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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 - 약 5: 18 하늘이 비를 주고
약 5: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
병의 치료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병을 주신 이도 치료하실 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병의 정확한 원인을 아시며 그것의 완전한 치료 방법도 아신다. 그가 원하시면 우리의 병은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죄와 병이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물론 욥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신명기 28장의 증거대로, 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이 병에 걸렸을 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의 죄와 부족이 깨달아지면 고백하고 버리기를 결심해야 한다.
1]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본 절의 '기도'에는 '믿음의'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는데 이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신유의 기적이 '믿음'을 요구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비록 '기름'을 바르는 의학적인 치유 행위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여기에는 기도가 필요하며, 그 기도는 믿음으로 하여야 한다(1: 6).
* 마 9: 22 -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 막 9: 28-29 -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구원하시리니'(소세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 신체적인 질병에서의 구원, 질병의 치유를 가리킨다. (Ropes, Oesterley, Manton, Burdick, Tasker).
Ⓑ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Von Zoden).
Ⓒ 위의 두 견해를 모두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Clarke).
세 견해 중 첫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 마 9: 20-21 - 20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 막 6: 56 -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왜냐하면 '주께서 일으키리라'는 진술은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2]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칸 하마르티아스)는 조건문으로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지는 않다 할지라도 일부는 죄가 병의 원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Burdick).
* 신 28: 21-22, 27-29 -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케 할 것이라 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료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치시리니 29 소경이 어두운데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치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 막 2: 5 -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요 5: 14 -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 요 9: 2 -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또한 이러한 사실은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으로 병을 주신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 고전 11: 28-30 -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설사 병든 자의 질병이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기도는 죄 사함의 은혜를 유발하여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
* 막 2: 5 -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죄(謝罪)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하고 병든 자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행하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의뢰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들은 병든 교인들을 방문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요 사랑의 교제이다.
병의 치료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병을 주신 이도 치료하실 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아시며 또 그것의 완전한 치료 방법도 아신다. 그가 원하시면 우리의 병은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죄와 병이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물론 욥의 경우와 같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대로, 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과 용서가 병 치료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이 병들었을 때 무엇보다 먼저 겸손히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나는 우리의 죄와 부족을 고백해야 한다.
약 5: 16 죄를 서로 고백하며 -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의 거리끼는 죄악들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죄의 고백은 때때로 공개적일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의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실제로 의롭게 사는 성도를 가리킨다. 간구라는 원어(데에시스 엔에르구메네)는 힘 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힘 있는, 간절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병 치료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또한 범사에 기도는 능력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는 수단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방법이다.
1] 이러므로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연결 접속사 '운'은 앞 절에서 언급한 내용의 결론을 유도한다.
2]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본 절에서 야고보가 강조하는 바는 '죄를 서로 고하며', '서로 기도하는 것'이다.
'서로'는 상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죄의 고백'이나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상호간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헬라어 '엑소몰로게이스데'는 '밖으로'라는 의미를 지닌 '에크'와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뜻하는 '호몰로게오'의 합성어로 상호간의 죄의 고백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해성사의 근거라기보다는 도리어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설의 근거가 된다(Robertson, Manton, Taylor).
죄의 고백은, 물론 공개적이지 않는 것이 유익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공개적일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기도 한다.
특히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고자 할 때,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거리끼는 죄악들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야 한다.
3]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본문의 '의인'은 절대적으로 죄가 없는 의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가 많이 있어도 참되게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받은 자를 나타낸다(Manton, Mayor, Burdick).
* 롬 3: 10 -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역사하는'(에네르구메네)는 두 가지 경우 즉 수동태나 중간태로 해석될 수 있다. 수동태일 경우 기도에 역사하는 주체가 성령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Theophylact, Abbott, Oecumenius)
* 갈 5: 6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살후 2: 7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중간태일 경우는 기도 그 자체가 역사하는 주체임을 나타낸다(Alford, Robertson, Mayor, Lenski). 수동태일 경우 기도하는 행위자가 전적으로 배제되어 전후 문맥과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중간태로 해석함이 더 타당한 듯하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의인의 간구'라는 원어(데에시스 디카이우 엔에르구메네)는 '의인의 힘 있는 기도', '의인의 열렬한 기도'라는 뜻이다. 의인은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들의 힘 있는, 열렬한, 간절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병 치료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범사에 기도는 능력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통로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지정된 방법이다.
병실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야고보 사도가 치유에 대한 의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죄 사함과 구원이라는 신앙 용어를 사용한 점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병자에 대하여 육체적인 치유보다도 영적인 치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한 점이다. 영적인 건강함이 먼저 회복되면 육체적인 치유는 자연스럽게 허락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 5: 17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
야고보는 기도 응답의 예로 엘리야 선지자를 들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와 다른 초인적(超人的)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의 역사는 단지 그의 기도 생활에 있었다.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때 3년 6개월간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그가 다시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늘이 비를 주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본문은 엘리야의 수많은 역사 가운데서 비를 멈췄다가 오게 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가 자연의 현상까지 변동시킨 사실을 드러내어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사실을 예증한다(왕상 17, 18장).
1]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성정이 같은'(호모이오파데스)는 '유사한'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스'와 '고난'을 뜻하는 '파도스'의 합성어로 엘리야도 다른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나타낸다(Vincent, Blue).
* 왕상 17: 11-12 - 11 저가 가지러 갈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 왕상 19: 2-4 -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 행 10: 26 -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이는 엘리야가 위대한 선지자로서 초능력적인 자질을 소유하여 비를 그치고 내리게 하는 역사를 행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동시에 평범한 사람과 동일하게 괴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적 존재인 것을 부각시켜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은 의인은 엘리야와 같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Burdick, Mayor, Moo).
2]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 응답을 받은 역사를 나타낸다.
'간절히 기도한즉'(프로슈케 프로세윅사토)는 문자적으로 '기도로 기도했다'는 전형적 히브리식 표현법으로 강조 구문이다(Gibson, Tasker, Manton).
* 창 2: 17 -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 눅 22: 15 -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요 3: 29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 행 4: 17 -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실제로 구약성경에는 엘리야가 기도할 때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 왕상 17: 1 -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 왕상 18: 42-43 -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이러한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을 받아 비를 그치게도 하고 내리게도 하였다. 본문에서는 한발(旱魃)의 기간에 대해 '삼 년 육 개월'이라 하나 왕상 18: 1에는 '제 삼 년'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3년 6개월이 가뭄의 전체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왕상 17장에 기록된 사건들의 전체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해결된다.
* 눅 4: 25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야고보가 왕상의 내용을 직접, 간접으로 인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Lenski, Manton, Macknight).
약 5: 18 하늘이 비를 주고 -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
엘리야는 우리와 다른 어떤 초인적(超人的)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의 역사는 단지 그의 기도 생활에 있었다.
1]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때 3년 6개월간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그가 다시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늘이 비를 주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