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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민 공생교육으로서의 한국어·한국문화 교육
신 명직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교수)
1. 들어가기 : 동아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제일 먼저 자명종 알람을 끄는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자명종 뒤를 살펴 본 적이 있다면, 그곳에 메이드 인 차이나 혹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씌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들은 이웃 나라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번엔 입고 있는 옷의 라벨을 한 번 살펴보자. 메이드 인 저팬도 있겠지만, 의외로 메이드 인 차이나, 베트남, 코리아, 혹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표기도 많을 것이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도 그렇고, 늘 애용하는 스마트폰 부품의 80퍼센트 이상이 이웃나라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의식주 가운데 제일 중요하다는 먹거리는 어떨까? 일본의 먹거리엔 대개 도도후켄이 적혀 있기에 메이드 인 저팬이라 보통의 일본사람들은 확신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나가노 현산 레터스 산지인 川上村에는 중국 길림성 출신의 실습생 600여명이 들어와 한 농가당 2명씩 배치되어 레터스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최고를 자랑하는 다랑어(가츠오) 잡이 어촌 마을인 미야자키 南鄕町는, 인도네시아 수산고교 출신 실습생 160여명 없이는 다랑어를 잡기 힘들다. 80년 이래 어부가 1/4로 줄어든 상황에서 배 한 척당 1/3정도로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같은 상황은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 농촌 총각의 절반 정도가 중국,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몽골 출신의 여성들과 결혼하고 있고, 농가 대부분이 이웃나라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어서, 한국의 먹거리 역시 이웃 나라 사람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메이드 인 저팬 혹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알고 있는 먹거리들이 실은 ‘메이드 인 동아시아’임을 우린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아니 우리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활용품들 역시 ‘메이드 인 동아시아’임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우린 식사할 때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곤 하는데, 그 때 그 감사의 대상에 반드시 이웃나라 사람들의 땀과 노고를 넣어야할 것이다. 우리가 ‘동아시아 공생’이라고 할 때, 이와 같은 감사의 마음은 아마도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는 우리들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일생생활 속에, 우리들의 먹거리와 일상용품 속에, 곧 국경 선 안쪽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동아시아인)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며, 서로를 이해하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최근엔 갈등만이 더욱 깊어져 갈 뿐이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이(異)문화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며, 동아시아와의 공생을 일러주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두 발을 동아시아인과 함께 딛고 서며, 서구를 비롯한 지구인 모두와의 협동과 공생을 기획하는 立亞共歐 (脫亞入毆가 아닌)의 길을 학생들과 함께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한류’를 통한 자발적인 한국어·한국문화 교육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국과 유럽의 팝송을 따라 부르고 좋아했던 것처럼, 최근 일본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팝(KPOP)을 좋아하고 함께 춤추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그것이 고급문화가 아닌 대중문화라는 이유만으로 종종 교육과정과 연구 과정에서 배척되거나 무시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이 서구의 문화가 아닌 아시아의 문화에 이처럼 열광한 것은 아마도 근대가 시작된 이래 처음있는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학생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일 텐데, 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육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자, 동아시아의 사회와 역사를 공생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사고하는 토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소속 대학인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한국어 시험을 유치하는 일이었다. 규슈에서 한국어 능력 시험을 보려면 모두들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대학까지 가야했는데,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향상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한국어 능력시험’을 소속 대학에서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결과 매년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 능력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마침내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3년 만에 최고레벨인 6급을 취득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늘어나자 학생들은 다양한 문화서클, 이를테면 ‘케이팝 노래서클’과 한국 전통악기인 ‘사물놀이’ 서클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 문화서클의 힘은 학생들이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일회적 호기심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이해와 애정으로 정착하게 되는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루어진 자발적인 한국어-한국문화 대회에의 준비와 참여과정은 자연스레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결과물들을 토대로 학생들이 한국문화를 비롯해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한 차원 높은 것으로 발전시켜낼 필요성을 느꼈다. 동아시아의 지역과 지역의 학생들을 잇는 한국문화 혹은 동아시아 공생 문화 서클 네트워크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3. ‘국민’을 넘어선 ‘동아시아 시민’ 의식과 ‘동아시아 공생’ 문화교육
학생들은 종종 특정 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지나칠 경우, 다른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낳기도 하는데, 실제 스키트와 케이팝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 대회’를 준비하고 참가하는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한국 이외의 문화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무관심했다.
고민 끝에 한국과 일본을 넘어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접하고 교류할 수 있는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2013년 10월 제6회 영화제를 개최했는데, 지역시민과 학생 포함하여 매년 대략 4~500명이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은 영화제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전 과정을 함께하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를 함께 고르고, 자막번역도 학생들과 유학생들이 함께 7~8파트로 나누어 1차 번역을 끝내면 전문가들이 그것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영화제 준비는 진행되었다. 자막을 입력하고, 영화를 상영하고, 포스터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까지도 이젠 학생 팀별 리더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영화제 준비 과정에서,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루어지는 시네마 토크에 출연하기 위해, 학생들이 함께 파워 포인트를 만들고 토론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좋았다. 동아시아 공생 교육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011년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학생들과 함께 경험하면서, 모두들 동아시아의 바다가 위험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와 같은 사고는 한국도 중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바다를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제 타이틀을 ‘동아시아 시민 공생 영화제’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국경을 넘어 함께 할 ‘동아시아 시민’이 중심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영화제에 담고자 한 것이다. 태양광 에너지만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세계일주를 하는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유엔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2012년)를 기념하여 생산과 소비가 대부분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스페인 ‘몬드라곤’ 지역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각 지역의 대학 홀을 주로 이용하여, 구마모토, 후쿠오카, 기타규슈를 비롯 부산,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영화제를 개최했다. 상영된 영화는 한국 영화들이 많긴 했지만, 대만,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영화들도 함께 상영하였다.
영화제는 성공적이었고, 학생들도 무척 재미있어해 했다. 하지만 영화를 단지 보고 이야기 하는 것만으론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학생들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해했다. 토론 끝에 학생들과 5분짜리 영화를 만들어 보기로 했는데, 테마는 ‘동아시아’와 ‘공생’이었다. 해외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휴대폰 비디오 카메라만으로 만든 영화제처럼, 동아시아 시민 공생 영화제 중간에 학생들이 비디오 카메라 혹은 소형 디지틀 카메라로 찍은 5분짜리 영화를 상영하기로 한 것이다.
수업시간 일부를 이용하여 간단한 영상 편집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사진을 비롯한 영상편집교육은 글쓰기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국경을 넘나들 경우 흔히 접하는 문자언어의 벽을 영상-영화는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언어-커뮤니케이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만든 5분짜리 영상들은, 일반 관객들에게 보여줄 만큼의 성과를 내진 못한 것이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동아시아 공생’이란 테마를 고민하고 내용을 생산해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학생들은 이 과제 역시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 믿는다. 동아시아 지역과 지역의 학생들이 만들어낸 5분 영상(UCC) 콘테스트를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만들고 보여주는 ‘동아시아 시민 공생 영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동아시아 공생 북 카페와 공생 네트워크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실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그곳을 기점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특히 언어-문화 교육은 학교 생활 전체가 하나의 교육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실만이 아닌 학교 안의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언어-문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늘 고민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어-한국 문화 대회와 동아시아 시민 공생 영화제를 함께 준비해가는 과정 역시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소중한 교육현장이었다. 한국 영화의 일본어 자막을 만들고, 한국 노래를 일본어로 번역해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어를 몸에 익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 두 차례의 한국어 대회와 영화제만으로 학생들이 동아시아의 공생과 동아시아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체화시키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최근 북 카페는 한국과 유럽에서 대학 도서관 혹은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자율적인 학습공간이자 집단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교육과 연구가 교실과 연구실만이 아닌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데, 북 카페는 그런 공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공생문화에 대해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갈 토론과 학습공간이자, 지역주민과 함께 동아시아 공생 마을 만들기를 함께 모색해볼 공간이 될 북카페는 아직 미완성 상태이다. 하지만 지역 자치단체 등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조만간 지역에 ‘동아시아 공생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학생들과 지방자치단체 일부가 운영하는 ‘동아시아 공생 북 카페’와 지역의 동아시아 음식점들이 연계된 ‘동아시아 공생 마을 만들기’를 현재 구상 중에 있다. 학생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그림책을 번역하고, ‘동아시아 공생 북카페’에선 학생들과 함께 번역한 책들을 전시하고, 지역 동아시아 음식점 주방장을 초대하여 간단한 요리와 문화를 선보이기도 하고, 지역의 동아시아 문화관련 인사들을 초청해, 함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자리를 모색 중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로컬에 뿌리내린 작지만 큰 동아시아 공생문화 마을 만들기를 실현시켜보고자 한다.
5. 맺는 말
동아시아 공생 문화를 지향한 한국어 한국문화 교육은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과 함께 조금씩 지혜를 모아간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이상으로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끝으로 학생들의 이러한 성과가 ‘동아시아 공생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기울여 보고자 한다. 일본과 중국, 한국, 러시아, 베트남 등지의 대학생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정기적으로 교류를 갖고, 유럽연합에서처럼, 환경문제와 농업문제 혹은 교육과 문화와 같은 테마를 함께 논의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네트워크가 만들어 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대학은 동아시아를 향해 지금까지 꿈꿔왔고 또한 실천해 온 과제들을 동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인 학생들과 함께 조금씩 하지만 크게 변화시킬 소중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한국문화는 물론 다양한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와 동아시아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을 함께 꿈꾸고 만들어갈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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