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눈>
대본/연출 백석현
배우 황위재 최승호 윤만달(윤성원)
일시 8월 15일 오후 1시
장소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주최 항일영상역사재단
후원 독립기념관 후원
1장 일제강점기 해외 한인의 활동
배우들은 무대 위가 세계지도 평면도라는 기준을 설정하여 하와이, 중국, 러시아가 위치한 자리에 어림잡아 서본다. 노래를 제외한 배우의 말은 대단히 빠르게 진행된다. 역사적 기록을 순차적으로 읽는 것으로써, 시간의 물리적인 간극의 거리감에 따라 리듬과 템포가 달라지는 방식 또는 배우에게 감각되는 시간, 상황, 사건을 충동이 일어나는 대로 말의 크기, 빠르기, 음의 고저 등이 구성되는 방식도 흥미로울 수 있겠다.
배우1
1903년 1월 13일 Gaelic호를 타고 102명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
배우2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건너간 안창호 등은 1905년 4월에 ‘공립협회’라는 항일운동단체를 조직. 같은 해 11월 22일에는 <공립신보>를 창간하여 항일 구국 투쟁을 전개.
배우3
장경 등도 로스엔젤레스 지역으로 건너가 1905년 12월 9일에 ‘대동교육회’를 조직하였고 이후 ‘대동보국회’로 개편하고 <대동공보>를 창간.
배우1
1907년 7월, 고종이 양위를 하고 군대까지 해산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한인 단체를 통합하고자 같은 해 9월 2일에 ‘한인합성협회’를 조직. 10월 22일 <한일합성신보>를 창간하여 독립운동.
배우2
1908년 3월에 장인환과 전명운 등은 항일 애국 운동을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1909년 2월 2일에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 로스앤젤레스의 ‘대동보국회’를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를 창립.
배우3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하와이 교민을 중심으로 ‘애국금’ 30만 달러를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1919 – 1945년까지 ‘혈성금’‘후원금’ 명목으로 독립 의연금 300만 달러를 별도로 모금하여 임정에 헌납.
배우1
중국 지역에서는 1939년 김구를 주축으로 중국의 군사기관에 복무하였거나 상해,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고 있던 청년지사 30여 명이 모여 독립군 단체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 중국에서의 항일전이 곧 우리의 독립전쟁이라 인식하고, 중국에 흩어져 있던 한국 청년들을 총집결시켜 중국의 항일전을 도움.
배우2
1940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됨에 따라 서안에 본부를 두고 총사령부를 호위하면서 장병들을 훈련. 한편으로는 하남, 하북성 등지로 나가 초모, 선전 및 첩보활동을 전개.
배우3
김원봉은 1938년 6월 중국중앙군관학교 성자분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친 한인 청년들이 한구로 집결하자, 이들과 조선민족전선연맹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조선의용군’을 결성하였고 이후 ‘조선의용대’로 명칭. 10월 10일 한구에 있는 중화청년기독교회에서 조선의용대 창설식을 거행하였는데,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무장조직.
배우1
러시아 지역 이주 한인들은 구한말의 혼란과 기근을 피해 연해주 지역에 정착하여 소비에트 건설에 참여한 이들, 일제 강점기 사할린의 탄광으로 징발되었다가 본토로 이주한 이들,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로 이주한 독립운동가 등 복잡하게 구성.
배우2
‘고려인’이라고 불리운 이들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내전에서 볼셰비키파에 적극 가담하여 원동 소비에트 정권 창출에 공헌하였다. 원동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된 후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일제강점 하에 있는 조선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자신들이 개척한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
배우3
그들은 원동을 봉건 압제와 일제 강점으로부터 탈출의 땅이자 “조국해방의 열쇠”로 인식. 그러나 고려인들의 꿈은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와해. 피땀으로 일군 원동에서 추방되어 낯선 황무지에 내몰림.
노래1 – <영웅>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 우린 어디에 있나
잊어야 하나 잊을 수 있나 꿈에 그리던 고향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두려운 앞날 용기를 내어 우리 걸어가리라
눈물을 삼켜 한숨을 지워 다시 걸어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서글피 우시던 모습
날이 새면 만나질까 멀고먼 고향 너무 그리워
기적소리가 우리의 심장 고동치게 하리니
조국을 향한 그리운 마음 눈시울이 뜨겁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우리가 반드시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2장 항일운동의 역사
배우들 중앙에 모여 선다.
배우1
1592년부터 1598년. 임진왜란과 호남의 의병활동. 호남 지역 의병들의 활약으로 호남평야가 지켜짐으로써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승리.
배우2
1894년. 동학농민운동. 격동의 19세기말. 호남 지역 농민들은 봉건적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 항쟁을 일으켰다. 일본과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
배우3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33인이 탑골공원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하며 시작된 3.1운동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전국에 퍼짐.
배우1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일제의 식민지 노예 교육에 맞서 일어난 광주고보와 광주농고의 동맹 휴업은 많은 학생이 감옥에 가거나 학교에서 쫓겨남으로써 일단락. 조선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충돌 후 편파적인 처벌로 말미암아 조선 학생들이 민족의 독립을 외치며 봉기.
배우2
1960년. 4.19혁명. 1960년 3.15 부정 선거 이후 이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경찰과 정치 폭력배의 무자비한 제지로 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 특히 4월 11일 마산상고 학생이었던 김주열 군의 주검이 바다에서 떠오르면서 전국의 학생들과 국민들의 흥분은 극에 달하여,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저항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일어남.
배우3
1980년. 5.18민주화 운동. 박정희 유신 체제가 무너진 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권을 획득하려 하자 이를 제지하고자 광주의 시민들이 일어섰다. 이 민주화 운동은 군인들에 의하여 잔혹하게 진압. 제5공화국은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
배우1
1987년. 6월 항쟁.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군의 사망 사건. 두 청년의 죽음은 전국적인 민중 항쟁을 이끌어 냈고, 그 결과 노태우의 6.29선언을 통해 군사 독재 사회에서 민주 사회로 바뀌는 결과를 이끔.
노래2 – 단지동맹
내 조국의 하늘 아래서 살아갈 그 날을 위해
수많은 동지들이 타국의 태양 아래 싸우다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간절했던 영혼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뜨거운 조국애와 간절함을 담아
저 안중근은 이 한 손가락을 조국에 바치겠습니다
울창한 자작나무 숲 망국의 땅 우리는 모였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거운 심장으로
나 이 순간 맹세하나니 비록 조그마한 일이나
이것은 결의의 시작이니 뜨거운 피로 싸우리라
천년을 흘러온 해란강처럼 천년을 버텨온 백두산처럼
피로맺은 맹세 피로맺은 결심 나 오늘을 저버리지 않으리
대지로 내리는 이 햇살처럼 나무를 흔드는 이 바람처럼
너와나의 약속 우리 가슴속에 영원토록 기억하리
나 오늘 이 순간 맹세하나니 내 조국 위하는 우리의 열정
우리 여기 모여 함께 나눈 순간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
대지로 내리는 이 햇살처럼 나무를 흔드는 이 바람처럼
너와나의 약속 우리 가슴속에 영원토록 기억되리
우리의 함성이 잠자는 숲을 깨우듯
어두운 이 세상 깨우리 잊지 말자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