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은 수박이 참말 먹고 싶다. 간절한 마음에 글도 한번 써봐야겠다는 충동이 불끈한다. 제목을 '수박 타령'이라 쓸까? '수박 예찬'이라 붙일까? 고민도 했다. 요즘처럼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 날씨!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 - 참외, 포도와 황도, 늦가을 홍시 - 보다도 특별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 중 단연 1등은 수박이 아닐까 싶다. 찌는 듯한 한여름 냉장고에서 막 꺼낸 빨간 수박 덩어리 - 생각만 해도 금세 온몸이 시원 상쾌해진다. 초록색 두터운 껍질에 날 선 부엌칼 꾹 눌러 서너 번 톱질하노라면 "쫘~악" 반듯하게 두 쪽으로 쪼개지면서 빨간 속살을 드러내는 그 순간이야말로 경이롭기 그지없다.
《수박》하면? - 나에겐 아찔한 두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초등 3학년 때, 외숙모님과 도고온천 난장판에 씨름 구경 갔다가 뒷걸음을 쳐 한가득 담아놓은 수박 바지게 작대기를 건드려 잘 익은, 그 큰 수박 덩어리들을 몽땅 쏟아 나뒹굴게 한 사건이다. 여기저기 빨갛게 깨뜨려져 흩어진 수박들 곁에 많은 구경꾼, 주인과 나 혼자 남아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 못하고 그저 "제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용서해 주십시오"만 연발 - 한참을 침묵하던 주인아저씨께서는 "어린 너 혼자구나, 앞으론 주의해라"하시며, 그 큰 손실에도 용서해주셨다. 그때의 농촌 인심이 그랬다. 정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은 가슴에 남아있다.
두 번째 사건은, 여름방학 때 모시밭골, 우리 동네 친구들 다섯 명이 대청마루에서 함께 자는 척하다가 한밤중 언덕을 넘어 원두막 있는 수박 밭을 습격한 일이다. 검은 팬티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일제히 집단 습격하여 정신없이 수박서리를 감행했으니 깜깜한데 어찌 익은 수박만 땄으리오? 지금 생각하면 큰 도둑질인데... 더군다나 짓궂게도 낮에는 그 원두막에 가서 주인의 동정까지 살펴보았으니... "어젯밤에 어느 놈들이 익지도 않은 수박을 서리해 갔다"며 속상해하셨다. 속으로 얼마나 킬킬대며 웃어댔던지... 정말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순간이었다. 나는 철들면서 하나님께 수없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지로서 이집트에서 재배가 시작되고 우리나라는 조선 《연산군 일대기》에 기록이 있어서 그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해살이 쌍 잎 풀 식물로 암수가 한그루로서 줄기가 땅을 5m나 기어간다. 5~6월에 피는 연노랑 꽃도 참 예쁘다. 꽃말은 '큰 마음'이란다. 열매가 삼겹으로 구성되어 바깥 껍질은 짙은 녹색, 청개구리 색이나 연한 호박색으로 단단하고, 속껍질은 하얀 박 속 같다. 새까만 씨(희고 노란색 등 변종도 있음)들이 총총 박혀 있어 골라내고 먹는 수고로움이 옥에 티일 뿐, 속이 꽉 찬 과일로 정말 맛깔스럽다.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족 식품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둥근 것 말고도 타원형, 길쭉한 것 등 5~6Kg을 넘어 10Kg짜리 왕수박이 나올 정도로 매우 다양하고 온실 재배도 퍽 흔해졌다. 한방과 구창, 보혈, 강장제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핏줄인 우장춘 박사가 천신만고 연구 끝에 '씨 없는 수박' 만들기에 성공하여, 세계로 퍼뜨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맴~맴, 쓰르램" 매미 우는 소리 절정인 한여름, 쩍 갈라진 빨간 수박 속살을 파내어 얼음 알 "동동" 띄워 수박화채와 빙수를 만들어 먹거나 곱게 갈아서 주스 한 잔 "쭈-욱" 마셔보라. 그 맛이 과연 어떠한가? 당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꿀맛 못지않다, 지상천국이 따로 없고나!
수박은 어지간해서는 혼자 숨어서 못 먹는다. 조각달처럼 잘라서 여럿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워가며 야금야금 먹는 재미가 쏠쏠하고 너무도 정겹다. 우리 집 식구는 다섯이라 25,000원짜리 한 통이면 딱이지만 오늘 종강을 맞는, 모랫말 어르신 복지센터 수채화반 우리 친구들 열 명이 함께 쫑파티 하려면 아무래도 두 통은 사 가지고 가야만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선생님도 찜통더위 속에서 두 달 동안 "너무너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은 노년 인생을 멋지고 아름답게 살라고, 온갖 정성 다 쏟아부어 가르쳐주신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리오?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 더욱 찬란히 빛나고 행복하여라. 한여름 싱싱한 수박처럼 남을 유익하고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소망하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린다.
* 응암교회 은퇴장로 대산지방해양수산청장
녹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2회 국제 기드온
게이트볼 & 탁구 심판, 캘리그래피 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