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01 갈고리 빛 욤 루아흐 하나님의 일을 잘 보십시오. 뭐가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일은 이 그림을 볼 때 무슨 뭘로 한마디로 요약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들어오시라 하면 됩니까? 내가 없어져야 되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첫째에서 여섯째 날 요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설계도라 그렇게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자기가 십자가에 주고 그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을 친히 하셨고 예수님도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나님의 일을 완성했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멘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에게 이제 너희도 그 일을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죠. 그래서 창조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바뀌어 가야 된다. 변화해야 된다라는 걸 말씀을 드리면서 첫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빛이 있으라 이스라 미완료라고 그랬죠 계속해서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아멘 그래서 오늘은 이 창조의 역사 속에 나타나 있는 이 세 가지 단어 여러분 프린트물 잘 보시면 그 빛과 이 날 그다음에 루아흐 성령이라는 단어의 중간에 보면 다 이 작대기가 하나씩 다 들어가 있죠. 여러분 작대기 작대기라고 그러면 무식하니까 그걸 제가 찾아놨어요. 바브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여섯 번째 알파벳 바보 바로 6이라는 숫자입니다. 히브리어는 단어가 알파벳 하나하나가 다 뜻을 가지고 있고 숫자도 가지고 있어요. 이 바버는 6이라는 뜻이에요. 여섯째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죠. 우물우물 넘어가시려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죠 사람이 여섯째 날이 그래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건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이걸 잘 보시면 오늘 프린트를 잘 보시면 이게 어디서 텐트 고정할 때 쓰는 갈고리예요. 여러분 이 왜 이 3가지 단어에 요거 들어가 있는 이유를 오늘 말씀을 드리고 넘어갈려고 합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걸 모르면은 계속해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밖으로 향합니다. 밖으로 이 성경은 휘브리에 의해서 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게 뭔가 하면 전부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 심령으로 들어오는 걸 말해요.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에요. 말씀을 보고 내가 지켜라 이런 게 아니에요. 전부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 안에 뭔가 일어나야 되는 걸 말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그걸 말하고 있는데, 히브리어를 하신 분들은 그걸 다 알아요. 전부 다 아는데 이루어내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에요. 그것도 히버리어도 결국은 잘못 해석하면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결국 이형적으로 접근하지 못해서 또 지식이 되어버리고 말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의미를 잘 보시면 계속 빛이 있으라 뭐가 뭐 하라 뭐 하라 궁창이 생겨라 뭐가 나누어져라 뭐 뭘 하라 뭐 알아 나오는데 뭔가 하면은 지금도 그게 이루어져야 하는 걸 말하고 빛이 있으라 하면 내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에요. 전부 내 안으로 들어 그래서 빛이란 단어를 여러분 보시면 오르라고 지난번에 말씀을 드셨죠 오르가 이게 여러분 잘 보시면 이렇게 오르 여기도 갈고리가 이렇게 있어요. 오르 머리로 그러니까 여기 사람이고 여기 하나님이라고 그랬죠 기억나시죠. 황소 하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말해요. 요게 갈고리잖아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여러분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머리라는 뜻인데 머리로 들어와서 어떻게 해야 돼요. 머리로 들어오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머리라고 그랬잖아요. 그 머리로 들어오면 머리는 모든 걸 지령하죠. 지시하죠. 그래서 머리에 지시를 따라 내가 바뀌어져야 되는 거예요. 순종해져야 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걸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거 내 안에 들어와야 빛이 되지 이걸 공부하고 성격을 배워서 빛이 되는 게 아니라고 이해 가십니까 오늘 말씀의 핵심은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그게 들어와야 내 안에 존재가 된다고 내 존재가 변한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이 들어오면 내가 하나님처럼 존재로 바뀌어 가는 거죠. 그래서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아람이 타락함으로써 완전히 사람이 돼버렸죠 인간 그죠 타락한 육체가 되어버린 거잖아요. 그게 왼쪽 그림이죠. 여기서 다시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야 되잖아요. 그걸 말하고 있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배우는 수준이 아니고 그걸 배워서 내 안에 들어와서 새겨져요 그게 새로운 언약이에요. 그래서 내 안에 들어와서 존재로 변해가야 되는 거예요. 그 존재가 되어야 돼요.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사자를 먹으면 내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사람을 먹으면 사자가 사람이 되고 그 말씀을 드렸던 기억나요? 도마스에 나오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존재를 말하는 거예요. 내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에요. 그래서 이 단어 하나를 여러분 보시면은 이것이 확실하게 깨달아져요 그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존재로 계셔서 머리가 되셔서 나를 다스리는 거예요. 그것이 다스리는 게 뭐예요? 나라죠 하나님 나라가 나라라는 개념이 다스리다 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존재로 오셔서 왕이 되셔서 나를 다스려야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거예요. 이 왼쪽 그림은 뭐예요? 마귀가 나를 다스리고 있는 거잖아요. 아멘 그래서 우리는 다 마귀처럼 살잖아요. 기분 나쁘지만 그래서 이제 하나님처럼 살기 위해서 밖에 가야 되잖아요. 밖에 가려면 뭐가 어떻게 해야 돼요. 빛이 들어와야 돼 내 안에 들어와야 돼 들어와야 자 그래서 이 밥을 한 이 단어가 여러분 이 단어를 잘 보시면은 첫 번째 그림에 보면은 텐트를 고정시킬 때 유목민들이 쓰던 이 갈고리예요. 여러분 텐트 옛날에 해봤죠 요즘은 팍 던지면 짠 이렇게 나타나지만 옛날에는 다 박았어요. 이렇게 생겨가지고 이렇게 생긴 거 있었죠. 이렇게 생겨서 몽둥이 아니면 돌멩이로 박고 그랬잖아요. 이 단어가 바로 이 바브라 여섯째 단어인데 여러분 그 세 가지 단어에 이게 다 들어가 있어요. 뭔가 하면 빛이 내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루아흐에 보면 하나님의 호흡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고, 하나님의 호흡은 생명이죠 . 창조죠 후 불어넣으면 창조가 일어났죠.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하는 생명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와야 된다. 그걸 말하고 있고 요미라는 단어도 진리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말해요. 거기서 진리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되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잊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박아 넣는 거예요. 어디다가요 원래 텐트를 이 마음땅에 두 번째 가운데 그림을 보세요. 마음땅에 땅에 박아 넣는 거잖아요. 뭘요 뭔가를 내 마음의 박아 넣는 거예요. 이해 가세요. 그 단어가 바로 이 밥을 한 단어예요. 그러니까 메니에칸에 있는 걸 읽어보면은 유목민들이 장목을 치기 위해서 쓰던 그 갈고리인데 영적으로는 보면은 창조주 하나님의 진리가 세워져야 할 대상이 누구예요? 여기 왼쪽 그림이죠. 그게 바로 우리의 타락한 아담을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가 아담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세워져야 할 대상이 누구예요? 나잖아요. 그러니까요? 나와 하나님 간에 진리로 연결하는 역할이 바로 이 갈고리예요. 갈고리 그러니깐 위에 거를 가지고 막 꽂아 놓으면은 내 안에 이렇게 탁 꽂아 놓으면 위에 이렇게 도망 안 가고 있을 거 아니에요. 이게 못이라고 단어라도 쓰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서 판을 두 개 겹쳐놓고 밑에 못을 박으면 어떡해요. 딱 달라붙죠 그런 개념이에요. 그러니깐 뭘 내한테 박아 넣는다고요. 하나님을 내 안에 박아 넣는 걸 말하는 거예요. 다시는 안 따라가게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생계가 들어서 생령이 되어서 성령과 아담이 그렇게 돼서 아담이 만들어져서 하나가 됐잖아요. 근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됐어요. 멀리 멀리 가셨잖아요. 창세기 육장 그렇죠.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육체가 되었더라 이게 육체예요. 육의 모습 육적인 자아로 변했잖아요. 우리는 동물적인 인간으로 변해버렸잖아요. 먹고 싶을 때 먹고 뺏고 싶을 때 뺏고 치고받고 머리 뜯고 싶을 때 치고 뜯고 이렇게 변했잖아요. 우리가 이게 바로 육적인 자아예요. 원하는 걸 아름답게 포장해도 어차피 동물이긴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우리는 다 동물이라고요. 그렇게 살죠 아무리 도덕으로 교육을 받아도 동물일 뿐이에요. 하나님이 확 들어와야 이제 하나님 닮은 사람이 되는 거죠. 라면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 안에 확 달라붙어서 다시 너무 뽑아져 나가게 이렇게 두 개를 딱 고정시키는 게 이 갈고리라는 뜻이에요. 그게 여섯 번째 단어 바보라는 바보요 여러분 왜 굳이 이걸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은 성경은 바깥으로 향하는 게 아니고 내 쪽으로 들어오는 걸 제가 굳이 보여드리려고 이 그림을 지금 제가 그려놓은 거예요. 여러분 눈도장을 팍 찍어 놓으세요. 여기 얼마나 엄청난 걸 담고 있는지 보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연결 고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씀을 배우게 되므로 연결되게 하고 존재하도록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이거죠. 알레프 말씀을 드렸죠 하나님을 배우다 위 4개 소 강한 소를 하나님은 강하잖아요. 강한 자를 표시하기 위해서 이렇게 소를 끓여서 송아지 형상을 만든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도 처음에 히브리어를 쓸 때 이 소를 이렇게 그렸잖아요. 이렇게 모시는 이걸로 하나님을 표시했다니까요? 집을 그릴 때는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방 세 칸짜리 이거를 히브리어 쓰면 이렇게 쓰는 거예요. 알레프 이거는 두 번째 글자 배트북 그러니까 아부죠 아부 아부가 뭐예요? 아바 아바 아버지 집에서 제일 센 사람이 아버지죠 그래서 아바가 됐어요. 여러분 이게 요건 하나님 아버지 요거는 아들 나중에 다시 시간이 되면 말씀을 드릴게요. 여기 두 개가 겹쳐 그다음에 그다음에 나오는 게 김멸이라고 이게 성령에 인도하시면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고 아들은 성령을 보내고 이 글자에 첫 번째 세 글자가 그거예요. 여러분 어쨌든 이 하나님을 배우는 게 황소 알레프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 어디로 팍 바뀌어진다고요. 머리 이게 머리고 머리면서 사람이 왜요 그러니까 나에게 이 타락한 나에게 하나님의 빛이 들어오는 게 그런 역할이라고 이해 가세요. 들어와야 된다. 머리로 배워서 그냥 암기하고 있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래서 암기해서 내가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이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켜서 이 하나님처럼 나를 바꿔놔야 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완전히 내게 존재가 변하도록 내 안에 들어와야 된다. 그 말이죠. 그래서 연결이 먼저 돼야 되겠죠. 연결이 그래서 하나님의 실존을 내가 완전히 팍 받아들이는 그런 걸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 내면 속에 하나님의 실존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딱 달라붙는 접속하는 상태예요. 아멘 끌고 와서 내 안에 있게 한다. 그 말이에요. 놀라운 단어가 바로 이 단어인데 여러분 끝에 보면은 십자가의 못 박히시모로 하늘과 땅이 연결됐다. 보세요. 사람은 진리를 두 번째 칸에 보면 진리의 말씀을 배우므로 알레프가 진리의 말씀을 배우다라는 뜻이에요. 황소처럼 말씀을 배우고 계속 묵상하고 묵상하고 이게 알레프예요. 첫 번째 단어인데 그걸 하나님이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을 배워야죠 그래서 배워서 내 몸이 변해가야 되는 걸 말하죠. 그렇게 되면은 내 안에 집을 짓고 두 번째 단어가 이 베이트라는 단어가 집을 짓다라는 뜻이에요. 집이란 뜻도 있고 아들이 아들이 이렇게 했으면 벤이라고 벤하고 벤이라고 그러는데 이게 아들이에요. 그래서 두 번째 단어가 바로 내 안에 하나님을 배우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안에 성전을 짓죠 다 아시죠. 영적으로 열두 기둥 성전을 지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하나님이 그거 하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서 하나님을 배우면 이제 그 말씀을 점점 배워서 내 안에 하나님의 집을 지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랬잖아요. 성전을 지어야 그거 아시죠. 집을 짓고 그 다음에 세 번째 단어가 김별이라고 나오는데 낙타 낙타인데 낙타는 무릎을 꿇고 사람을 들어 올리고 그렇게 하죠. 무릎을 꿇다 라는 건 기도하다 겸손하게 대다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은 내 안에 점점 집이 지어지면 어떻게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죠. 맞아요. 안 하면 그게 심각한 문제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그래서 이 알레프에서부터 맨 마지막 단어가 뭐예요? 타브 십자가거든요. 여기까지 가야 돼요. 여기까지 가서 완성이 이루어져야 돼요. 완성 이게 타브가 뭔가 하면 육적 자아의 완전한 죽음을 뜻해요. 하나님을 배워서 내 안에 육적인 자아가 완전히 깨뜨려진 것이 히브리어가 담고 있는 내용이에요. 놀랍죠 그죠 그러니까 이 말씀이 내게 박혀서 들어오면 뭘 한다는 거예요. 나를 사살하는 것 나를 완전히 죽이는 걸 말해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을 읽으면 어떻게 돼요. 입에서 막 달죠 성경을 읽으면 너무 멋진 단어가 오늘 이런 거 오면 달지 않아요. 이런 것도 있었네 그런데 이게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난리 나잖아요. 지켜야 되니까. 뭔 일이 일어나요? 내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잖아요. 내 안에 거부하는 이것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거부하지 왜 그래 너 갑자기 정신 차려 옛날처럼 살아야지 왜 갑자기 참어 참어 참기름 왜 참아 빨리 일어서서 한마디 한쪽 맞으면 양쪽을 후루 갈겨 이렇게 속여서 난리 나잖아요. 그게 말씀이 들어오면 내 안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여러분 용서하라는 말씀이 들어오면 어때요 그냥 무시해버립니까 그래도 한 번쯤은 용서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근데 내 안에 용서하지 말라는 것들이 야 그런 놈은 뽀대를 보여줘야 돼 어디서 당장에 가서 밟아버려 막 그거 둘이 서로 싸우잖아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안 일어나는구나 그러니까 고민도 안 하죠. 저놈은 안 돼 애초부터 안 돼 아예 탁 제껴놔버려 그러면 말씀이 안 들어온 거예요. 그게 말씀이 안 바뀐 거라고 이해 가세요. 그런 식으로 이게 완성이 되는 거예요. 히브리어는 그래서 놀랍게 하나님을 배우는 알레프가 하나님을 배우는 것 하나님을 배워서 내 안에 있는 이 육의 소역을 6을 완전히 깨뜨려내는 거야. 완성이 되는 거예요. 이거는 십자가고 목표고 완성이라는 뜻이에요. 십자가로 내 육을 완전히 깨뜨려내 육적인 자아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게 이 그림이잖아요. 맞아요. 이게 이게 완성이라고 완성 이게 알파 오메가 하나만 건너뛰면 이러시는데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히브리어가 담고 있는 모든 내용은 내 안에 하나님을 배우는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 안에 말씀으로 집을 짓고 거기에 집을 지으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이게 세 번째 단어고 네 번째 단어면 뭔가 딸 딸레트라고 해서 문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물에 매달려서 다빗이 양쪽으로 문이거든요. 양쪽으로 문이 있어요. 데이빗이라는 게 앞에 네 번째 글자가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고 그러니까 들어가나 나가는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다빗이라는 단어가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겠어요. 그래서 사랑하는 자예요. 그래서 그 매달려서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뭔가 하면 호흡을 하는 거예요. 생명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 세워지기 시작하고 그러면 기도하기 시작하고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매달려서 계속 기도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점점 들어있는 그게 세 번째 다섯 번째 단어예요. 호흡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다음에 여섯 번째 단어가 이거예요. 바보인데 이 바보는 뭔가 하면은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를 내 안에 꽉 집어넣는 걸 말해요. 내 안에 꽂아 넣는 걸 말해 송곳처럼 생겼잖아요. 요렇게 그죠 이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가 내 안에 연결돼서 확 들어오는 걸 말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배우면서 내가 기도하고, 말씀으로 지어져 가면서 점점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점점 일어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명이 일어나면 어떻게 돼요. 그렇게 해서 내 안에 이제 그것이 싹 들어오면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나를 깨뜨려내기 시작해요. 일곱째 날에 무기가 생기고 무기가 나를 깨뜨리고 차근차근 씹어버리고 진리가 생기고 진리로 물이 흘러가고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어둠이 깨뜨려지고 그렇게 이렇게 가서 마지막 단어 십자가예요. 자가 있어 내가 완전히 깨뜨려지는 거 그 성경은 휘고리어 자체가 그걸 내부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하나님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 유게소요 이 안에 있는 이것들이 다 깨뜨려져 나가서 십자군으로 탁 깨뜨려져 나가서 딱 끝나야 완성이 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깐 말씀을 보고 지켜 이런 게 아니라고 지키는 존재로 변하는 거지 우리는 지킬 수 없다고 그랬잖아요. 그죠 의의는 없으니 하나도 없으되 그 말이에요. 지킬 수 없는 존재라고요. 그러니까 그거를 말해주고 있는데, 잘 보세요. 그래서 여섯 가지 오면서 연결이 되어서 두 번째 칸에 내가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과 연결이 된다라는 거예요. 드디어 우리가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 어떻게 알아요. 그죠 하나님을 배우게 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하늘과 땅을 연결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분은 누구예요? 예술인 맞아요. 그게 이제 십자가에요. 이 십자가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의 표로 에베소스 1장과 10절 하늘과 땅이 하나 되게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 왜냐하면, 분리되었잖아요. 우리는 분리되었는데 십자가를 통해서 연결되죠. 그 십자가에 어떻게 못이 박혔잖아요. 여기에 못이 하나 둘 셋 박혔죠 그게 이 바보예요. 그러니까 십자가의 못 박힘으로 하늘과 땅에 연결됐죠 아멘 맞아요. 그게 이 단어예요. 여러분 이 알레프라는 단어를 보시면은 이것도 바보고 이거는 뭔가 하면 뭐처럼 생겼어요. 에 손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이게 요드가 이렇게 써요 이렇게 하나님의 손이라는 뜻인데 이게 위에서 내려오는 손이고 이건 아래에서 올라오는 손이고 위의 손과 아랫손을 이거 뭐예요? 연결이라고 했죠. 연결하는 거 그럼 누구예요? 그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시대요 이 글자가 너무 놀랍지 않아요. 그 세계가 하늘과 땅이 뭐 어디 봤죠 여러분 뭐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인가 그거 있잖아요. 지지직 이렇게 지지지 천지창조인가 그게 그 그림 있잖아요. 왜 그거라니까 이게요 이게 그 그림이라니까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라니까요? 하나님이 하시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다리 아세요. 야곱의 사다리 거기에 보면 하늘과 땅이 연결돼 있고 하늘로 올라가죠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이걸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사다리가요 아멘 그래서 연결하는 갈고리가 이 바브라는 단어 속에 하나님과 나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크리스도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래서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 사람이 만들어진 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씀이 단어가 엄청난 단어들이에요. 그래서 내 안으로 들어와요.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그 말씀은 뭐라고 살아서 운동력을 가지고 역사해야 되죠. 머릿속에 있는 지식으로는 역사가 안 되잖아요. 내 안으로 들어와서 살아서 탁 꽂히면 그 말씀들이 나를 찔러 쪼개죠 깨뜨려내죠 불로 태우죠 지난주에 말씀을 제가 안 드렸나요? 오가 말씀이라고 말씀은 불이여 방망이요. 또 연단하는 망치요 잿물이요. 표백하는 잿물이요. 그것들이 말씀이 들어와서 나를 어떻게 한다고요. 불로 태우고 망치로 깨뜨리고 불순물을 뽑아내고 팍 부숴버리고 그죠 빨래를 해서 때를 빼고 이게 말씀이라고 그런 일이 일어나요? 그런 일이 안 일어나죠. 그러니까 그런 일이 안 일어나니까 매일 치고받고 싸우는 거예요. 그건 뭔가 하면 말씀을 내 안으로 박아 넣은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보고 지키고 보고 행하고 복을 받고 이런 말씀으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거래 하나님과 거래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안 변하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 말씀이 아니에요. 율법이지 율법 법이지 법은 지켜야지 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내가 변합니까? 내 속에 있는 건 그대로 있잖아요. 안 그래요. 교통신호 잘 지킨다고 해서 더러운 놈이 착한 놈이 되던가요 그 안 그렇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말하는 그러니까 하나님과 내가 연결이 되어서 그 다음에 내 존재가 변해야 되는 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성경은 그래서 히버리 단어 하나하나가 뜻을 다 담고 있다고 그랬죠 그래서 왜 그런가 하면은 그것이 전부 다 내 안으로 들어와서 역사하는 걸 말해요. 히브리어가 그렇게 돼 있다고요. 그러니까 그래서 마지막 칸을 보세요. 영혼 6을 진리가 들어오면서 다 터치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육적이고 혼적인 반응은 많이 하지만 영적으로 이게 진짜 터치가 잘 안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 고리가 내 안으로 이제 들어와서 나의 겉모습만 터치하는 게 아니고 영혼육을 동시에 그래서 이것은 대부분 모르고 우리 육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안 변한다는 거예요. 물론 헌적으로도 감동도 오고 있지만 그 깊이 못 들어가서 우리가 못 변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영이에요. 영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이잖아요. 그것이 들어와야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도 내 안에 박혀야 돼요. 들어와야 된다고 배우는 수준이 아니고 들어와야 된다. 말씀을 배움으로 내 안에 박혀져야 된다고요. 이해 가세요. 그래야 뭐가 일어나요? 창조가 그렇게 탁 들어와야 이게 창조가 일어나요? 창조 그죠 이 그림이 우리 죽어있는 그림이죠. 하나님을 떠난 아담 죽어 있는 자잖아요. 그 속에 보세요. 뭐가 들어와요. 생명이 들어와야 되잖아요. 처음에 사람을 만들 때 진흙에다가 어떻게 했어요. 흙에다가 훅 불어서 생명을 불어 넣었죠. 안으로 들어와야죠 하나님의 생명이 안으로 들어와야 내가 살아있는 자가 되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바보라는 단어가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전부 성경 말씀은 전부 내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나를 살려내는 거예요. 나를 창조하고 나를 바꿔낸다고 그게 새 창조라고 그랬죠 그게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나님의 일 하시는데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으로 첫째에서 여섯째 날 해서 나를 만들어낸다고 어떻게 이 수 그리스도의 모양으로 만들어 낸다고요. 하면 그 단어들을 잘 보면 그래서 다 갈고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나 내 안으로 그것이 다 들어와야 돼요. 밖으로 나가면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말씀이 들어와서 자신을 변화시켜 줘야 되는 거예요. 변화시키지 못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sns에도 보면 마른 뼈에 어떻게 돼요. 생기가 들어가서 어떻게 돼요. 그다음에 살아나죠. 내가 마른 뼈 같잖아요. 하나님이 떠나면 다 마른 뼈예요. 그 마른 뼈 같은 곳에 하나님이 확 뚫고 들어와야 되죠. 뚫고 들어와서 생명을 주잖아요. 여러분 그걸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에 뭔가 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생명으로 팍 뻥튀기 팡 튀어나온 줄 알아요. 그게 아니고 시작이에요. 시작 그렇죠. 맞아요. 안 그러면 그렇게 많은 성경이 뭐가 필요했겠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끝인데 뭘 성경을 이렇게 잔뜩 써놔요 한 줄이면 되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끝났으니 뭘 더 이상 필요하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 구원의 사역은 길고 험하잖아요. 그게 그 말씀이 들어오면 말씀이 하는 일이 뭔가 하면은 나를 깨뜨려내는 일을 하죠. 그게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시고 이루어 가시는 일이라 그 말이에요. 아멘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그런 것으로 읽지 않았어요. 말씀을 그런 용도로 그걸 위해서 읽지 않고 말씀을 많이 읽어서 뭔가 행해서 복을 받으려고 그렇게 했죠. 그러니까 복은 다 달아나버리고 복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이게 복이거든요. 여기 복이라는 건 아시죠. 이제 다 하나님이 예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서 딱 좌정하고 나를 다스리는 걸 복이라고 그래요. 왜냐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면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일어날 거 아니에요. 그럼 그게 천국이죠. 그게 복이잖아요. 근데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게 복 받았다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 그거 복은 세상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받아서 훨씬 더 잘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이 진짜 복 받은 거예요. 밤에 잠을 잘 자는지 못 자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저 돈 지키려고 금고를 막 삼겹짜리를 막 갖다 놔야 되고 얼마나 힘들겠어요. 돈 많으신 분들 은행에 넣어놓으면 은행이 혹시 폭파되면 어떡하지 전쟁 돼서 혹시 이게 은행에 들어있는 돈이 휴지 조각이 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안 해요. 100만 원만 있어도 그런 걱정할 건데 아이고 어떡하면 좋아 인플레가 심해져서 저게 아이고 이 땅을 사야 되나 이런 걱정 안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교회 와서 원하는 복은 세상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걸 복이라 하지 않아요. 복은 뭔가 하면 지난번에 제가 계속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이 누리는 걸 함께 누리는 걸 말해요. 그걸 복이라고 해요. 마카리우스라고 말씀을 드렸죠 복이라는 단어가 구약에는 뭐라 그래서 바라크 무릎을 꿇다 무릎을 왜 꿇어요. 전하 명령하옵소서 이게 무릎을 꿇는 거잖아요. 그게 복이라고요. 그 단어를 복이라 한다고요. 전하 내일까지 집을 마련해 주시옵소서 집을 갖다 대령하면 그게 복이라는 게 아니고 전하가 그런 말을 하겠어요.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복이라는 단어조차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완전히 엉뚱한 대로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그 원하던 복도 안 오고 몸도 망가지고 집안도 망가지고 사업도 망가지고 다 망가지고 나서야 이제 와서 제대로 들어보니 아 이게 복이구나 암만 가지고 오신 분은 감사한 거예요. 그게 복이라고요. 그러니까 그걸 몰랐어요. 그러니까 성경은 히브리어 단어 첫 글자부터 내 안으로 들어오는 단어예요. 전부가 왜냐하면, 창조의 시작이 있으라 내 마음 땅에 있으라 그랬거든요. 이 고려대호수사상육절 아시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 빛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했거든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 빛이 있으라 하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땅에 그 빛을 비추셨느니라 그랬거든요.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그걸 해석했죠. 그러니까 빛이 이 어두워진 땅에 빛이 쫙 이면서 환하게 밝아지는 것처럼 내 마음의 하나님이 들어와서 나를 환하게 밝혀내라 이 말이거든요. 그게 성경이거든요. 근데 이걸 창조로만 알고 있으니까 내 마음땅은 어떻게 밝히는 건지 모르는 거예요. 내 마음땅을 밝히려면 불이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불이 있으라 이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라 이 말이거든요. 명령이에요. 명령 그러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어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그래야 밝아진다 이 말이죠. 아멘 생수가 넘쳐난다 이 말이죠. 그걸 이 고리라는 이 단어가 그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말해요. 하늘의 것을 땅으로 집어넣는 걸 말해요. 이게 이 단어가 하늘의 손과 땅의 손이 맞잡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그게 고리예요. 연결고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해요. 그래서 여섯 번째 사람이 생겨진 걸 우리가 똑같이 말하고 있죠. 그래서 생기 마름뼈 같은 나에게 생기가 확 들어와야 돼요. 연결이 돼서 들어와야 되죠. 예수님이 이 요한봉 9장에 보면 소경을 고칠 때 진흙에 흙에다가 침을 뱉어서 이겨서 눈에 탁 붙였죠 흙은 누구예요? 내가 흙이잖아요. 흙 속에 뭐가 예수님이 확 입김이 들어왔잖아요. 그걸 내 눈에 확 붙이니까. 나은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걸 말해요. 그래야 소경을 면하죠. 그렇죠. 영적으로 소경 아멘 예수님이 들어와야 해결되는 거예요. 전부 다 그렇죠. 맞습니까? 오병 위원을 보면은 오병 위에 떡을 먹고 와 무리가 몰려가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떡이 더 이상 없다. 너는 떡 먹고 배불러서 나를 따라왔지만 떡이 더 이상 없다고 그 다음에 뭐라고 그랬어요. 나를 드시오. 나를 예수님을 먹는 게 뭐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확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래야 너희가 영원히 살리라 전부 다 내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 걸 말하고 있어요. 오병 이호도 그걸 말하고 있다고 해서 유월절도 똑같은 내용들이에요. 그러니까 유월절에 오병리의 그 기적을 예수님이 이렇게 쓰면서 똑같은 말을 하셨죠. 그래서 유월절에 보면 어린 양을 잡아먹죠 피를 뿌리고 문지방에 피를 뿌리고 어린 양을 먹잖아요. 그러니까 오병이어가 오백이어의 기석이 유월절에 행해야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오병이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내가 살아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 유월절이에요. 예수님을 먹고 내가 사망의 강을 건너서 생명으로 들어온 걸 말하는 거거든요. 그게 유월절에 어린 양을 우리가 먹는 기념을 하는데 이제 예수님이 그 유월절 날 오셔서 떡이 아니라 나를 먹어야 산다 그래서 예수 그래서 빛이 있으라 그거하고 똑같은 말 내 안에 들어와야 산다 그 들어오는 게 이 단어라고요. 이거 내 안에 들어오는 여러분 성경은 내 안으로 들어와요. 절대로 이걸 보고 지켜서 뭔가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에 되어서 상을 많이 받아내는 게 성경이 아니라고요. 이해 가세요. 오늘 그것만을 깨달으세요. 그러면은 성경을 보는 눈이 확 바뀝니다. 이거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전부 나를 말하는 거예요. 제가 말씀 열기를 통해서 여러분 말씀을 드렸지만 이제 그림을 통해서 제가 하나씩 하나씩 그걸 정확하게 제가 들춰내 보여드릴게요. 첫 번째 장이 이게 처음 전부라고 그랬죠 전부 그래서 이 그림에서 이 그림으로 가는 게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는데 이쪽으로 가려면 여기 십자가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이 안에 있는 것들이 다 죽어야 돼요. 그렇죠. 다 죽어야 살잖아요. 안 죽고 살아갈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혈기 등등 해서 교회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루어진 건 아니거든요. 능력이 나타나면 뭐합니까? 똑같이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못 박힌 그 손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한 손이에요. 그게 모시라고요. 그게 오늘 이 바보라는 단어인데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게 그 단어예요. 여러분 히브리 글자는 처음부터 그걸 우리에게 말하고 그래서 성경 여러 부분을 보면 다 그 부분을 출애국도 그걸 말하고 창조의 시작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확 들어와서 내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잖아요. 그럼 나도 지금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하려면 하나님이 확 불어넣어야 되는데 속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들어와야 그게 일어나는 거죠. 그렇죠. 하면 신약으로 가면은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은 니가 내 안에 내가 니 안에 그러면은 어떻게 돼요. 이거잖아요. 예수님은 이걸 원하신 거죠. 그래서 니가 내 안에 내가 너 안에 있는 방법을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가셨잖아요. 어떻게 나를 따르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주고 나를 자기가 욕에 이건 우리는 이게 내 자기잖아요. 내 자기 그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게 내 자기거든요. 그걸 부정하라는 거예요. 그건 너가 아니다. 그건 타락하여 죽을 존재지 니 존재가 아니다. 그 말이에요. 그럼 우리가 멋대로 살고 이건 나가 아니라는 거예요. 죽어 없어져야 될 거더라는 진짜 나는 뭐라고요. 그것이 없어지고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야 그게 진짜 내가 되는 거예요. 그게 되려면 없어져야죠 살아서 안 가지는 길이라고요. 그래서 그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게 바로 이 글자예요. 성경 히브리에 보면 이 글자를 통해서 전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말합니다. 내 안으로 들어오면 이제 깨뜨려내기 시작하고 불로 탁 태우기 시작하고 망치로 팍 이런 일이 일어나야 돼요. 여러분 그 성경은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고통의 연속인 거예요. 가서 막 감동을 받고 눈물 흘리다 오는 게 신앙생활이 아니라구요. 이 죽어있는 인생이잖아요. 여러분 옆에 남편이 이 모습을 하고 죽어 있는데, 웃음이 나와요. 웃음이 나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웃는 모습이 성경에 하나도 기록이 안 돼 있어요. 이해 가세요. 그래서 저도 교회 오면 웃기 싫은 거예요. 지금 다 죽어가고 있는데, 말을 해도 못 알아듣고 그러니까 막 졸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웃겨서 잠 깨우려고 하는 거지 그게 일부러 쇼 코미디 하는 줄 아세요. 본심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웃을 일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매일 우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래서 밤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거예요. 주여 저들을 어찌하오리까 어찌하오리까 저들을 살려주소서 맨날 그 기도만 하는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 남편들 보면 그렇게 안 보여요. 그 앞에서 막 희희낙락거리고 그럴 시간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이해 가세요. 교회는 웃는 곳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희락의 영이 왜 터져가지고, 희락의 영이 있는 건 뭔가 하면은 그 안에 고통스러워 죽어가서 견딜 힘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희락의 영을 주셔서 그걸 극복하라고 주신 거예요. 이걸 고치라고 와서 깔깔깔깔 웃으면서 아비가 은혜스러워 초딩 수준이 아니라고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얼마나 심오한 걸 담고 있는데요. 그런 걸 좀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셨을 때도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예레미야 31장으로 가면 31절에서 쭉 내려가면서 이제 내가 새 법을 새 언약을 너에게 주노니 내가 내 마음의 말씀을 새겨서 나는 내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말씀이 내 마음판에 새겨지는 게 뚫고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지키는 자가 되어서 내 안에 성육신이 이루어지는 걸 마음판에 새겨진 분이죠. 그렇죠. 그게 이루어진 그게 세언약이에요. 여러분 내 안에 들어와야 되는 말씀을 보고 지켜서 뭔가 얻어내려고 하시는 모든 행위가 율법주의에 속해서 율법주의자들은 누구야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이잖아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들어오면 나를 죽여야 되니까. 그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나를 깨뜨리고 죽어라 죽어라 이런 설교가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하나님은 계속해서 들어와서 불을 지르겠다고 하는데 나는 제발 이대로 살면서 더 좋은 걸 해달라고 구하자 그게 신앙생활로 자리 잡고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보니까 어떻겠어요. 꼬라지를 보니깐 갑갑하잖아요. 다 죽어 있는데, 서로 잘 산다고 막 난리를 치고 있는 거잖아요. 죽어있는데, 이 모습을 하고 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그러잖아요. 다 죽어 있는데, 막 잘났다고 그러니까 예수님 보기에 갑갑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여러분 안 믿는 친척들 보면 급하지 않아요. 한숨이 푹푹 나오죠. 예수님이 와서 보니까 그 모양이니까. 한숨이 푹푹 나오는 아이고 저것들이 살아있다고 막 난리를 치니까 그래서 죽어야 산다 그러니까 안 죽고 예수님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네가 왜 죽어 네가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잘 지키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가 왜 죽어 그런 거예요. 여러분 말씀이 안으로 안 들어오는 거예요. 요즘도 똑같아요. 교회율법주의자는 가득 차 있는데, 생명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이 내 안으로 안 들어오고 내 안으로 들어오려면 이게 묵상하고 또 묵상하고 식고 또 씹고 이게 위가 네 개 가진 소라고 그랬죠 계속 씹어야 그것이 0이 되고 빛이 되어서 내 안으로 들어와야 안으로 들어오는 거거든요. 그게 잘 바뀌어지거든요. 머리에만 있으면 어떻게 물고 가버리잖아요. 마귀가 가시 속에 있으면 다 물고 가버리잖아요. 말라 죽어버리잖아요. 생명이 안 되는 거예요. 염려 근심하면 생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 가버리는 거예요. 다 훌훌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게 내 마음판에 새겨져야 되는 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내 안에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영적으로 여러분 그래서 다 안으로 들어와야 돼요. 철저하게 안으로 들어와서 이 첫날에서 여섯째 날의 과정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모습으로까지 가야 그게 완성이 되는데 그게 탑으로 하는 거예요. 마지막 글자 십자가예요. 그러니까 이 첫 단어 알파에 시작해서 그 다음에 이 오메가 마지막까지 가야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영생의 존재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남자라는 단어가 이 단어하고 이 단어하고 그 다음에 ec라고 돼 있어요. 이렇게 아이씨 이렇게 읽는데 요게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남자 사람 사람이에요. 사람 근데 요게 쏙 빠져버리고 요것만 요렇게 남아 있으면 뭔가 하면 여기 물건이 이건 그냥 물질이에요. 물질 요 하나님이 쏙 빠져버리면 요건 물질이죠. 이 단어를 아시겠어요. 하나님이 속 빠진 게 누구였어요. 아담이죠. 아담 타락한 아담이 하나님이 속 빠져버렸잖아요. 그게 그냥 물건이라고 그건 다시 하나님이 들어와야죠 하면 하나님이 뭘로 들어와요. 여기서 빛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신으로 우리에게 다시 들어오는 거죠. 나를 품고 빛이 확 뚫고 들어와서 다시 이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첫날에서 여섯째날을 거쳐가면서 진짜 사람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형상으로 우리가 바뀌어서 가는 거죠. 그래서 창조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다음에 말씀과 성령의 기본 보험의 능력으로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배워도 행할 수 없는 건 능력이 없죠 그걸 행하여 내 안에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성령이 오신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 첫 번째 그림 두 번째 그림 이제 끝났습니다. 안으로 들어와야 돼요. 그게 능력이에요. 세 번째 그림은 이제 제가 여기 그려놨어요. 세 번째 그림 이 과정이 어떻게 성경에서 풀어져 있는가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어떻게 풀어져 가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풀어져 가는가 그게 성경의 전부라는 걸 우리가 알아야 돼요. 그래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내 이 과정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해 가야 된다는 걸 아실 거 아니에요. 그래야 내가 변해 성경이 그렇게 풀어져 있어요. 다 이 안에서 다 풀어져 있어요. 전부 다 이 안에서 풀어져 있어요. 그래서 말씀이 안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걸 여러분 반드시 오늘 명심하십시오. 빛이 내 안에 있어라 하면 빛을 배워라 이게 아니고 내 안에 있으라 빛이 내 안에 들어오면 어둠과 같이 공존을 못 해요. 그러면 내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해 그게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게 아마겟돈 전쟁으로 마지막에 용을 잡아내는 것까지 가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긴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거예요. 이게 생명의 면류관이라고요. 이긴 자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어둠한테 치여버리면 다 끝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잘 질 수가 있죠. 성질내고 염려 근심하고 이런 거 하면은 다 죽어버리잖아요. 내 안에 오신 빛이 씨 뿌리는 뷰에 나오죠. 그걸 씨 뿌리는 뷰 집 짓는 이야기 그다음에 여러 가지로 도자기 만드는 이야기 이런 걸로 표현을 해놓고, 있다고요. 그 안에 나오는 역사적인 이야기는 모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낱낱이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는 이 과정 속에서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 저들을 다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많이 침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죠 이 안에 있는 이것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다 죽어야 되는 걸 말해요. 그래야 예수고예스도로 내가 다시 일어나지 다 죽어야 되는 건 내 안에 살해당해야 되는 거예요. 뭘로 말씀이 검이 되어서 나를 찔러 죽여야 다시 예수고예스도로 내가 부활해서 일어나는 게 그게 성육신 내 안에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걸 우리는 복이라고 일곱째 날이라고 안식이라 편안한 내 모든 것 어떤 환경에 와도 내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거예요. 그게 평화로우다 평화로다 평화로다 크게 일어나야 됩니다. 어떤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내가 평안에 그게 7마리 그게 이 그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그 새것이 다 되어 계십니까? 돼가고 있는 중이 그러니까 끝까지 우리는 달려가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달려가 이 하나님 알레프에서 타보까지 그 글자가 내 안에 다 이루어져야 돼요. 그 글자를 뜻을 하나씩 하나씩 보면 너무 기가 막히게 맞아요. 내 안에 이루어 가는 과정을 다 말하고 있어요. 제가 시간 날 때 하나씩 하나씩 말씀을 드릴게요. 하루에 요만큼씩 말씀을 드리면, 알파벳 22개 22주면 다 되잖아요. 그러니깐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여러분 한가운데 보셔야 돼요. 말씀이 들어오면 내가 어떻게 변하는가? 염려근심 때문에 내가 말씀을 죽여버리는지 혈기 내면서 말씀을 밟아버리는지 아니면 말씀에게 내가 죽어서 꾹 참고 혀를 깨물고 있는지 이런 게 보여야 됩니다. 그리고 혀를 한번 깨물고 나면 내가 살아나는 거예요.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기둥이 하나 세워지고 두 개 세워지고 이렇게 해서 살아나는 거예요. 그때 승전이 이루어지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자정하고 나를 다스리는 거예요. 그 천국이 그때 이루어지는 거예요. 서로 치고받고 싸우시면 아주 요원하죠. 이게 아주 멀리 있는 거예요. 이게 그쵸. 성질 건드리지 마 이렇게 시작하면 이게 이제 이미 끝난 거예요. 내 안에 씨도 없어 씨도 없어 다 말라버린 거예요. 황량한 들판이 완전히 동물이 동물 이게 빠져버리면 뭐라구요. 물건이라고 하나님이 빠져 우리는 하나님이 들어오면 족족 밟아버리잖아요. 오래 참는 것 저리 가 사랑하라는 거 저리 가 다 밟아 죽여버리고 내 멋대로 하면서 주여 내 멋대로 해서 안 되니 주의 힘을 이용해서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저것도 채워주시고 이게 신앙생활인 줄 알았는데 아니올시다 완전히 반대예요. 여러분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도 내가 털끝만큼도 안 면하고 아무것도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게 없이 쓸쓸히 그냥 죽어가는 거예요. 나중에 그냥 가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남아있어요. 여러분 그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않으면 나중에 하나님과 나와 계산을 할 때가 옵니다. 분명히 계산할 때가 와요. 오늘 됐지 내일이 됐지 어떻게 알아요. 내일 아침 못 일어나면 어떡할래요. 큰일 나지 않아요. 그냥 살아있을 동안 열나게 해야 돼요. 우리는 열나게 매일 죽으면서 내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죽으면서 달려가야 되는 이 그게 사도방울의 뼛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 길이었어요. 내일 못 일어나면 큰일 난다니까 이제 뭔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안 그래요. 이게 잔뜩 있는데, 어떡할 거야. 그러면 큰일 난다니까요? 잘못하면 이거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옥 가는 크리스찬 이야기 들어보셨잖아요.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정신 똑바로 차립시다 안 그러면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짜 모릅니다. 자 우리 찬양하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