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靑山四友 첫 모임은 서울의 강남구 유적 답사였다.
조선 초기 한명회의 별장이었던 狎鷗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조그만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이 아파트는 한강 한가운데에 있던 楮子島(닥나무 섬)를 폭파한 흙으로 제방을 만든 후 1976년에 지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유적지다.
청담 근린공원 안에는 조선 중기 譯官인 洪純彦을 기리는 기념비가 함초롬히 서 있다. 약수터 부근의 쉼터 의자 바로 앞에 있다. 이분은 명나라에 갔을 때 妓樓에 들렀는데, 그날 처음 나온 기생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공금으로 기생의 빚을 갚아주었기 때문에 돌아온 뒤에는 공금 횡령죄로 감옥에 갔다.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태조 李成桂 아버지의 성함이 명나라 기록에 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고치는 데에 일조하라는 명을 받고 다시 사신 행렬을 따라간다. 병부시랑 석성의 부인이 된 기생의 도움으로 200년 동안이나 고치지 못했던 일을 해결했으니 이것이 바로 宗系辨誣이다. 왕실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변증하여 바로 잡았다는 뜻이다. 그가 태어났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에 강남구청에서 비석을 세웠는데, 종계변무에 대한 것은 없다. 참으로 안타깝다.
宣陵, 혹은 宣,精陵은 成宗 부부와 中宗의 릉이 있는 곳이다. 원래는 선릉만 있었는데, 文定王后가 남편 중종의 릉을 옮겨와서 이렇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나중에 자신도 그곳에 묻힐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태릉으로 갔다. 중종의 릉이 있는 자리는 원래 선릉을 지키는 봉은사가 있었으나 이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한 뒤 릉을 조성했다. 선정릉에서 동쪽으로 8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봉은사는 신라 때 세워진 절로 국가 수호 사찰이었고 成典이라는 왕실의 관청이 관할하는 7개 사찰 중 한 곳이었다. 조선조 문정왕후의 지원을 받았던 普愚가 크게 일으켰다.
必敬齋는 조선조 세종의 다섯째 왕자인 廣平大君의 묘역 남쪽에 있는 옛 가옥인데, 광평군의 증손인 李天壽가 지은 99칸의 저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요리집으로 변했고, 식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한심한 후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선조의 유물을 음식점으로 만든 것도 별로지만 조상의 묘역과 가옥을 답사하겠다는 사람까지 막으니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여기에 딱 어울린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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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유서깊은 장소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