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받으신 예수님
마가복음 1:4-11 / 2021-01-10
정확한 정보와 바른 판단
어제 오후 시내에 나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연말 병원에서 진료받고 복용할 약을 처방받았는데, 비가 오고 날이 궂었습니다. 다음에 약국에 들른다고 미뤘던 게 문제였습니다. 처방전의 효력은 두 주간이니, 이제는 약을 구매해야 합니다. 날씨는 더 나빠졌지만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야 했습니다.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애월로 갔습니다. 버스 승객은 나 혼자였습니다. 애월 약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귀까지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약국이 있습니다.
돌아오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보니, 292번 버스에 대한 안내가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정류장에 운행시간표가 붙어있고, 시내 혹은 읍내의 큰 정류장에는 모니터에서 버스의 위치와 기다려야 할 시간을 정확히 안내해줍니다. 봉성행 버스가 운행을 안 한다고 생각하여, 다른 경로로 돌아오는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습니다. 3분을 앞두고서야 모니터에 봉성으로 가는 버스가 안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요한 노선이 아니기에 시간이 임박해서야 정보를 제공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하마터면 다른 버스를 타고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돌아올 뻔했습니다. 이렇게 직전에야 잠시 안내된다고 알고 있었다면, 조바심하지 않고 더 여유있게 기다렸을 겁니다. 예전에는 버스를 한 시간 이상 기다리거나, 기다리다 못해 걸어가는 일도 흔했지요. 일상을 빈틈없이 꾸려나가려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구촌이 모두 난리입니다. 이상기후,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 대통령선거와 찬반 지지자들의 반응 모든 일이 엉망입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나쁜 방향으로 심각하게 얽혀있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번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이고,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운동경기에서의 판정은 쉽게 받아들이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놓고서 선거제도를 거쳐서 승부를 결정짓는 일에는 많은 위험요소들이 개재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인터콥과 땅밟기
인터콥의 무리한 활동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방역당국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코로나 확산의 고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코로나를 적대세력이 벌이는 범죄이거나 음모라고 주장하며, 마치 마지막 때를 놓고서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며, 추종자들을 선동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당을 점거하고 난동을 부리던 사람들도, 비슷한 정보를 믿고서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제가 인터콥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십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서울 강남의 가장 큰 사찰인 봉은사에서 땅밟기를 하면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고,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여리고 주위를 돌았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 합쳐서 열세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함성을 지르니 성이 무너져 쉽게 정복했습니다. 이를 본따서 남의 지역에서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찬양과 기도 등을 땅밟기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난 해 2월에 문제되었던 신천지와 다를 것 없이, 모략을 전도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모든 것이 다 선한 것으로 허용되었다고 착각합니다. 유럽 기독교가 퍼져나가는 가운데 이런 잘못을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십자군 원정도, 신대륙 정복과 원주민 학살도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는 복음과 십자가의 길과는 상관없는 잘못이며 범죄입니다.
당시 제주도에도 몇 목회자와 사모가 인터콥과 연관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바울이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어서 저도 참석했습니다. 의심을 갖고 경계하던 우리 교단에서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지요. 하지만 그의 말을 신뢰할 진실함은 없었습니다. 청중과 환경에 따라 멋대로 말을 바꾸기도 하고, 거짓을 내세우는 사악한 선동이었습니다. 온라인 검색으로도 그의 학력과 경력 그리고 활동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BTJ와 종말
BTJ는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의 첫 자들을 모은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유대인과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면 종말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생각은 이천 년 동안 때때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나도 45년 전에 처음으로 이런 내용을 들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집회에서 미국인 강사와 조용기 목사의 통역으로, 비슷한 구조의 급박한 종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아랍과의 대립, 그리고 러시아(소련)의 남하와 세계대전 등등의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 혹은 성취되어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다 약속의 땅에 모이고, 새로운 성전을 짓기 시작하면 종말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조사해보니, 열 두 지파가 다 모였고, 성전을 짓기 위해 돌을 깎고 다 준비 완료했다는 겁니다. 그때가 1975년이었는데, 1992년이면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 계산하였습니다. 1992년 10월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소동을 일으켰던 다미선교회의 잘못된 믿음도 비슷한 정보를 진리라고 내세웠습니다.
구약시대의 지파라는 구성단위는 북왕국의 소멸과 더불어 와해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는 지도층을 사로잡아 갔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들이 펼치던 혼합과 교류의 정책에 따라 이방인들이 이주하여 갈릴리에 살았고, 사마리아는 이방인과 얽힌 혼인 정책으로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사라진 열 지파가 나중에 유럽의 열 나라 혹은 민족을 이루었다는 식의 주장도 있습니다. 혈과 육의 시대가 지나갔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에 아무런 특권이 없다는 바울 사도의 선언을(고전15:50) 무시하고, 아직도 구약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조선(Chosen)을 선민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단 지파가 동쪽으로 와서 단군이 되었다는 억측도 돌아다닙니다. 혈족과 연고주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즐겨 내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특권이 폐지되고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신 예수님
예수님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섯 달 먼저 난 사촌이라는 계산도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그리 친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주에서 동네 손윗 어른 누구에게나 삼춘이라 부르듯이, 유대인들 그리고 성경에서 사촌이란 관계는 한 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뜻보다는 훨씬 넓게 활용했습니다. 삼촌부터 시작해서 사촌, 오촌, 육촌 등등 모두를 사촌이라는 명칭으로 두두 부르곤 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세례를 받으셨지만, 하나님으로서 죄를 없애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정화하는 예식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고대 동방교회의 신학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성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참 신학자라는 칭호를 얻은 사람이 둘 있습니다. 요새 말로는 찐 신학자이지요. 그 중 한 분이 그레고리우스입니다. 교리논쟁으로 어지러웠던 시대에, 정통신학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표현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교회 정치의 추악한 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던 분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장로교회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칼빈(깔방)입니다. 당시 열 살 이상 선배이고, 루터의 동역자로서 나란히 종교개혁의 견인차가 되었던 멜랑히톤은 유럽이 한결같이 인정하던 석학이었습니다. 칼빈을 여러 차례 만나고 교유하면서, “그대야말로 참 신학자”라고 칭찬한 일이 있었습니다. 노벨상이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인물들처럼 심사를 거쳐서 수여된 칭호가 아니지만, 가벼운 칭찬을 넘어서는 뜻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단강 물에서 예수님이 깨끗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접촉함으로 요단강물이 성스러운 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곳은 좁은 개울이고 흙탕물에 가까운 환경입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하며 몸을 담그곤 합니다. 그 중에는 일부러 이곳에 와서 세례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깨끗하게 그리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욕망으로 뒤덮힌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애쓰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의 뜻과 삶은 지표와 기준이 됩니다. 혼탁한 욕심과 잘못된 이론이 난무하는 교회에서 세례를 통하여 매듭을 지으며 새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선택 그 결단을 새겨보는 복된 날이 되기를 빕니다.
기도 / 세상 죄를 지시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구주로서의 삶을 출발하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거룩하신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이어지게 하시고, 순결한 마음으로 나의 추한 생각을 씻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