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文殊山 금봉암金鳳庵 창건비創建碑
대한불교조계종 문수산 금봉암 창건
은암隱庵 고우古愚 대선사 추모비명
스님은 1937년 경북 고령에서 의성 김씨 재탁과 어머니 이단랑 사이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1년 폐병을 요양하기 위해 김천 수도암으로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되어 법회 스님을 은사로 하여 출가하였다. 청암사 강원에서 고봉, 관응, 혼해 강백에게 공부하면서 불교의 지혜를 알게 되니 병이 저절로 나았다. 29세에 향곡 스님의 기장 묘관음사 선원에서 첫 안거 이래 평생 선의 길을 갔다. 1969년 문경 김용사에서 도반들과 ‘봉암사 결사 정신 되살리자’며 제2봉암결사를 하여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의 기틀을 다졌다. 1971년 문경 심원사에서 정진 중 ‘무시이래 無始以來’ 뜻을 깨닫고 마음이 편해졌다. 1980년 신군부가 불교에 10·27 법난을 자행하여 총무원이 마비되자 봉암사 대중이 총무원을 임시 운영하게 되었는데 탄성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모시고 총무부장을 맡아 법난을 수습하고 봉암사로 돌아왔다. 1987년 각화사 동암에서 중진 중 『육조단경』을 보다 ‘백척간두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의 뜻을 깨치고는 마음이 환해졌다.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와 『백일법문』을 보고 불교의 근본이 중도임을 확인하고 돈오선의 가치를 정립하였다. 이후 도반들과 선납회(禪衲會, 현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하고 1987년에 해인총림에서 선화자禪和者 법회를 주도하여 선풍을 진작시켰다. 2002년에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을 맡아 15개월 15시간 가행정진 결사를 이끌었다. 2005년 선원수좌회 공의로 『간화선』을 편찬하여 화두 참선의 현대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 2006년 봉화 문수산에 금봉암을 창건하였다. 혜국스님과 도반들이 부지를 도왔고 학수비구니와 신도가 법당을 지었고, 대효스님과 중효거사, 대구보살들이 불사를 많이 도왔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되고, 대종사大宗師 품계를 받았다. 불교인재원 증명법사로 많은 이들에게 중도 정견과 화두선을 안내하였으며, 2012년 조계사 선림원 증명법사에 추대되었다. 80세가 되자 은퇴할 때라며 일체 대중을 만나지 않았다. 말년에 가까운 이들이 안부를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전해라” 하셨다. 2021년 8월 29일 봉암사 동방장실에서 홀연히 돌아가시니 세수 85세, 법납 60세다. 전국 선원 수좌들과 봉암사 대중이 선풍 진작과 봉암사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기리어 봉암사에서 다비하고 탑을 모셨고, 금봉암에도 탑과 비를 세운다.
2023년 9월 6일 비문은 여천 무비 짓고, 이재순 석장 제작, 중산 중선 중관 세움.
全國禪院首座會 無門 無如 慧國 一悟 永眞 圓陀 鐵山 大曉 金剛 慧光 兒用
門中 法演 大元 門徒 中山 中禪 中觀
재가제자 중보 동봉 원봉 중경 중암 중효 정덕행 원덕행 성덕행 미타심 중덕행 정정심
관음행 보월화 묘법성 길상심 선명원 불교인재원 생활참선도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