성공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슈팅 브레이크의 성공이 시발점이 되어 거기서 거기인 수입차 문화가 좀 다채롭고 개성 넘쳐져, 우리나라에 수입될 기미조차 안 보이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양한 모델들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