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남동 은행나무와 전주최씨 종대.
(1) 풍남동 은행나무와 전주최씨 종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3에는 전라북도 보호수 9-001호로 지정 보호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도로명 주소가 은행로인 것도 바로 이 은행나무로 인한 것이고, 예전에 지번(地番) 주소를 사용할 때도 이 골목을 사람들이 은행나무골목이라고 불렀던 것 역시 이 은행나무로 인하여 그런 것이다. 지금도 은행나무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랜드마크(land mark)가 되고 있다.
은행나무 옆 한옥은 전주최씨 중랑장공파 종대(宗垈)인데, 원래 은행나무가 종대 마당에 있었으나, 골목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울타리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은행나무 나이가 얼추 600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 나무가 전주최씨 종대의 정원수로 심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주최씨 가문에서 처음으로 『강희보(康熙譜)』를 만들면서, 문성공 최아(崔阿)를 시조로 삼은 것이 1686년(숙종 12)이므로 은행나무가 자리를 잡고 나서도 수백 년이 지난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이 도시 한 복판으로 도로가 포장되어 수분과 자양분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연 등 생존환경 악화로 수세(樹勢)가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어서 얼마 안 가서 고사(枯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은행나무 줄기가 하나 자라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언론 발표에 의하면
전주한옥마을 600살 은행나무 `늦둥이' 봤다.
산림과학원 DNA 검사로 `친자' 확인.
(대전=연합뉴스) 정찬욱 기자.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의 600살 은행나무가 뒤늦게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6일 국립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전주시 의뢰를 받아 이 은행나무와 뿌리 근처에서 자라난 5년생(生) 어린 은행나무의 DNA를 검사한 결과 유전자가 일치해 친자식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생명을 다한 천연기념물의 후계목을 선정하기 위한 나무 유전자 분석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살아있는 나무를 대상으로 친자 관계 확인이 이뤄진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풍남동 은행나무는 높이 16m에 둘레 4.5m로 고려 우왕 9년인 1383년에 학자 최담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주변에 있는 전통가옥 700여 채와 함께 한옥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은행나무 뿌리 근처에서는 2005년부터 어린 은행나무가 자라기 시작해 현재 키 6m에 둘레 8㎝까지 컸다.
전주시는 지난 600여 년 동안 자식이 없던 터라 다른 은행나무 씨앗이 날아와 이곳에서 자랐을 수도 있어 지난 6월 검사를 의뢰했다. 어린 은행나무가 노거수의 생장을 방해할수도 있어 친 자식이 아니면 다른 곳에 옮겨 심거나 제거할 상황이었다.
산림과학원은 두 나무의 잎과 주변 다른 은행나무 5그루의 잎에서 DNA를 추출해 `친자감별용 유전자 지문분석'을 해 두 나무의 유전형질이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씨앗에 의한 발아가 아니고 이 늙은 은행나무의 뿌리에서 직접 돋아난 `맹아묘'로 최종 판정했다. 산림과학원 유전자분석팀 홍용표 박사는 "노거수의 뿌리에서 어린 나무가 다시 태어난 드문 경우로 늙은 은행나무가 회춘(回春)을 한 셈"이라며 "나이가 더 들어 수명을 다하더라도 그 후손이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사에서는 고려 우왕 9년인 1383년에 학자 최담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라고 적고 있지만 근거로 삼을 만 한 문헌은 없다.
특히 은행나무 아래에 전주 시청에서 세운 비석이나 그 외 여러 곳에도 그런 취지로 적혀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물증을 찾을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최담(崔霮, 1346~1434)이 심었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