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수선하는 그녀
얼마 전 전철역에 있는 캘거리센터빌딩이 새로 단장을 해서 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샹젤리제의 불빛과 늘어진 커튼 그리고 공간마다 아름다운 장식품들에
제법 갤러리와 스튜디오도 갖추고 있어 쇼핑은 물론 휴식 공간으로서 아주 좋았다.
출퇴근할 때 이 아름다운 곳을 밟고 지나가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무 볼 일 없어도 이곳저곳 들리며 현대식 건축물의 아름다운 색채와 디자인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트센터 빌딩과 빌딩 사이 옷 수선 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어떤 아름다운 장식물보다도 더 눈에 번쩍 뛴 것은 당연했다. 달려갔다. 고향에서 수학여행갈 때 열차를 타고 마냥 달려보고 싶은 그 들뜬 기분이라고 할까?
나는 공중에 이미 날고 있었다. 현대식 빌딩 숲에 그런 반가운 코너가 있다니 그것을 보고 잠시 고향 생각에 빠져보기도 했다. 수선 집 하나로 옷들을 고쳐 입으면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던 먼 날의
그리움과 고향의 어머니와 정들었던 그 골목들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가져온 정장 바지와 치마의 허리를 늘리고 싶었었다. 그 옛날을 떠올리며 나는 나를 공기방울 밟듯 가볍게 글을 재촉했다.
여기는 먼 이국땅 캐나다, 한국인에게 맞는 옷들이 별로 없다.
캐나다인들에게 맞는 치수와 디자인들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수선코너를 이용해야 할 일들이 보통이 아니다. 이곳 여성 옷들은 동양인들에게 맞는 옷들이 드물다. 예를 들어 가슴이 너무 크게 만들어졌거나 파이거나 노출이 된 옷들, 블라우스에
허리춤이 너무 짧다거나 아니면 치마의 통이 너무 크다거나 바지 같은 경우도
통 자체가 맞지 않은 일도 있다. 때로는 가슴 노출이 너무 심해 한국에서 어르신들이 오시면 무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야한 블라우스와 레이스들 정말 수선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정서적으로 우리는 한국인들에 맞는 옷을 입고 싶다. 특히 앉고 일어설 때 속 옷들이 드러나는 장면과 의자 없이 앉고 일어섰을 때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수선 집을 찾게 돼 있다.
처음 그 수선코너에 들어갔을 때 나의 옛 정서가 있어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고 또 어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웠다.
향수병 환자도 아닌데 나는 왜 이리 작은 감동에도 뜨거워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봉소리가 먼 날 고향에 그 정들었던 소리 같아 심장에 연결이 되어 뛰고 있었다 수선 집 아주머니와 영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반갑고 좋아서 덥석 손을 잡았다. 한국 특유의 정이 흐른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서 옷을 찾으러 갔다. 옷을 수선하던 그녀는 나를 보자 손을 잡아줬던
그 따뜻한 기억이 생각났는지 반가워하며 환한 얼굴로 인사한다. 옷이 제법 많이 걸려있었다. 주문량이 많은가보다. 바삐 돌아가는
이민생활의 모습들 내 모습 같아 가슴이 찡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옷 수선 일을 하면서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접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 나름대로 가진 삶의 아픔과 상처의 이야기들을 많이 주고받게 된다.
박음질을 하면서 그 아픔과 고통도 함께 재봉이 도려지게 돼 있다 때로는 그것들을 여미고 접고 잘라내고 어루만지면서 박음질도 하게 된다
한 베트남 손님은 이곳에 들리면서 자신이 태평양을 어떻게 넘어왔나 눈물을 끝내 보이며 이야기한다. 월남전 패망 시 구사일생으로 보트 피풀로 운 좋게 살아서 온 사람이다. 배 안에서도 맨 아래에 부분인 화물칸 거기서 몰래 쪼그리고 그 아픈 시간을 참으며 눈물로 왔나 보다 그곳에서도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가 울면 바다에 그냥 던졌다고 한다. 끔찍한 만행을 봐야 했던 그 악몽의 기억 그녀는 그런 충격으로 머리가 정상이 아닌가 보다. 살아남으려고 짐승 같은 짓들을 봐야 했던 것이다. 몰래 올라탄 배
그 누구에게 발각되는 날은 모두가 뻔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별안간 김동환님의 시 국경의 밤이 생각났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며 내리며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베트남 그 여인, 절명의 이 시의 순간처럼 숨 막히게 호흡이 되며 공감을 했다. 동양계 또 한 여성이 들어왔다. 유행이 지난 긴 치마를 가지고 와서 미니스커트로 수선해 달라고 온 것이다 그녀는 옷을 가지고와서 기다리는 동안 베트남 여인처럼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낭비가 심하고 직장 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남자친구와 결별위기를 맞은 모양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옷을 수선을 해야 할까. 그녀는 천의 점선을 따라 가위를 대본다 잘못 된 것은 잘라내고 보기 좋은 곳은 살리고 유행에 잘 맞지 않은 고집 같은
긴 밑단은 과감히 쳐내서 짧고 활동하기 편한 새 옷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옷의 천도 요즘은 겨울이지만 퍽 얇아졌다. 그 남자의 얇은 마음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있어 따스한 것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따스한 마음을 갖고 있는
상대가 있어 따뜻해보였다.
수선 집은 늘 그렇게 그때 그 것들에 맞는 다양한 말과 천들이 이야기처럼 많다. 먼 이국땅에 와서 외롭다 보면 남녀는 사랑도 쉽게 이루어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잘못 만나면 손님처럼 마음 아픈 일들이 벌어진다. 이민생활도 힘든데
구멍 나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면 다시 이곳에 와서 아픔을 이야기하고 눈물도 흘리고 위로를 받는다 천처럼 다시 그것들을 오리고 붙이고 자르고 위로도 해 주고 눈물도 흘린다.
그러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옷들이 수선되어간다. 때로는 함께 눈물도 흘린다. 삶이란 눈물 없이 어떻게 진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가 완성이 되면 다른 사람이 오고 또 다른 손님이 오고 또 피부색깔이
다른 눈물 나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러면서 어느새 먼저 온 손님의 옷들이 완성이 되어 입어본다.
얼굴에 비친 환한 얼굴 그늘로 이야기했던 그 우울증은 간데없고 옷처럼 마음이
수선이 되어 환하게 바뀌는 것을 보면 그녀는 행복을 깁는 여인이다
손님들이 기다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픔도 함께 박음질이 되어
옷도 마음도 새로 수선이 되어 환하게 문을 나서는 것을 보면 삶에 그 어떤 힘이 솟는다 며칠이 지나 먼저 옷을 들고왔던 손님을 다시 만난다 얼마 있으면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했다고 한다. 옷처럼 새로 변해서
다음 달에 결혼을 하게 된다는 소식이다. 멋지게 옷을 수선하는 일도 좋지만 손님이 그런 행복한
소식을 들려줬을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듯 그녀는 헌 옷을 기우는 것이 아니라 한 조각 아픔들을 깁고 오려서
행복을 수선하는 여인 같았다. 점심시간이 돼면 습관처럼 그녀의 집을 잠깐 들려 차 한 잔을 나눈다. 수선 집 아주머니는 차를 드시다 말고 한 숨을 쉬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주머니보다 훨씬 먼저 캐나다에 광부로 왔던 남편은 생활이 안정되어 갈 무렵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고한다.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고 형편도 조금 피기 시작하였는데 의사로부터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남편은 로키산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간직하고 가려는 듯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창가 한 쪽으로 살아생전에 찍었다고 하는 가족사진에는 하얀 눈을 배경으로
맑은 웃음이 전해지는 가족사진이 한 송이 꽃처럼 놓여있었다.
이민 생활 하면서 헤지고 찢기고 구멍이 난 아픔들을 그녀는 옷을 수선하면서
함께 아픔들을 여미고 깁고 수선한 것이다. 그렇게 행복을 수선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어수선한 마음들이
박음질 됐나 요즘 얼굴이 환해졌다 창문에 기댄 햇볕이 오늘따라 더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마음 아팠던 이민 생활, 그녀를 통해서 옷처럼 수선이 되고 여미어졌나
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