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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에 위치한 섬.
독도가 처음 우리나라 문헌에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서다.
울릉도와 우산도(지금의 독도 옛이름)라는 2개의 섬을 합쳐 '우산국'이라는 독립국을 이루고 있었는데 신라 지증왕(13년, 512년)때 이사부 장수가 신라군을 이끌고 그 유명한 전법인 '나무사자인형'전술로 우산국 사람들을 위협해 항복을 받아내고 우산국을 정복하였으며 이때부터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곳이 외떨어진 섬이다 보니 나라의 관리가 잘 미치질 못했다.
이에 일본은 군사와 어부들이 이 곳에 자주 나타나 툭하면 주민들을 붙잡아가 괴롭히곤 했는데 조선 숙종때 안용복이라는 조선의 어부가 일본으로 잡혀가는 일이 있었다. 잡혀간 안용복은 그들에게 굴하지 않고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분쟁의 불합리한 점을 일본에 따져 일본측의 잘못 인정을 받아내고 일본이 조선에게 사과의 문서를 보내옴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이후, 고종(37년, 1900년)때 대한제국 칙령 제4호로 울릉도는 울도로 개칭하고 그 당시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울릉도와 독도를 한데 묶어 독립 군으로 설치,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울릉도 앞 작은 섬)와 석도(독도)라고 못밖았다.
그러나 1904년 조.일 의정서에 의거 일본은 독도에 해군 기지를 설치 했으며 1905년 2월22일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 소관 아래 편입 한다고 일방적 발표를 했다.
일본은 이 사실을 1906년 4월에 대한제국에 통보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677호로 독도가 일본 영토로 부터 분리되었음을 선언하고 한국에 반환하였다.
1949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와 동시에 정부는 독도에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를 부여 하였다.
1953년 6월 27일, 28일, 7월 1일, 28일 등 일본 순시선에 일본 관리와 우익 분자들을 싣고 와서 독도에 상륙 시켰으며 이에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여 이들을 몰아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97년 11월 7일 총 사업비 177억여원을 들여 80미터의 주 부두와, 20미터의 간이 부두, 137미터의 진입로를 갖춘 독도 접안 시설을 준공하였다.
준공을 기념하는 기념비에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 휘몰아치는 파도를 거친 숨결로 잠재우고 우리는 한국인의 얼을 독도에 심었노라' 라는 글을 새겼다.
현재는 민간 전화도 개설 되어있고 40여명의 경비대가 주둔해 있으며 우리의 등대와 선착장이 있다.
2003년 1월 1일 부로는 독도에 '799-805'라는 우편 번호도 부여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독도는 높이가 해발 170여 미터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독도를 받치고 있는 몸체는 바닥 지름이 장장 30여 킬로미터에 이른다. 풍부한 수산 자원을 안고 있으며 독도가 형성된 시기도 울릉도(250만년전) 보다 더 오래된 460만년전 으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