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에게 띄우는 글
설레는 마음으로
진달래, 개나리, 목련꽃을 기다려 왔는데
오늘은 눈꽃이 온 산야를 덮었습니다.
그것도 한자나 넘게
봄꾳이 나 몰래 입술을 열 듯
눈꽃도 초봄의 삼경에
새 신부가 옷 벗는 소리로
창가에, 골목에, 나무위에
나 몰래 내렸습니다.
어릴적 보아온 새하얀 눈이었습니다.
그 눈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봄빛에 녹기 전에 만져 보고 싶어서
사립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가 봅니다.
앞 논, 뒷동산이 어릴 적 그 모습으로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손가락 쑥 나온 목장갑을 끼고
막내와 함께
눈사람도 만들고
벌렁 누워 눈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살얼음 연못 위에
숨쉬지 않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날은 오늘보다 더 추운
늦 겨울 새벽이었습니다.
새하얀 눈보다 더 깨끗한
막내의 영혼과 가슴이
얼음 물 속에 분열되어
싸늘히 식어갈 때의 고통을
나누어 갖고자
눈 속에 엎드려 오랫동안 누워 봅니다.
이 새벽에도 쇠창살 안에 있는
나의 친구 김과 한과 박은
창살을 활짝 열고
넓은 잔디밭을 새하얀 마음으로
뛰고 달리며 어린이처럼 놀고 싶을 텐데
창살만 부여 잡고
만져보지도 못하고 멍하니
어릴 적 추억에 묻혀 있다니 가슴 저립니다.
새 봄이 오면
새 봄이 빨리 오면
진달래 피어있는 산으로 함께 가서
오늘의 눈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막내처럼 가지 말라고 다짐도하고
내가 너희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약속도 해야겠습니다.
2005.3.7 큰 눈 온 그믐날 새벽에
카페 게시글
윤 자작 시
막내에게 띄우는 편지
윤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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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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