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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토막이 아니냐" (슥 3:2)
요한 웨슬리, 《일기(Journal)》 초기 기록 (1725~1738)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의 서간집
서론: 하나님은 부흥의 도구를 어떻게 빚으시는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적 각성을 이끈 인물들의 공통점은 처음부터 완전했던 지도자가 아니라, 지독한 자기 파산과 광야의 절망을 통과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흔히 '완벽한 훈련가', '성결의 사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사역 초기 35년은 '율법주의적 종교성의 한계'와 '구원의 확신 없는 두려움'으로 점철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18세기 암흑기의 영국을 뒤흔들 불덩이로 웨슬리를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그의 모든 인간적 의(Self-righteousness)를 철저히 박살 내신 훈련의 과정을 추적합니다.
1. 엡워스의 화재: "타다 남은 그슬린 나무토막(A Brand Plucked from the Burning)"
1709년 2월 9일 밤, 요한 웨슬리가 여섯 살이던 해,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가 목회하던 엡워스(Epworth) 목사관에 의문의 방화로 추정되는 큰불이 났습니다. 온 가족이 간신히 탈출했으나, 2층 방에 어린 요한이 갇혀 있었습니다. 계단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사다리를 댈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한 이웃 주민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딛고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창문 난간에 매달려 있던 어린 요한을 간신히 낚아챘습니다. 아이를 구출하자마자 2층 지붕 전체가 굉음을 내며 폭삭 내려앉았습니다.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이 사건을 단순한 우연이나 요행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성경 스가랴 3장 2절을 인용하며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특별한 섭리로 살리셨다. 나는 이 아이의 영혼을 하나님께 바치고, 주께서 특별한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더 깊은 정성을 기울여 양육하리라."
웨슬리 자신 역시 평생 동안 자신을 '불구덩이에서 건져낸 그슬린 나무토막'으로 인식했습니다.
영적 원리: 부흥의 도구는 '내가 죽음의 불구덩이에서 조건 없이 건짐 받은 자'라는 절대적 빚진 자의 의식(Sovereign Preservation)에서 출발합니다. 구원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꺼져가는 불꽃 속에서 주권적으로 건져 올리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자각입니다.
2. 옥스퍼드 '신성회(Holy Club)': 철저한 경건의 규율(Method)과 율법의 한계
1720년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 입학하고, 1725년 성공회 부제로 안수받은 웨슬리는 거룩함에 대한 깊은 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거룩한 죽음》, 윌리엄 로의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삶》 등을 탐독하며 삶 전체를 철저한 규율 아래 두기로 결단했습니다.
1729년,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옥스퍼드에서 소그룹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조롱하며 '메소디스트(Methodists, 규칙쟁이들)', 혹은 '성스러운 모임(Holy Club)'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성회의 훈련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시간 관리: 매일 아침 4시에 기상하여 하루의 매 시간을 철저히 기록하고 영적 점검표를 작성함.
성경 연구와 기도: 헬라어 원문 성경을 날마다 연구하고, 정해진 시간마다 기도의 무릎을 꿇음.
금식과 절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철저히 금식하며 음식과 지출을 극도로 줄임.
구제와 사회봉사: 아낀 돈으로 옥스퍼드의 감옥(보카르도 교도소)을 매주 방문해 수감자들을 돌보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 가르침.
겉으로 보기에 웨슬리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웨슬리의 내면은 타는 듯한 갈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내 의를 세우고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나 내 안에는 여전히 죄의 권세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 앞에서 설 수 없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영적 원리: 아무리 엄격한 종교적 규율, 금식, 구제, 도덕적 완전주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의'를 쌓는 수단이 되는 순간 율법의 멍에가 됩니다. 참된 부흥은 '내가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서 오지 않고, '내 힘으로는 율법의 요구를 단 1%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철저한 영적 파산에서 시작됩니다.
3. 대서양의 폭풍과 모라비안 교도들: 종교인의 위선이 깨어지다
1735년, 웨슬리는 아메리카 대륙 조지아(Georgia) 식민지의 인디언 선교사이자 목회자로 자원하여 배에 올랐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 더 완벽한 거룩에 도달하기 위한 종교적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1736년 1월, 대서양 한가운데서 시속 수십 마일의 무시무시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배의 주 돛대를 부러뜨리고 갑판을 뒤덮었습니다. 영국인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었으며, 사제로 승선한 요한 웨슬리 본인조차 죽음의 공포 앞에 사시나무 떨듯 떨며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배 한구석에 모여 있던 일단의 독일계 모라비안 교도들(Moravian Brethren)은 파도가 들이치는 중에도 평온하게 시편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폭풍이 잦아든 후, 충격을 받은 웨슬리는 모라비안의 지도자에게 물었습니다.
웨슬리: "당신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까?"
모라비안: "감사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아녀자나 아이들조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후 조지아에 도착했을 때, 모라비안 목회자 아우구스트 슈팡겐베르크(August Spangenberg)는 웨슬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비수를 꽂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슈팡겐베르크: "형제여, 당신 내면에 증거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까?"
웨슬리: (당황하여 머뭇거림)
슈팡겐베르크: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웨슬리: "그분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압니다."
슈팡겐베르크: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웨슬리: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기를 바랍니다."
슈팡겐베르크: "당신 자신을 참으로 알고 있습니까?"
웨슬리: "예, 압니다."
웨슬리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내 대답은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했다."
4. 조지아 선교의 참담한 파산: 뼈아픈 자기 고백
조지아에서의 목회는 비참한 파국으로 끝났습니다. 웨슬리는 교인들에게 성공회의 엄격한 전례와 규율을 강요하다가 주민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습니다. 게다가 소피 홉키(Sophie Hopkey)라는 여성과의 미숙한 감정적 얽힘과 파혼 문제로 인해 고소를 당하고, 결국 야반도주하듯 영국으로 도망쳐 돌아와야 했습니다.
1738년 1월 24일,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웨슬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기에 자신의 영적 실상을 기록했습니다. 이 고백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정직하고 통렬한 종교인의 자기 폭로였습니다.
"나는 인디언들을 회심시키기 위해 아메리카로 갔다. 그러나 오, 나를 회심시킬 자는 누구인가?
나는 겉보기에 훌륭한 신앙을 가졌다. 위험이 없을 때는 말을 잘했다. 그러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내 마음은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가졌던 '승리의 믿음', 즉 죄와 두려움과 의심을 내쫓는 평안의 믿음을 갖지 못했다.
나는 남을 구원하러 바다를 건넜으나, 정작 내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자였다."
웨슬리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아들'이 아니라, 심판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율법을 섬기는 '종의 영(Spirit of bondage)'에 갇혀 있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제1강의 결론: 오늘 우리를 향한 부흥의 원리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깨우는 부흥의 사도로 쓰시기 위해 요한 웨슬리에게 행하신 첫 번째 작업은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종교적 가면을 벗겨내고, 자아의 완전한 무능력을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적 의의 파산 없이는 참된 은혜가 시작되지 않는다:
아무리 철저한 기도 습관, 성경 지식, 사역적 열매가 있어도, 그것이 십자가 없는 인간의 노력이라면 죽음과 환난의 폭풍 앞에서 맥없이 무너집니다.
머리의 신앙에서 심령의 확신으로 건너가야 한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구주라는 교리적 지식(Head knowledge)과, 그분이 바로 '나의 죄'를 도말하셨다는 내적 확증(Heart assurance)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습니다. 부흥의 불은 이 간극이 메워질 때 붙습니다.
실패는 부흥을 위한 필수적인 광야다:
조지아의 실패가 없었다면 올더스게이트의 불꽃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부흥의 사람을 쓰시기 전, 반드시 대서양의 폭풍과 광야의 파선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다음 강의 예고: 제2강. 올더스게이트의 불꽃: ‘마음의 이상한 뜨거움’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자신의 파산을 선언한 웨슬리가 마침내 1738년 5월 24일 밤, 복음의 실재를 만나 어떻게 영적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지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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