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설레는 마음으로
신나는 일들 2: 바이블 루트에서 레마를 만날 때
성경은 읽을 때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 말씀을 로고스, 곧 객관적 진리로 만나는 접근법이 있다. 성경은 일단 말씀 자체로는 ‘로고스’( logos 요한 1장 1절)이다. 이 말은 지혜, 말씀, 진리도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로고스는 아직 그림의 떡이라 할 수 있다. 즉 나와 아직 관계가 없는 말씀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이지만 아직 나와 끈으로 연결되지 않은 말씀이 로고스인 것이다.(*이것은 백주간에서 ‘복습’ 즉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저술한 부분을 말한다.)
-둘째, 레마 곧 나를 위한 개인적 메시지로 만나는 접근법이 있다.
‘레마rema’는 ‘말’ ‘진술’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인데, 이는 하느님께서 손수 어떤 특정인에게 주신 말씀을 뜻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양한 말씀들을 만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특별한 감동이 없는 말씀인 로고스의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단 하나만이라도 바로 나의 인생을 위한 ‘레마’가 다가온다면 너의 인생과 신앙은 아주 특별하게 변할 것이다. (*이것은 성서 백주간에서 ‘묵상(감상,내 마음에 와 닿는 말씀, 왜 나에게 그 말씀을 주시는지? 말씀을 통해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지?)’이라고 한다)
-레마를 붙잡고 산 이스라엘 민족
현재 인류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현재 인류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들의 객관적인 성적표는 인정해야 한다 20세기를 빛낸 가장 위대한 사상가 21명 가운데 15명이 유다인이다. 노벨상에 35%는 유다인이 차지했다. 미국 최고의 부자 40명 중 20명이 유다인이다. 이렇듯 그들의 현재 인류의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민족을 이끌어 낸 도구가 바로 성경이다. 유다인은 성경을 로고스보다는 레마로 읽었다.
(* 이 부분은 성서백주간 주간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묵상(레마)’이라고 하는 것과 직결된다. 말씀과 하느님을 살아 있는 관계로 만나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극단적 이해와 수용은 경계해야 한다. ‘복습(로고스)’가 빠진 묵상(레마)은 맹신과 광신으로 추락할 수 있다. 따라서 복습(로고스)과 묵상(레마)은 똑같이 중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복습(로고스)이 더 중요하다. 예수님을 로고스와 레마를 균형과 결합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하신 분이다. 입력자 생각!)
-필자)차동엽 신부가 만난 레마
필자에게도 인생의 고비, 선택의 순간마다 함께해 준 말씀이 있다. 필자가 신학교에 들어가도록 마음을 움직였던 다음 성경 말씀이 있었다. 어느 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야곱처럼 씨름하고있을 때 다음 성구가 확 들어왔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루카 19,41-42). 당시는 5공화국 시대였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필자는 이 시대를 향해 눈물 흘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 백성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전하겠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눈물로 약속하였다.
만남
날마다 교회를 찾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겉보기에 그는 초라한 행색에 삶의 고통에 짓눌려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하루도 교회에 가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2-3분이면 교회에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왜 그랬을까?
기도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교회에 와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예수님, 저. 잭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지만, 사실 그는 이로써 그의 마음을 다 전한 것이었다.
며칠 후, 노인이 길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노인은 아파보이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 밝은 모습이었다.
간호사가 노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내 손님 덕분이야. 그 사람이 날마다 병 문안 와서 날 기쁘게 해주거든."
"날마다 찾아오는 손님이라뇨?"
노인은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기에 물은 것이었다.
"그 손님이 언제 오는데요?"
"날마다 오지. 날마다 침대 저쪽에 그 분이 와서는 서 계신단 말이야. 내가 쳐다보면
방긋이 웃으시면서
'짐, 날세. 나, 예수일세!' 하신다니깐."
출처:차동엽, 행복코드 1 (꿈의 성취를 통하여); 위즈앤 비즈. p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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