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치 그대로 진실
https://youtu.be/RMpsRfOb4S4 57:30
원제스님의 스토리텔링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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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숭산스님의 법문집 《부처를 쏴라》에 소개되는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라는 글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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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한 사람이 숭산 큰스님께 여쭈었다.
“공(空)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때로는 공함을 느끼는데요, 뭐랄까, 모든 게 무의미한 듯한 그런 느낌 말이에요. 하지만 그 느낌이 부처님께서 설하셨던 그런 종류의 공함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잘못 알고 있습니까?”
큰스님께서 답하셨다.
“네가 말하는 공함은 진정한 공함이 아니야. 일종의 공허감이야. 공허감은 느낌이나 조건에 대한 집착이 바탕이 돼. 그런 느낌이나 조건이 변하면 그 공함이 없어지지?”
“네, 그렇습니다.”
제자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이 아니야. 진정한 공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직관이며 변하는 법이 없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착만을 따라가. 그러니 실망하는 상황이 일어나면 전부가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어. 구 선생님이라고 열심히 수도하는 분이 있었어. 이분 연세가 일흔 정도인데 한번은 미국에 있는 딸네 집에 오셨거든. 온 김에 나를 만나러도 왔지. 구 선생님이 미국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을 보고 싶어 해서 함께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까지 운전해 갔어. 같이 이 저녁 식사를 하고 바닷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구 선생님에게 물었거든. ‘선생님께서는 불자이시고 열심히 마음공부도 하고 계신데, 이번 생에서 뭘 얻으셨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 선생님이 대답했어.
구 선생님은 대성한 사업가야. 서울에서 호화로운 집에서 살고, 자녀 중 일부는 미국에서, 일부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 형님은 유명한 식품 회사를 소유하고 있고, 가족이 전부 엄청난 부자이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 그래서 내가 말했지.
‘따님에게 멋진 집이 있다면서요. 따님이 매우 행복하겠어요.’
그랬더니 이 양반이 대답해. ‘글쎄요. 멋진 집? 행복? 어떤 종류의 행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어. ‘그나저나 올바른 행복이 뭡니까?’
이분은 이미 올바른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어. 일흔 평생 안 겪어본 게 없으셨지. 좋은 물건도 많이 가졌고 경사(慶事)도 많았거든. 다사다난했던 거야. 많은 일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했다고. 흥했다 망했다. 흥했다 망했다. 그랬어. 구 선생님은 조만간 돌아가시겠지. 그런데 내가 ‘뭘 얻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아무것도 없습니다’고 했어.
이 ‘아무것도 없다’가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없다’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달라. 지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여전히 장애가 생겨. ‘아무것도 없다’를 이해하려 들면 자신의 삶 을 구름이나, 번개나, 이슬처럼 바라보게 돼. ‘일체는 변하고, 변하고, 변한다. 모양이 있는 것은 항상 변한다. 그러므로 일체가 아무것도 아니고 내 삶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모양이 있는 것은 다 공하니 내 삶도 공하고 아무것도 아니다.’ 이걸 지식으로만 이해한다면 공에 집착하게 되어 찰나찰나 타인을 위해 살지 못해. 이는 일종의 소외(外)고, 극단적인 경우 허무주의가 되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겪고 있다고.
그러나 이것을 깨달으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그렇게 되면 집을 가지는 것도 옳고, 마음도 옳고, 행동도 옳고, 본성도 옳게 돼. 이 ‘아무것도 없다’ 하는 경지에는 색도 공도 없거든. 그러나 ‘색도 없고 공도 없다’는 말 역시 생각일 뿐이야.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자체가 그 본체를 깨닫지 못했다는 소리야. 진정 ‘아무것도 없다’ 하는 것을 깨달으면 거기엔 말도 글도 없어. 그렇게 되면 색즉시색 공즉시공이 돼. 있는 그대로가 진리인 여여(如如)란 말이야. 네가 일흔이 되었을 때 누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제자가 바닥을 친다.)
“나쁘지 않아. 그러나 손이 없으면 어떡할 거야? 허허허! 너에게 묻겠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없고 마음도 없었어. 지금은 눈, 코, 입, 귀, 혀, 몸, 마음 다 있어. 언젠가 죽으면 이것들은 다시 없어지겠지. 네가 ‘나’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일시적인 조건일 뿐이고 참된 자성이 없어. 그러면 뭐지? 그러면 너는 누구야? 아주 중요해! 대중 가운데 한 명이 바닥을 쳐서 대답한다면, 그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그러나 몸뚱이가 없으면 바닥을 어떻게 치지? 바닥을 치는 건 공을 아는 것이야. 그러나 진정으로 공을 깨달으면 어떻게 답하지? 조심해!
그러니 공을 이해하거나 공허감을 느끼는 걸로는 도움이 안 돼. 그러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나는 누구인가? 참구한다면 진정 공을 깨닫고, 나아가 온 세상을 도울 수 있어. 알겠어?”
제자는 “가르침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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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질문이 멈추면 스스로 답이 된다.- 원제
2020.1.13.19:31
https://blog.naver.com/tenten98/221770369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