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아내와 난 8시 Petaling 거리와 Raja Lebuh 거리를 걸어서 메르데카광장으로 향한다. 메르데카광장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자 Sultan Abdul Samad 빌딩 옆 Raja Lebuh 거리엔 중무장한 기마경찰들이 메르데카 광장 쪽으로 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도보로 메르데카광장으로 들어가는 시민들은 통제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도 다리를 건너면서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가 보다 생각하고 경찰에게 물으니 메르데카광장에서 말레이시아 독립 57주년 기념행사를 한다고 한다. 원래 독립기념일은 8월 31일이지만 8월 31일이 일요일이라 평일인 오늘 독립기념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린 우연찮게 정말 운 좋게 말레이시아 독립기념행사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Raja Lebuh 거리의 기마경찰들
▶ 사진촬영에 응해 준 기마경찰
▶ 메르데카 광장에서의 독립기념일 행사 장면
잠시, 말레이시아 역사를 보고 가자. 말레이시아 최초 독립국가인 말라카왕국이 건국된 것은 1405년, 그때까지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반도 지역을 다스렸던 마자파히트 왕국의 군대를 피해 수마트라 팔렘방의 왕자 파라메스바라가 작은 어촌이던 말라카에 말레이인들을 이끌고 정착한 것이 시초다. 파라메스마라는 말라카를 거점으로 해상무역을 발전시키고, 말라카 왕국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다. 힌두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나 아랍, 인도의 이슬람상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했을 정도로 철저한 무역 전략으로 말라카를 무역 왕국으로 발전시킨다. 또한 당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샴(태국)왕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국 명나라의 속국이 되어 그 보호 덕에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꾀한다. 이 무역왕국 말라카가 바로 현재 말레이시아의 기원이다. 이때, 말라카는 동부 여러 국가(지금의 인도네시아 제도를 중심으로 한 일대의 군도)에서 생산된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유럽에 수출하는 중계무역항으로 번영을 이룬다. 최고 전성기 때는 4000명의 외국인 상인들이 이곳에 머물렀고 80개국 이상의 언어가 통용되었다 한다. 이렇게 말라카는 당시 아시아 진출을 꾀하고 있던 유럽 강대국들의 주목을 끌자 1511년 당시 스페인이나 네덜란드 등의 열강과 식민지를 놓고 다투던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말라카로 손을 뻗어 대략 1개월에 걸친 포위 공격으로 포르투갈 함대가 말라카 왕국을 점령, 그 후 1641년 까지 약 130년 동안 이 땅을 지배한다. 1545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말라카를 방문해, 그리스도교를 포교하기 시작해 현재도 말라카에는 그 무렵에 세워진 교회의 흔적과 사비에르의 석상이 있어 지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1641년 네덜란드가 말라카 해협에서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하고, 이곳을 지배하게 된다. 현재 말라카 교외에 남아있는 '포르투갈 마을'은 당시 포르투갈 인들의 후예이다. 이후 영국 세력이 말레이 반도까지 미치게 된 18세기 후반까지 네덜란드 지배는 3세기에 걸쳐 지속되는데, 그 사이 유럽열강에 의한 격렬한 영토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문화와 경제는 큰 번영을 이루게 되지만 정치적으로 정체된 시기를 맞게 된다.
1786년, 케다 주의 술탄이 미얀마와 태국을 두려워해 영국에 호위를 의뢰하고, 그 대신 페낭 섬을 동인도회사에게 할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말레이 반도 남부를 점령할 수 있게 된 영국은 단숨에 세력을 확장하여 1795년에는 말라카로도 손을 뻗친다. 그 뒤 나폴레옹전쟁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프랑스 간, 영국과 네덜란드 간 식민지 쟁탈전이 종식을 맞게 된 결과 영국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수중에 넣게 되고 1824년 말라카도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 후 동인도회사가 해산한 1867년에는 말라카 일대가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된다. 한편 보르네오 섬에서는 북보르네오(지금의 사라와크 주)원주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에서 1841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브룩이 브루나이의 술탄에게서 라자(왕)로 임명된 후 영국은 1세기에 걸쳐 이 땅을 통치하게 된다. 이후 영국 왕가의 말레이 지배는 세기를 넘어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시까지 지속되지만,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1942년 1월에 일본군은 싱가포르 이외의 말라야 지역을 점령하고, 다음 해에는 싱가포르까지 손을 뻗쳐 1945년 일본 패망 시까지 3년 반 동안 이곳을 통치한다. 일본이 퇴각하자 다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고 영국은 싱가포르를 제외한 전 말레이 반도를 통일하는 말라야 연합을 수립해 각 민족에게 평등하게 권리를 주는 정책을 추진하지만, 일본 통치시절에 우대받았던 말레이인들이 반발하자 1948년 말레이인에게 특권을 주는 협정을 맺었으나, 다시 이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들이 북부지방에서 게릴라전을 펴는 등 파란이 거듭된다. 1955년 총선거에서 말레이인 정당인 연합 말레이국민조직(UMNO), 말라야 중국인협회(MCA), 말라야 인도인 회의(MIC)가 연합당을 조직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1957년 8월31일 말라야연방은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초대 총리로 취임한 압둘 라만은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바, 사라와크, 브루나이로 이루어진 말레이시아 연방을 결성 추진해, 1963년에 브루나이를 제외한 말레이시아 연방을 발족된다. 그러나, 말레이인 우대 정책에 반발한 싱가포르는 1965년에 분리. 독립한다.
독립국가 성립 후에도 민족 간의 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1967년 동남아 아시아국가연합(ASEAN) 가입 등의 적극적인 외교 정책과 1970년대 초 말레이인 우대정책을 도입하여 점차 상황이 나아졌고,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마하티르 총리의 지휘 하에 철저한 경제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등 오늘 날의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로 손꼽힌다.
메르데카 광장은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광장으로 그곳에는 100m는 됨직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국기게양대에 엄청나게 큰 말레이시아 연방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넓은 광장에는 수많은 학생들과 다민족 국가답게 얼굴 모양과 복장이 다양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국기를 들고 도열해 있고 Sultan Abdul Samad 빌딩 앞 연단 위엔 마하티르 총리를 비롯한 주요 인사가 앉아 있다. 광장 주변을 경비하는 군인들과 경찰들의 모습도 다양해 히잡을 쓴 여경 및 여군을 비롯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기른 인도에서 봤던 시킴족, 말을 탄 기마대와 장갑차를 탄 특수부대인 듯한 군인과 경찰들의 복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한 기마경찰에게 다가가 사진을 같이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니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준다.
▶ 말레이시아 육해공군의 복장
▶ 전통복장을 입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 독립기념일 행사장 좌측으로 Sultan Abdul Samad 빌딩이 보인다
▶ 행사 시작을 알리는 군악대 퍼레이드
▶ 국기 게양식을 하기 위해 도열한 모습
▶ 식후 행사로 각종 도구를 사용한 매스게임을 펼치고 있다
한 시간이상 주요 인사들의 축사와 카드섹션, 마스게임, 퍼레이드 등으로 진행된 행사를 지켜보니 행사는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라기보다는 말레이시아에 사는 많은 민족들을 국가를 중심으로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더 집중된 것 같다. 국가를 제창하거나 구호를 외칠 때, 퍼레이드 등 각종 행사에서 다양한 전통복장을 입은 말레이시아 여러 민족 대표들이 참여시킨다. 행사가 끝날 무렵 연단 뒤에서 행사를 지켜보던 말레이 전통복장을 입은 청년들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니 흔쾌히 웃으며 응해 준다.
▶ 다민족 국가답게 전통복장을 한 여러 민족이 참여
▶ 하나된 말레이시아를 외치는 각 민족 대표
▶ 어느 소수 민족인지?
▶ 말레이족 전통복장을 입은 청년들과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