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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과학자”, 리처드 레빈스
새해 초, 한 노(老)생태학자의 타계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죽음에 미국의 사회주의저널 <자코뱅>은 “민중의 과학자”라는 제하의 부고를 게재하였다. 그는 누구이기에 “민중의 과학자”라는 칭호를 들은 것일까?
그의 이름은 리처드 레빈스이다. 1930년 6월 1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코넬대를 졸업하였고 1965년 콜롬비아 대학에서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는 죽기 직전까지 하버드 대학 공공보건대학원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이력만을 보아서는 그가 왜 “민중의 과학자”라는 훌륭한 찬사를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가 이런 찬사를 받은 것은 그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훌륭한 맑스주의 자연과학자였기 때문이다.
레빈스의 이론과 실천
많은 이들에게 리처드 레빈스의 주요 사상이 어떠한 것인지 생소할 것이다. 다행히 레빈스의 주요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 몇 년 전에 출판되어, 그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은 <리처드 레빈스의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한울)라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판본이다. 레빈스의 제자이자 역자 중 한 명인 박미형이 레빈스에게 번역 소개할 만한 글을 선정해달라고 요청하였고, 그 요청에 따라 레빈스가 보내 준 글이 이 책에 실린 글이다. 이 책의 글 중 상당수는 나중에 리처드 르윈틴(그 역시 저명한 유전학자이자 맑스주의자이다)과 함께 낸 <술에 취한 생물학(Biology under the Influence)>에 수록되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역자들은 레빈스의 사상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연유에서 발생하는 번역 상의 문제점들이 확인된다.)
이론적으로 그는 맑스주의를 올곧게 견지하고 더욱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유전자결정론, 사회생물학 등 자연과학 내의 결정론, 목적론에 맞서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과학철학을 확고히 견지하였다. 이런 과학철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리센코주의에 대해 레빈스가 보인 태도였다. 그는 스탈린의 후원을 받아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리센코의 비과학적 주장을 다른 서구의 과학자들처럼 깡그리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 주장을 오히려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계기로 삼았다(4장 슈말하우젠의 법칙).
또한 자연과학을 고립된 학문의 분야로 이해하지 않고, 사회와 과학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였다. 가령 그는 인간의 생물학을 ‘사회화된 생물학’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간에게 환경은 사회적인 동시에 물리적이다.”(164쪽) 또한 “사회마다 자연과 맺는 관계는 각각 다르며 이런 관계가 위기에 직면하게 될 때 생태와 사회적 배치가 모두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155쪽) 그리고 “이런 역사 내내 사회에서의 변화는 우리와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켰을 분 아니라 심지어는 우리의 생물학까지 변화시켰다. 반면에 자연에서의 변화는 그것이 우리가 유발했건 독립적으로 일어났건 간에, 전체 사회의 총체적인 붕괴에서부터 서로간의 새로운 관계 방식과 식생 및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155쪽) 레빈스의 이러한 생각은 맑스의 역사유물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실천적으로 그는 노동자계급과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 이미 젊은 시절 좌파 경력으로 FBI의 감시를 받았고,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하여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에 적극 연대하였다. 쿠바혁명이 발생한 이후에는 혁명의 전진을 위해 농업분야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하여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선정을 거부하였고 ‘민중을 위한 과학’ 모임에 참여하였다(263쪽).
레빈스와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
책 제목인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는 이 책에 수록된 마지막 글 제목이기도 하다. 이 제목은 마르크스가 쓴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중 마지막 테제를 가리킨다. 유명한 이 테제는 다음과 같다.
“철학자는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지막 글은 바로 이 테제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맑스주의 자연과학자 리처드 레빈스의 자서전적 글이다. 그는 미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붉은 기저귀’였다. 즉 사회주의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그는 인종적으로는 유태인이었지만 뉴욕 브루클린의 노동자 계급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이미 5대 전 종교를 버렸으며 할아버지 때부터 사회주의자 집안이었다. 흥미롭게도 하버드 대학에 자리를 잡은 세 명의 좌파 생물학자(리처드 레빈스, 리처드 르윈틴, 스티븐 제이 굴드)는 모두 뉴욕 노동자계급 거주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다섯 살 무렵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고 회고하였다면, 레빈스는 노동절에는 등교하지 않은 브루클린 좌파 동네에서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교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배우되 모두 믿지는 말라고 당부”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252쪽).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자연스레 ‘변증법적 생물학자’가 되었고, 맑스주의를 삶의 좌표로 삼았던 것이다.
레빈스의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란 말은 그의 삶을 완벽하게 표현해주는 말이다. 그리고 세계의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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