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신입강의 가려고 새벽에 눈을 떴는데 바깥이 아무래도 비가 올 모양새다.
어제 밤 <해님 달님/국민서관>하고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돌베개어린이>를 읽어주려고 준비했는데...
다녀와서도 비가 오면 이혜리 작가의 <비가 오는 날에>를 읽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먹고 7시 30분쯤 베란다 문을 열어 보니 비가 그야말로 억수같이 쏟아진다.
<비가 오는 날에>를 소리내어 몇 번 읽어보았다.
8시 20분 그림책에 나오는 우산하고 비슷한 놈을 골라 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온 동네가 비소리와 어둠에 묻혀있는데 유치원 아이들 방만 불빛이 환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와 이야기 선생님이다"
"선생님~ 이야기 선생님 올거라고 했지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반겨준다.
어찌고 고맙고 이쁜지...
지난 주 한 번 읽어주었는데 이렇게도 반가워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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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받쳐들고 갈 때부터 내가 먼저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에 치타는 무엇을 할까"
"비가 오는 날에 사자는, 용은, 나비는, 티라노사우르스는 무엇을 할까"
뒷 장을 넘겨 티라노사우르스의 표정을 보더니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에 아빠는 무엇을 할까" 아무도 대답이 없고 새로 만난 일곱 살 아이가 "신나게 놀고 있을까" 이런다.
책장을 덮었는데도 아이들 얼굴에서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아이들과 책장을 넘기며 장면을 하나씩 들여다 보았다.
*<해님 달님>은 고민을 좀 했다.
비가 오시는 날에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는 이야기가 괜찮을까?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인데...
표지를 보는 아이들 얼굴은 밝다.
"호랑이다. 고양이다."
옛날에 옛날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그러다 호랑이가 엄마를 꿀꺽 삼켰다는 장면이 나와 은근히 긴장하고 있는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음 장을 기다리는 아이들
ㅎㅎ 나의 기우였다.
그렇게 "손을 보여 주세요" 요기쯤 읽는데 아이 실내화를 사오신 엄마, 데리러 오신 엄마
ㅋㅋ 리듬이 끊어졌다.
유독 눈을 반짝이는 두 녀석을 보면서 마저 읽어 주었다.
<해님 달님>은 아이들이 그러자고 하지 않아서 다시보기를 하지 않았다.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
아이들이 아침부터 쭉 유치원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지 않느냐, 체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감기도 걸리고, 아프기도 하면서 잘 버티고 있다" 고 하신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해맑은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쓸쓸했다.
다음 주를 약속하고 아직도 집에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