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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구름 접속형 공동체>의 줄거리:
클라우드콤퓨팅이라는 단어가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자료를 개인용 콤퓨터 안에만 저장하지 않습니다. 구름처럼 인터넷 상에 떠있는 저장소에 내 자료를 보관하고 장소가 어디든 제한 없이 꺼내 봅니다. 그러나 이 첨단 서비스시스템의 원조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생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클라우드콤퓨팅 시스템을 존재의 근본형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름 접속형 공동체
(행1:12~26)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구름 접속형 공동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구름 접속형 공동체’
여러분, 요즘 들어 굉장히 자주 듣게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클라우드 컴퓨팅입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라고도 하고 또 클라우드 서버라고도 하는 말도 많이 들립니다.
근데 이 클라우드 컴퓨팅이라고 하는 게 뭐냐?
클라우드는 영어에서 구름을 뜻하는 단어죠, 한 마디로 말하면 인터넷 상에 내 자료의 저장소를 구름처럼 띄워놓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 이 클라우드 컴퓨팅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컴퓨터를 사용할 때, 내가 다운받아서 갖고 있는 자료들, 예를 들어 목사님의 설교영상이나 사진, 내가 작성한 문서나 좋아하는 음악들을 내 컴퓨터 안에 저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면, 집에서 멀리 떠나서 있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내 컴퓨터 안에 저장해 놓았던 설교를 듣고 싶다든지, 아니면 음악을 듣고 싶은데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간적으로 장소의 제약을 받고 있는 내 컴퓨터 안에 저장되어 있는 내 자료들을 꺼내보는 일, 이것을 이제는 인터넷 상에 내 저장소를 만들어두고, 그 저장소를 클라우드, 구름이라고 하는데, 그 구름과 접속만 하면 어디에서든지 다 꺼내볼 수 있게 만든 겁니다.
내 컴퓨터 안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 상에다가 내 저장소를 만들어서 구름이라고 이름지어서 띄워놓고 있기 때문에, 그 구름과 접속만 하면 산 속에서도 내 자료들을 꺼내볼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컴퓨터 단말기가 없어도 요새는 스마트폰을 갖고도 어디서든지 구름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 자료들을 꺼내서 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걸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아세요? 정말 재밌어요.
저는 이런 걸 너무나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너무 신기합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2000년 전, 교회가 생성될 때부터 있어왔다는 겁니다.
교회의 생성은 구름 접속과 함께 이루어져 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교회의 본질은 구름 접속형 공동체라는 겁니다.
아! 이거 신기한 거예요.
이미 다 성경 안에 이루어진 일들을 이제 쫓아오면서 첨단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한번 살펴봅니다.
자, 이제 주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얼마나 놀랐겠어요?
정말 amazing 한 일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없어져 버리시는 거예요.
구름 위로 올라가버리셨습니다.
이걸 경험한 뒤에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이 왔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수발을 들던 여자들, 예수님의 형제들이 모이고 해서 다 합해서 120명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기도합니다.
최초의 공동체가 여기서 형성이 된 겁니다.
이 공동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신 사건 위에 세워져 있는 공동체인 겁니다.
이 세상에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엄청나게 많은 인간의 조직들이 만들어집니다.
정말 다양한 유형의 조직들이 만들어지지만 유형별로 치면 다 구분이 되어 질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근거된 이 공동체, 유일무이한 공동체요, 인간사회의 섬입니다, 섬.
다른 인간사회와 완전히 구분되는 섬과 같은 120명이 모인 최초의 공동체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그래요.
이 기도에 힘쓴다는 게 무얼 말합니까?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구름이 가려지고 구름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들 120명이 그 승천하신 주님을 마지막으로 본 뒤에 모여서, 기도에 전혀 힘쓰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뭐냐 하면 바로 구름 위에 올라가신 주님의 나라, 하나님아버지의 나라와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컴퓨터로 접속하는 게 아니에요, 기도로 접속을 하는 겁니다.
구름 위에 있는 그 세계와 기도를 가지고 접속을 해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통해 접속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이 제 이 공동체는 낙하지점이 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추종자들을 40일 동안 만나시는데, 고린도전서에 보면 500명에게 나타나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타나신 뒤에 하늘의 구름 위로 올라가버리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케이블을 깐 것이에요.
그래서 그 케이블을 통해서 접속하는데, 컴퓨터 전원을 켜면서 접속하는 게 아니라, 기도로 접속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접속이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바로 천국의 기운이, 천국의 기운이라는 것은 천국에 있는 생각, 의견, 능력, 섭리적인 뜻이 그 주님께서 깐 케이블을 통하여 접속된 상태에서 그 공동체 안으로 바로 그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폭포가 낙하되는 지점이 바로 이 공동체였고,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하늘의 폭포가 이 땅에 낙하된 최초의 사건인 오순절성령강림사건입니다.
하늘의 기운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에요, 접속하게 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
이 공동체의 특성은 뭐냐 하면, 다들 가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문제가 많지요, 돈 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 있고 먹고 살아야 되는 문제도 있고, 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근데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이 세상에서 발생한 그 문제들을 직접 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구름 위로 접속을 합니다, 그래서 구름 위에 있는 천국으로부터 기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려옵니다.
천지에 담겨져 있는 물이 서쪽으로 압록강, 동쪽으로 두만강을 이루듯, 하늘 기운이 폭포수처럼 내려왔을 때, 가정으로 가면 가정으로 하늘 기운이 흘러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그 집안의 먹고 사는 문제, 병 문제, 자녀 문제, 온갖 문제들은 이 천국 기운이 휩쓸고 내려가면서 다 떠내려가 버리는 겁니다.
그 문제 하나하나를 붙잡고 씨름하는 게 아닙니다.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언제나 구름 위의 하나님나라로 기도하면서 접속해 들어갑니다.
그렇게 접속하면서 하늘 기운이 떨어지는 폭포수가 개통되게 되면, 그 개통된 수로를 통하여 하늘 기운이 쏟아져 나와서 세상으로 번져나갈 때, 그 번져나가는 하늘 기운의 물살에 의해서 이 세상 문제들은 다 와르르 무너져 휩쓸려 떠내려가 버리는 거예요.
세상 문제를 하나하나 다 다루는 게 아닙니다.
지금 사업장에서 문제가 생겼으면, 사업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거나 씨름하지 말고, 사업문제를 끊고 하늘과 접속하는 겁니다.
사업과의 접속을 끊고 하늘과 접속하는, 이게 바로 기도라는 거예요.
사업과 관계없는 하늘과 접속해서, 내 마음에 하늘 기운이 쏟아져 들어와서 이 세상으로 번져서 흐르기 시작할 때 세상문제는 저절로 다 해결이 됩니다.
이렇게 하늘 폭포가 쏟아져 내려서 흘러가는데도 세상문제가 그대로 남아서 걱정근심이 된다면, 그 문제는 저한테 알려주세요.
그건 자신 있어요, 다 떠내려가게 돼있어요, 이 세상문제는.
그러므로 세상문제를 갖고 씨름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그런 사람이 아닌 거예요, 이제는.
구름 접속형 인간이 돼서 구름 접속형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재밌는 얘기가 덧붙여집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삼스럽게 13절에 하나씩 다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룟유다의 이야기가 나오고 가룟유다의 빈자리를 새로 뽑아서 맛디아가 선출됩니다.
이 이야기의 포커스는 맛디아가 새로 선출되었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여러분!
가룟유다가 제외되었다는 사실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습니다.
어디로부터 가룟유다의 이름이 제외되었습니까?
예수님 승천 뒤 끝에 생긴 이 경이로운 새로운 공동체, 구름 접속형 공동체, 구름 접속형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 이 공동체에서 가룟유다만 빠져버렸습니다.
가룟유다만 이 새로운 경이로운 공동체, 역사 이래 유일무이한 이 공동체로부터 제외되었고 그의 이름이 누락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겁니다.
새로 뽑힌 사도로서의 맛디아의 이야기는 그 뒤로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가룟유다의 이야기를 왜 꺼냅니까?
가룟유다와 같지 않은 자들의 모임이 이 공동체이다, 공동체의 특성을 가룟유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비교하면서 부각시키는 겁니다.
가룟유다의 마음상태를 유지하는 자는 절대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서 가룟유다 얘기를 들춰낸 겁니다.
역사적으로 가룟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뽑은 사실이 있었습니다만, 이 사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고 계시는 게 뭐냐 하면, ‘새로운 공동체의 특성은 가룟유다 같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계시는 거라는 얘기에요.
그러면 이 경이롭고 놀라운 구름 접속형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공동체에서 왜 가룟유다는 제외되었고, 나머지 열한 사도는 포함될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뭐가 다른 것입니까?
가룟유다보다 나머지 열한 사도가 월등하게 탁월합니까?
아니에요, 승천하시기 직전까지도 이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땅에서 이스라엘나라를 독립시키는 회복의 사건이 언제 일어납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들입니다, 똑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추정해낼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앞에서 한 요한복음의 내용만 가지고 보자면, 요한복음 12장 6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300데나리온,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되는 값어치의 기름을 예수님께 부어드릴 때, 가룟유다가 화를 냅니다.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일이지 어떻게 이렇게 낭비하느냐?’ 이때 요한복음에 기록되기를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에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예수님이 함께 필요한 것을 쓰기 위해 모아둔 돈을 맡고 있었고, 그 돈궤에서 훔쳐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요한복음을 쓴 요한이 나중에 알게 된 겁니다.
자, 이 사실에서 무엇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 12제자가 모여 있는 그 공동체 안에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가룟유다는 회계업무를 맡고 있는 자로서 그 돈궤에서 자기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훔쳐서 썼습니다, 돈을 횡령한 겁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룟유다가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도둑질을 하게 된 마음상태가 문제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과는 따로 노는 거예요.
따로 논다는 것은, 예수님 말고 그가 마음에 갖고 있는 소원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가 마음에 갖고 있는 가치가 있었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게 따로 있었다는 겁니다.
이 말은 예수님 만나기 이전에 뿌리를 깊게 내린 자기 개인의 소원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돈이에요, 돈을 벌려면 당시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나라가 독립을 해야 됩니다, 그런 분명한 뿌리 깊은 자기 개인의 꿈이 있었고, 꿈이 먼저 든든히 뿌리내리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제부터 든든히 뿌리내리고 있는 내 소원, 돈을 좋아하고, 돈을 벌려면 벼슬을 얻어야 되고, 벼슬을 얻으려면 나라가 독립해야 되고…, 하는 자기 꿈의 실현과정을 위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꿈이 먼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소원과 이상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다른 제자들은 어부로 세리로 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팽배했던 메시아 대망은 있었지만 자기 개인이 주어진 삶 이외의 다른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주어진 것을 운명처럼 여기고 어부로 세리로 산 거예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이들이 꿈을 갖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 만나기 전에 뿌리를 내린 꿈이었다면 이들의 꿈은 예수님을 만나서 가만히 보니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거든요? 능력이 있습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그 능력과 지혜 위에 자기들의 꿈을 만들어간 자들입니다.
예수님 만난 다음에 예수님 때문에 생긴 꿈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자기들 스스로는 능력이 없는 걸 압니다.
주어진 삶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다가 가룟유다도 열한 제자도 십자가 앞에 서게 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의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꿈을 갖고 있는 한 이제 십자가로 가고 있는 예수님의 존재는 필요가 없게 돼버려서 팔아버립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위에 꿈을 세웠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주님이 돌아가실 때 이 땅 위에서 이루고 싶었던 모든 꿈이 다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맙니다.
이게 차이점이라는 거예요, 이게.
새로운 경이로운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는 자들이 누구냐?
이 세상에서의 내 소원이 십자가에서 깨어져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다시 만나서 제자들의 마음을 다 다시 엮어냅니다.
그리고선 그 마음을 가지고 승천해버리십니다, 구름 위로 올라가버리셨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 위에 이들의 꿈과 소망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주님 위에서 그들이 생의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주님이 구름 위로 올라가게 되면서 이제 이들의 기쁨과 행복의 이유가 구름 위에 있게 돼버립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실 때는 주님이 없어지는 줄 알고 꿈이 깨졌는데, 주님이 구름 위로 올라가버리시니까 이제 주님 따라 꿈이 이동되고, 기쁨의 이유가 이동이 되고, 행복의 이유가 이동이 돼버리는 거예요.
구름 위로 올라가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 공동체는 어떻게 돼버립니까?
기뻐하려 하고, 성취하려 하고, 내 기업을 갖고 싶어 하고, 내 몫의 인생을 챙기고 싶어 하잖아요? 그러면 구름 위로 접속해야 합니다.
내 기쁨과 내 마음의 만족과 내 마음의 행복을 위해서, 내 마음의 성취감과 인생의 보람을 위해서는 구름 위로 접속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이 구름 위로 가셨고, 이들은 애초에 주님 때문에 꿈을 갖기 시작했으니까, 주님 때문에 기쁨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합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끝까지 이 땅 위에서 구름 위로 올라간 주님과는 상관없이, 내가 스스로 마음에 소원을 갖고 기쁨의 이유를 만들어내서 그걸 성취하려고 하는 자들, 교회에 다녀도 실지로 그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가룟유다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가르쳐줘야 되는데, 목사님들도 모르고 계시니까.
죽은 다음에 천국 갈 것만 얘기하고 있으니까.
지금 접속해야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지금 접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기쁘고 행복해지는 것은 경제적 환경이 바뀌고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몸이 건강하고 오래 살고, 이래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기쁨과 행복은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의 말에서처럼 기도하는 시간 속에서 다 해결돼야 됩니다.
구름 위로 접속하면서, 구름 위에 있는 천국에서 그 하나님아버지와 승천하신 주님으로부터 내 마음속의 모든 기쁨과 행복이 다 주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기쁨과 행복과 내 만족은 기도시간에 끝나야 되는 게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거예요.
가룟유다처럼 아직도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게 많아서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그것을 이루고 싶어 하는 자들은 그 꿈을 놓지 않는 한, 반드시 예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가룟유다의 길을 걷게 돼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아예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 삼을 게 없어요.
공동체에 들어온 사람 중에서 누가 가룟유다의 길을 따라가게 되느냐?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소원을 놓지 않는 자들, 그것이 십자가에서 깨어지지 않는 자들.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은 어떤 자들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모든 소원이 십자가에서 다 깨져나가도록 십자가를 붙잡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주님 따라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내 마음의 기쁨과 행복과 만족의 이유가 구름 위에 있기 때문에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고 승천하신 주님과 연합해서 어떡하든지 구름에 내 마음이 접속되기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이 새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거예요.
기도함을 통하여 완전히 만족된 상태에서 이제 세상을 나갈 때, 하늘의 기운과 뜻이 나를 통하여 물줄기를 만들면서 세상으로 번져나가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져나가는 겁니다.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이 땅에 접속을 끊고 구름에 접속하는 겁니다.
구름에 접속해서 구름 위의 기운에 의해서 기뻐지는 거예요.
이 세상은 기쁨을 찾는 장소가 아닙니다.
구름에 접속하는 기도시간을 통하여 완전히 기뻐진 자들이 하늘의 기쁨을 갖고 천국의 기운이 강물처럼 흘러갈 때 그 흐름을 타고나가서 사명을 수행하는 장소이지, 기쁨을 찾는 장소가 아니라는 거예요.
새 공동체로서의 교회, 교회 안의 일원, 누가 되는 겁니까?
세상에서의 소원이 십자가에서 끊어지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오직 구름에 접속해서 구름 위에서 오는 기쁨으로 만족하는 그런 기도시간을 갖고 세상은 사명감으로 나가는 자들이 바로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인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기적 같은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오늘도 십자가 붙잡으며 세상을 향해 생기는 나의 크고 작은 소원들이 모두 깨어져나가게 하시고, 내 기쁨은 오직 구름에 접속해서 구름 위로부터 오는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며, 이 세상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명을 위해서만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