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어원
'역사'라는 말은 19세기 말 일본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서양의 History의 번역어이다. 히스토리는 당시 종래의 동양의 역사학과는 완전히 다른 학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역사학은 기록 중심의 학문인데 서양의 역사학은 해석 중심으로 역사가의 서술로 써졌다. 서양 History의 어원은 그리스어 historia에 근원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지식을 탐구한다’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헤로도투스가 쓴 페르시아 전쟁사의 이름이 히스토리아이었고,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서스 전쟁사의 책이름도 히스토리아였다. 이는 전쟁의 승패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낸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라티어도 Historea 라는 어원을 가지는데 이는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독일어는 Geshichte라고 하는데 이는 독일어 geshechen에서 나왔다. 독일어의 이 말은 ‘발생한다’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아랍어는 계보라는 뜻의 밤사(Bamsa)라는 어원을 가지는 역사도 있다.
동양에서 역사는 ‘사(史)’라고 했는데 이는 역사를 기록하는 관료, 기록함이라는 뜻을 가진다. ‘史’자는 손으로 죽간을 들고 있는 사관을 상징하는 상형문자이었다. 동양에서는 사라함은 군주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사관을 지칭했다. 관리라는 리(吏)자도 기록하는 사람을 뜻하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동양의 역사서는 사, 서(書), 기(記), 통감(通鑑), 통지(通志), 통고(通考)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학은 사학이라고 했다. 동양의 최초의 역사서는 공자가 편찬했다고 하는 춘추(春秋)라는 연대기이다. 동양의 역사기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서술체재가 마련되었다. 사기라는 말은 사관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즉 군주의 기록인 본기, 통치제도를 분야별로 연대순으로 정리한 지(志), 정치를 도운 정치가의 기록인 열전을 쓰는 형식으로 정형화한다. 이를 기전체(紀傳體) 형식이라 한다. 국가가 멸망한 후에 기전체로 정리한 것이 중국의 25사이다. 이를 정사라고 한다. 중국의 정사는 시작은 개인에 의하여 이루어지다가 당나라 이후 국가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문관청(사관 史館)이 생기고 여기에서 사관(史官)들이 역사기록을 그때 그때 남겨두었다. 한 왕이 죽으면 그 기록을 중심으로 실록을 편찬했다. 그리고 왕조가 멸망하면 다음 왕조에서 기전체에 의한 역사가 편찬되었는데 이를 정사(正史)라고 했다. 이에 반하여 개인이 기록해둔 역사를 야사(野史)라 했는데 야사는 오늘날 소설가들이 상상으로 쓰는 소설류와는 다른 충실한 역사자료를 지칭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역사편찬이 이루어졌으나 현전하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기전체로 국가에서 편찬한 역사책이다. 각왕의 실록은 고려왕조에서부터 사관(史館)이 설치되어 왕이 죽은 후 편찬되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불에 타 전하지 않고, 조선왕조의 실록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안정복의 동사강목까지 과거의 기록을 중심으로 편찬함이 동양의 역사학이었다. 역사가는 자신의 견해는 역사서술을 통해 나타내지 않고, 사론이라는 글을 통해 전하는 기록과 자신의 생각을 엄격히 구분해 썼다.
그런데 19세기 서양에서 들어온 역사학은 역사가가 자기문장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그래서 동양의 역사학은 서술이라 하지 않고 편찬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역사서술에서는 옛 기록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데 비하여 역사를 편찬한 동양의 역사학에서는 과거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정리하는 것이 역사학의 주류였다. 그러므로 이런 서양의 역사학이 새로이 소개되었을 때 종래의 사학에 지날 역(歷)자를 붙여 ‘역사’라는 번역어를 만들어 냈고, 이는 한중 일, 베트남 등 동양의 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첫댓글 지식의 정확한 기초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역사서술에서도 편자 개인의 관점이 들어 갔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번역(혹은 창조)으로 만들어진 근대적 산물 -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예로서 민족, 국가는 nation을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이나 서양에서 사용되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