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5: 15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 요일 5: 17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요일 5: 15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면서 그의 뜻에 맞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의 뜻대로 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도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또 우리의 간구의 응답을 믿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도의 효력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을 그가 들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믿어야 한다.
마가복음 11: 24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받는 줄로](전통본문)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본문은 14절의 반복이다. 14절의 간구와 응답은 구체적 현실성이 강조된 반면에 본 절의 경우는 일반적 원리성이 강조된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씀에는 죄악 된 인간의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간구는 당연히 제외되며 앞 절에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올바른 기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믿는 자들의 기도도 들어주신다.
* 요 11: 42 -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2]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구한'(에테카멘)은 직설법 완료형으로서 기도자의 객관적 기도 사실과 그 결과를 강조한다.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진정한 간구는 이미 그 결과를 얻은 것이다.
기도의 가시적인 응답이 미래에 나타날지라도 그 기도는 이미 효력을 발생하였다(Plummer, Brooke, Dodd).
본 절은 '안즉 ... 아느니라'(오이다멘 ... 오이다멘)로 되어 있어 지도자가 갖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초래하여 기도자의 확신이 더욱더 확실하게 됨을 시사한다. (Stott).
요일 5: 16-17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 ⑯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⑰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
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이며, 다른 하나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다.
사도 요한은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말한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 롬 6: 23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영생을 얻은 후에 실수로나 연약성 때문에 범하는 죄를 가리킬 것이다.
사도는 앞에서 중생한 자가 죄를 범치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는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다고 말하는 것은, 중생한 자가 계속 죄 가운데서 생활할 수 없다는 뜻이며 중생한 자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중생한 자도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그는 그 죄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즉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이다.
그는 그 실수 때문에 구원과 영생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형제가 그런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그러면 그는 회개하고 영생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범해서는 안 되는 죄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언급하신 '성령을 훼방하는 죄'이다. 그런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성령의 일을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대적하며 양심의 감동을 극도로 억압하는 죄로 생각된다.
요일 5: 16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1]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본 절에 나타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살인이나 간음 혹은 우상 숭배와 같은 특별한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주장한다. (Tertullian).
그러나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로 분류한 것을 찾아 볼 수 없기에 이 견해는 적합하지 않다(Stott).
Ⓑ '사망에 이르는 죄'가 배교나 적그리스도 혹은 거짓 교사들의 죄와 같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부합되지 않는 죄를 가리키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믿는 자들이 유혹에 넘어가 범할 수 있는 일반적인 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Brooke, Marshall, Smalley, Johnson, Alford, Clarke).
이 견해는 요한이 언급한 문맥과 일치한다. 두 번째 견해에 대해 혹자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것으로 보아 그 형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 반론을 제기한다(Stott).
그러나 이 반론 역시 문맥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즉 지속되는 불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배교를 하도록 하는 가능성을 내포하기에 요한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며 우상을 멀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18, 21절)
초대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배교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 히 6: 4-6 - ④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⑥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 히 10: 26-31 -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요한은 앞에서 기도와 응답에 대해서 진술한 바와 같이 본 절에서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한 기도는 굶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직접 제공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행위로(3: 17)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기도이다(Johnson).
이러한 중재 기도를 통해서 죄를 범한 형제는 죄의 고백의 필요성과 서로의 용서의 필요성을 확인하며 행하게 된다.
* 요 20: 23 -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중재 기도의 권면과는 달리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 즉 배교의 죄를 범한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금하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는다.
2]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사망에 이르는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이단들이나 거짓 교사, 적그리스도들이 범하는 죄처럼 지속적인 불신앙 가운데 진리를 배척하는 죄를 의미한다.
이런 죄는 새 생명의 소망이 전혀 없는 말하자면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속한 죄이다.
요일 5: 17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
여기서 '불의'(아디키아)는 '옳지 못한 행실'을 의미한다. 요한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의 문제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본문을 진술한 것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인간적으로 구분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죄들의 경중을 마음대로 구분함으로써 '죄 자체의 심각성'이 축소되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1]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교회 안에 이런 죄를 짓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종종 이단자들 속에서 이런 유의 죄를 볼 수 있다.
이단은 실수나 무지나 연약의 죄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이론적으로 다 아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무지해서가 아니고 순전히 고의적이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대항하고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류 역사 초기에 에덴동산에서의 뱀처럼 확신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이런 이단과 배교의 죄는 너무 크고 두려운 것이어서 실상 그런 자들을 형제로 여길 수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구원의 가망이 없어 보인다. 사도 요한은 이제 그런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연구하고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교훈을 바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면서 그의 뜻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심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우리는 누가 죄를 범하는 일을 보거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고의적으로 대항하는 이단자와 배교자를 위해 우리는 기도할 자신이 없지만, 주를 진실히 믿는 형제에 대해서는, 비록 그에게 실수와 연약이 있을지라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그의 회개와 구원과 성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