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모녀
내 하느님은 절망에서 태어난다.
참혹, 불안, 공포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그러는지
자기 어머니는 어쩌지 못하고
나만 다독거린다.
모녀가 닮아 보이지는 않는다.
잠긴 꽃
—2014.04.16.08:48, 476명을 태운 세월호 참사 관련 인원은 2015.02.10. 현재 실종 9명(고교생 4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 사망 295명(고교생 246명), 구조 172명(고교생 75명)이다.
공복이 공범이고
종교가 상업이며
돈이 모두의 눈부처다
가만히 있으라
말 잘 듣다 잠긴 뒤
하얀 국화 송이로 솟아올라
몸부림은 거듭된다
바람의 노래로
노란 리본으로
촛불로
호랑이의 눈빛으로
삶의 길
—남한산성 서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러
인조가 갔던 길을 간다.
밥줄로 이어지는 그 길,
몽은의 질시도 받으며
가족을 볼모로
일생의 여름철을 바치러
가고 또 간다.
항복은 수항의 칼을 품기 마련,
화쟁을 꿈꾸며 간다.
여의주
—백제금동대향로
용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입으로 떠받든
백성과 새와 짐승 등이 바로
그의 여의주였다.
그들이랑 피워낸
연꽃 봉오리 세상이 바로
그의 여의주였다.
날아와 깃을 휘날리며 빛내는
봉황의 여의주가 또한
그의 여의주였다.
새 청룡도
고분을 빠져나와
뱀의 몸을 얻은
벽화의 청룡은
교외 포장도로에서
달리는 차바퀴를 기다려
순간 압착
생체 그림이 된다.
사람들의 질주를
떠받치느라
한 점 남김없이
먼지로 흩날린다.
현무도
―고구려 강서큰무덤 벽화
뱀과 거북은
서로 휘감고 휘감겨 있다.
목과 꼬리를 걸어 만든
뱀의 원 안에서
둘은 마주보며
입 맞추고 속삭인다.
천 년을 넘은
열애――,
벽, 바닥, 천장이
아직도 온통 노을로 탄다.
잡귀 따위가
얼씬댄 흔적도 없으니
이렇게
못 지킬 것은 없다.
한밤중에
기다리던 손이 먼저 나갔다.
가려움의 씨를 몰래 뿌리고
깊은 맨살을 진즉부터 기다렸다.
저쪽 등의 가려움이 내 손에서 싹터
신경을 타고 올라 뇌를 두드리고
다시 혀와 입술을 움직여
"자기, 등 좀 긁어 줘요"
말의 머리가 나오자마자
그 한참 전부터 나가고 있던
두 손이 팔뚝까지 달려 나갔다.
등을 어루만지듯 긁으며
가려움의 밭을 넓혀 가다가
몸을 감으며 살늪에 빠져들었다.
송전탑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은
온갖 목숨들의 사리탑이다.
버텨 서고 늘어선 방방곡곡
자자손손의 사리탑이다.
총총한 목숨들을 태우다니
검은 줄로 흐르면서 전기는 울고
핵폭탄보다 어쨌든 더 끈질긴
핵발전 불의의 살의를
밤새 뜬눈의 마른 눈물로
거리거리 집집에서 기진해 운다.
닫힌 문
사람이 죽은 뒤 거의
백골로 발견되는 일이 이어졌다.
60대 여자는 5년,
50과 60대 남자들은 5개월 만이었다.
셋 다 홀로 살던 세입자였다.
옷을 껴입고서
이불 속에 모로 누워 웅크리고
부엌 바닥에 엎드리고
주검째 철거된 주택 폐기물 처리장에
해체돼 버려진 채였다.
사람의 장례에 벌레들뿐이었고
부고는 전혀 없었거나
늦게나마
문틈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
쓰레기로 흩어진 자기 몸이 전부였다.
새만금
하리수 씨,
아니 수리하 씨,
완전 제 이상형이에요!!!
호호 호호호…♥^^
헤헤헤헤 손가방
벌써 4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아버지는 늦게 본 큰며느리가 이뻐서
손자 낳아주고 살림 잘하는 큰며느리가
하도 이뻐서
손가방을 하나 사다주셨는데
장에서 제일 좋다는
여자 가방을 사다주셨는데
그게 나들이 때 달랑달랑
들고 다니는 핸드백이 아니고
중고등학교 여학생용 책가방이었다
헤헤헤헤 골목골목 웃음보따리였다
헤헤헤헤 둘러댄 외손녀 가방이었다
백범 성좌
경교장 임시정부 주석실 유리창에는
하수인이 쏜 흉탄 두 발의 파열흔이
지금은 대낮에도 성좌로 빛난다
번개우레좌로 번쩍이며 쩌렁댄다
아직도 남북으로 분쟁 중이냐며
아직도 그 하수인들의 세상이냐며
아직도 아름다운 나라와 멀어지느냐며
피에타
넋 잃고 안고 있네
싸늘해진 그들을
공부가 학생을
실직이 노동자를
분단이 군인을
독거가 노인을
다슬기
꽁무니를 잘리고도
입으로 빨아주자 헤헤헤헤
몸을 돌려 입을 맞춰주는 순간
속살을 홀랑 빨리고 만다.
껍데기만 남아 버려지며
씨가 마른다.
카페 게시글
안방
백우선의 시들
백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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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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