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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유관지목사
성경에는 처음은 좋았으나 끝은 좋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처음에는 좋지 않았으나 끝은 아주 좋게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처음은 좋았으나 끝은 좋지 않게 된 대표적인 경우는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솔로몬도 여기에 속합니다.
처음에는 좋지 않았으나 나중은 아주 좋은 대표적인 경우는 욥을 들 수 있습니다. 룻기는 시작은 좋지 않았으나 끝은 아주 좋은 경우에 속합니다.
룻기는 기근을 만나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에 유다 땅에 기근이 들어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큰아들 말론, 둘째아들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갑니다. 이렇게 살길을 찾아 유랑의 길에 올랐던 가정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 축복을 받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룻기는 죽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낳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큰아들 말론도 죽습니다. 작은아들 기룐도 죽습니다. 그런데 끝을 보세요, 룻이 아들을 낳습니다. 오벳을 낳지요.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 그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이제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2002년이 룻기 처럼 시작보다 끝이 더 좋기 바랍니다! 룻기를 보면 처음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1장을 보면 나오미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두 며느리에게 '나는 이제 소망이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친정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손자가 생겼습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손자를 낳았습니다. 이 손자는 나오미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소망 덩어리였습니다. 집안을 이어줄 소망, 노년에 잘 봉양해 줄 소망, 소망 그 자체였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손자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나오미를 보고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라고 말했습니다(룻4:15).
소망을 가지면 생명이 회복되고 새로워지고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 오 헨리라는 작가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아시지요? 이 단편의 여주인공은 폐렴에 걸려 앓으면서 생에 대한 소망을 버립니다. '저 건너편 담의 담쟁이가 하나, 둘 떨어지는데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나도 죽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의사도 손을 쓰지 못합니다. 소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래층에 사는 늙은 화가가 그 말을 듣고 비바람이 몹시 치는 밤에 그 담에 잎새를 그려 놓습니다. 그 밤이 지났을 때 여주인공 화가는 언니에게 커튼을 열라고 합니다. 마지막 잎새는 지난밤 비바람에 틀림없이 떨어졌을 것이고 그러면 자기도 죽을 것이라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잎새는 그냥 붙어 있습니다. 아래층의 늙은 화가가 그려 놓은 것이지요. 그것을 모르는 이 여자 화가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소망을 갖습니다. 그리고 거뜬하게 일어납니다. 소망은 이렇게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층의 화가는 그림 실력이 별로 없는 분이었는데 마지막 걸작을 남겨 사람을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소망을 주셨습니다. 메시아 탄생의 소망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이름 그대로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무엇을, 아니 누구를 기다립니까?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어떻게 기다립니까? 소망을 품고 기다립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희곡 작품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아서 유명해진 작품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도 이 연극이 수십 차례 상연되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상연되고 있습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은 고도를 기다리는데 막연히 기다립니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가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고 기다립니다. 그 연극을 보면 주인공이 무의미한 동작과 대화를 반복하면서 기다리지요.
대림절의 기다림은 그런 기다림이 아닙니다. 오늘 예배와 묵상 속에 분명히 나에게 오시고, 장차 다시 오실 메시아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림절의 중심이 되는 단어는 밖으로는 기다림이지만 안으로는 '소망'입니다. 이제 교회의 절기가 대림절 첫째 주일, 대림절 둘째 주일, 이렇게 진행될 터인데 여러분 소망이 더 커지기 바랍니다.
12월에는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신문에서 가끔 이런 보도를 하지요. '올해 신문에서 제일 많이 사용한 말은 무엇이었다', 12월에 신문에는 '대선'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올텐데 성도들은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소망'이 되어야합니다.
지금 나오미가 그의 소망인 아기를 품에 안은 것처럼 우리는 대림절을 맞이하여 메시아 탄생의 소망을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정성을 다해서 그 아기를 키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정성을 다해서 이 소망을 가꾸어 나가야합니다. 소망을 양육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오미가 소망인 손자를 품에 품고 소중하게 양육한 일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하나님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형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편, 죽었습니다. 첫째 아들,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 죽었습니다. 큰며느리,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4장 4절에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말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고향에 땅은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손에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룻기 1장 21절 앞부분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 빈 털털이가 되어서 돌아온 것이 확실합니다.
삶의 의욕도 잃었습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이이가 나오미냐' 했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희락'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가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라는 이름의 뜻은 '괴로움'입니다.
심한 자기 학대에 빠집니다. 고향 땅에 돌아온 나오미는 '얘, 우리가 무엇 좀 하자. 그래야 먹고 살 것이 아니냐?' 해야 합니다. 그래도 고향이 아닙니까? 룻기를 보면 고향에는 나오미를 아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발벗고 나서는 것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룻입니다. 2장 2절을 보면 룻이 나오미에게 '내가 밭으로 가서 이삭을 줍겠습니다' 합니다. 그러면 나오미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아니다, 내가 가마. 너는 여기에서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지 않으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으냐? 더구나 너는 이방여자가 아니냐? 여기서는 이방인들을 멸시한단다.' 해야하겠지요.
최소한 '나도 가마. 같이 가자' 해야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어떻게 나옵니까? '내 딸아 갈지어다' 합니다.
아마 이 때 나오미는 뒤집어쓰고 누어 있었으면서 '그래 가 봐' 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도 잃었습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소망을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형편 가운데 있는 나오미에게 하나님은 손자를 주셨습니다. 기쁨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형편이 아주 어렵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때에 소망을 주십니다.
나오미하고 비교해 보세요. 나오미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큰 소망을 주십니다. 자주 인용하는 격언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점이 하나님의 출발점이다' '하루에서 가장 어두울 때에 새벽별이 뜬다'고 말한 역사가도 있습니다.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가끔 보도됩니다. 어제도 그런 뉴스가 있었습니다. 조금만 참고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다른 길을 찾았더라면 그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 텐데, 사회의 유익한 일꾼이 되었을 텐데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입니다.
수험생들, 이번 주간에 수능고사 통지표 받으시지요? 그 통지표에 좋은 점수가 적혀 있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점수가 낮게 나왔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룻은 자기 밭이 아닌 남의 밭,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다가 이삭도 넉넉하게 주었고 좋은 남편도 얻었고 아들도 얻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처음에 원하던 곳에 지망하지 못하고 형편에 맞추어 좀 낮춰 지망하더라도 그것이 보아스의 밭에 간 룻처럼 될 수가 있습니다. 더 출세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한 해의 거의 끝에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상징적인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끝에 가장 기쁜 일이 있다'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가장 어려울 때 이루어졌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경제적으로는 흉년이 계속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유대교가 형식에 빠져 사람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8·15 해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세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때 우리 나라가 해방되리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해방의 기쁨과 독립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나오미가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형편 속에 있었지만 소망을 품에 안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여러 가지 이유로, 건강 문제로, 가정 문제로, 사업 문제로, 진로 문제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보며 소망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나오미라고 하면 '고생 많이 한 여자' 우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나이 많은 여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연세 많은 여자 성도들의 선교회의 이름을 나오미선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많지요. 우리는 나오미에 대해서 '인정 많은 여인' 이것을 하나 덧붙여야합니다. 룻기를 잘 보면 나오미가 인정이 너무 많고 생각이 아주 깊은 여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떠났다가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나를 따라와도 아무런 소망이 없으니 돌아가라. 돌아가서 새 남편 맞이해서 잘 살아라'고 합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잃고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래도 며느리들이라도 같이 가야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의지가 될 터인데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며느리를 사랑하고 그들의 앞길을 염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집에는 고부간의 갈등이 처음부터 없었을 것 같습니다. 1장 13절 뒷부분 보세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나는 여호와에게 얻어맞아 이렇게 되었는데 나 때문에 너희가 고생하는 것이 가슴이 더 아프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생을 하게 되면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부모 잘못 만나서'이지요. 나오미도 '며느리 잘못 맞아들여서 두 아들 이 죽었다'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한다. 나는 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2장 20절을 보면 나오미는 또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룻2:20)합니다.
못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을 질투하고 비방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길 가는데 외제 고급 승용차가 지나가면 공연히 눈 흘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차만 골라서 펑크를 내거나 흠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친척 보아스를 축복했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남의 처지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고통 가운데에서 며느리들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축복했습니다..
여러분, 평소에도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시고 내가 좀 어려울 때도 이웃에 대해서 도움의 손길을 베풀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밖는 로마군병들을 생각했고, 함께 달린 강도를 생각했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감리교회에 신석구(申錫九) 목사님이라는 순교자가 있습니다. 일제 때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다고 감옥살이를 했고 해방될 때 신의주 부근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반공비밀결사 고문이라는 음모에 걸려 공산당에게 체포 당했습니다.. 재판을 받을 때 함께 체포된 두 여학생과 같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징역 10년을 언도 받았습니다. 이 여학생들은 6년씩을 언도 받았습니다. 신 목사님은 최후 진술에서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 감옥에서 죽어도 좋으니 나에게 22년 형을 언도하고 저 여학생들은 석방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분의 손자가 감리교 원로장로로 대구에서 법무사 일을 하고 있고 증손자가 감리교 목사님으로 저희 교회 남선교회에서 개척한 고령 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손자 되는 장로님에게 옥바라지하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겨울에 솜을 넣어 옷을 만들어서 갖다 드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면회 가보면 그 옷 입지 않고 덜덜 떨면서 면회실로 나오셨다고 합니다.
평양감옥에는 죄수들이 갇혀 있는 방과 면회실 사이에 마당이 있는데 그 장로님은 덜덜 떨면서 그 마당을 건너오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합니다. 그 옷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면 같이 갇혀 있는 죄수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을 구해 또 만들어 드리고, 또 그렇게 하고, 나중에는 이불을 뜯어서 겨울옷을 만들어 차입을 했다고 합니다.
면회를 가면 늘 하시는 말씀이 '얘, 지난번에 넣어준 엿 참 맛있더라. 미수가루도 맛있더라. 다음에 올 때 그거 좀 더 만들어 오너라' 알고 보면 그것도 같이 있던 사람들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웃을 생각하는 나오미를 축복하셔서 그에게 손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소망을 품에 안겨 주십니다. 성탄과 연말은 이웃을 더욱 생각해야 하는 때입니다. 이 일에 많이 참여하셔서 소망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기 바랍니다.
셋째, 소망은 함께 격려하며 나눌 때 더욱 커집니다.
성경 퀴즈 하나 합니다.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난 아들의 이름은 오벳입니다. 오벳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주었습니까? '그야 부모가 지어주었겠지!' 하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웃 여인들이 지어 주었습니다. 17절을 보세요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이웃 여인들이 기뻐하면서 축하하는 마음으로 지어주었습니다.
이웃 여인들은 나오미의 소망, 나오미의 기쁨을 축하하며 함께 나눕니다. 14절과 15절을 보세요..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리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룻기에 나오는 인물들, 다 훌륭합니다. 아까 '룻기는 처음은 좋지 않았으나 끝은 아주 좋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는데 등장 인물이 다 선하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룻, 효도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나오미,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며느리들과 이웃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보아스, 어려운 처지의 룻에게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4장에 나오는 장로들, 성실하게 증인이 되고 보아스와 룻이 이루는 새가정을 축복했습니다. 4장 11절과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마지막으로 이웃 여인들, 참 훌륭했습니다. 나오미가 손주 얻은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복했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베들레헴 공동체, 참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목양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 바랍니다.
이렇게 함께 기뻐하며 소망을 나눌 때에 그 소망은 인류 전체의 소망이 됩니다. 끝절, 22절을 보세요.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웃 여인들이 오벳을 축복할 때 그 오벳도 훌륭한 아들, 그리고 훌륭한 손자 다윗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고 우리에게 대림절의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대림절의 소망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소망이 점점 더 커집니다.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대림절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품으세요. 나오미가 손자 오벳을 품에 안고 양육자가 된 것 처럼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꼭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양육해 나가세요. 키우세요, 확대하세요. 이웃과 함께 나누세요.
그렇게 하는 가운데 새로운 소망과 많은 축보글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