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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 신실한 성도님들에게 주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예정" 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 보겠습니다.
그 동안 시대를 거치면서 유명하신 많은 분들이 "예정" 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어져 왔습니다.
그들이 전한 "예정론" 은 잘못된 해석들로 인해서 일부 교회들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1장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미리아심에 의해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그분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그분의 자녀들로 예정에 이르게 하셔서 상속 유업을 받도록 하셨다고 "예정"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이며, 우리 모두가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세대에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창세전에 하남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말씀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신 무소 부재(無所不在)의 하나님께서는 그의 미리 아심에 의하여
구원받을 사람들이 누구이며,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창세 전부터 미리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인간적인 한정된 좁은 시각에서 보시지 마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신다면
그 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예정"과 "미리 아심"과 "택하심"에 대해서 많은 부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요한복음 6:37절, 4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느니라.
그러나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1:12-13),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에베소서 1:4-5),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입양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남자들이 자기 신부감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분 자신이 신부를 고르고
계십니다. 오늘날 신부들이 그녀가 어떤 남자를 남편으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어떤 여자를 자기의 신부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신랑입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 하였나니"
자, 보십시오, 에베소서1장 말씀에 의하면, 신부는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 신부 선택은 창세 전부터
그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1:9),
그리고 (로마서 9:11)에,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르심에 있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성경 말씀을 다르게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정한 뜻,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신부를 스스로 택하시는 것이었고, 그 뜻은 그분 안에 있었으며
영원하심은 창세 전에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잘 살펴보시고 그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주 진(塵)이 조금이라도 있기 이전에 또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이전에,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인데,
(영어 단어의 God는 "경배의 대상"임), 왜냐하면, 그때엔 그를 경배할 어떤 천사들도
어떤 사람들도 없었으므로 그 당시에는 잠정적인 하나님이셨을 뿐이었습니다.
창세 전에 그분은 오로지 영원한 영(영생)으로서 알려지셨고,
그 분 마음속에는 신부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신부는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창세 전에 그분의 생각 속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런 생각들은 어떻습니까? 그 생각들은 영원한 것이죠,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영원한 것입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이것을 이해하실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많은 것들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생각의 일부분"이 되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상으로든 행동으로든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미 알아봤고 증명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시므로, 그는 하나님으로서 전지(全知)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전지 하신 분이라면, 그는 지금 배우시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과 상의를 하시지도 않으며,
아무 때라도 자신이 알고 있던 것에 더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이미 알던 지식에 더할 수 있다면, 그는 전지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상의 말은 언젠가는 그는 전지하게 된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어떤 일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그의 모든 생각들은 그가 항상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이므로 처음부터 종말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들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제적인 생각들입니다.
그 생각들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 그린 언젠가는 형체와 실체로 변모될 청사진과 같은 것이 아니고,
이미 실제적이고 영원하며 하나님의 일부분입니다. 자, 이것이 어떻게 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아담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생각들로서의 아담은 아직 표현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편 139:15-16)을 읽어보시면 그걸 조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은밀한 가운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기묘하게 지음을 받았을 때,
나의 형체가 주로부터 숨겨지지 아니하였나이다. 내 형체가 완성되기도 전에 주의 눈이 그것을 보셨으며,
나의 지체들이 전혀 없고 형성되어 가는 중에도 주의 책에는 그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었었나이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아담에 대해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절은 아담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생각은 영원하고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아담이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고 그의 영적 존재를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그때 아담은 표현된 하나님의 생각이 되었고 그 영원한 생각들은 이제 표명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십 세기를 거쳐 내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 예레미야, 침례 요한을 찾아내는데
이들 각자는 정해진 때에 표현된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로고스이신 예수님께로 옵니다.
그는 표현된 완벽하고 완전한 생각이셨고, 그는 말씀이시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며 영원히 예수님은 말씀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그가 우리를 창세 전에 그(예수) 안에서 택하셨다."(엡1:4)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창세 전에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안에서 바로 그와 함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택함 받은 자들에게 영원성을 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창세 전에 하나님의 생각 안에 있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주입하겠습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탄생조차도 택함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난소는 수많은 난자를 생산해 냅니다. 하지만 어째서 특정한 때에 특정한 난자가 내려오고 다른 난자가
내려오지 않는 걸까요? 그리고 또 남성의 정자 가운데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는데 어떤 특정한 정자가
그 난자에 달라붙습니다. 쉽게 달라붙을 수 있었던, 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가졌던 다른 정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죽는데 말입니다. 이 모든 배후에는 유전 정보가 있어 그 아기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금발 머린지 갈색 머린지, 눈이 푸른지 까만지 기타 등등을 결정짓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염두 하면서 여호수아와 갈렙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49)에서,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죽은 그들 부모들은 예수께서 대하여 말씀하시던 사람들의 조상들로서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연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으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나갑시다. 이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그들의 정해진 때에 육신으로 표현될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로마서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를 따라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되거니와 마침내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히 하려 함이며, 율법에 속한 자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도니라.
그는 우리 모두의 아비라." (로마서 9:7-13), "또 아브라함의 씨라 하여 다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에게서 난 자만이 너의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이는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씨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이 때쯤에 내가 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신 것이라. 그뿐 아니라 리브가도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에 의하여 잉태하였는데
(아직 자식들이 나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에,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르심에 잇게 하시려고)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고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3:16),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많은 사람을 가리켜 씨들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한사람을 가리켜 너의 씨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는 그리스도시라."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너희는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
(로마서 4:16)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 모두에게 확실한 약속을 주셨고 바울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그 정의 하에 자신과 모든 믿는 자들을 두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은 그의 정의를 좁혀 내려갈 뿐 아니라 그것을 끝마치고 있는데,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3장에서 그는 그 씨(하나)를 예수로 연결시켰고 "그 씨 자녀"를 약속의 자녀로서,
그리고 약속이 "택하심" 또는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이 있다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얘기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왕가의 씨에 속한 이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고 하나님의 예정하시고 미리 아신 자들이며
하나님의 마음과 그의 생각들 속에 있던 자들입니다.
간단한 말로, 그리스도의 참 신부는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비록 각자가 정해지고 포고된 때에 나올 때까지는 표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각 지체가 나왔을 때 그것은 표현되었고 몸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신부는 문자 그대로 말해진 말씀의 씨 신부입니다.
신부는 정의상 여성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신부는 예수 안에서 예정되었고, 동일한 출처에서 나왔고, 그와 함께 영원한 존재이며,
지금은, 한 때 하나님께서 한 지체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표명되었던 것에 비해,
여러 지체로 된 몸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그렇게 불리워야 하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영원한 로고스(하나님)가 아들 안에 표명되었고,
예수 안에 신성의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고 영원하신 이는 육체로 표명된 아버지였고,
그것으로 아들의 직함을 얻으셨던 것처럼, 우리 차례로 그의 생각 속에서 영원한 우리는 육체로 표명된
여러 지체로 된 말해진 말씀의 씨가 되었고 이제 육체 안에 표명된 그런 영원한 생각들은 우리가 불리우는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우리는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씨가 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씨였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왜냐하면, 택하신 자만이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씨였기 때문에 우리는 소생될 수 있었습니다.
씨가 아닌 것 속에는 소생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점을 주의 깊게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갑시다.
구속(속량)은 값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원주인에게 되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흘려진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그의 사람들을 다시 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해진 말씀의 씨 신부를 다시 사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말)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여러분들은 항상 양이었습니다.
결코 돼지나 개였다가 양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생명 있는 각 종류는 자기와 동일한 종류를 생산하며 종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었다가 육체 안에 표현되었으므로, 우리가 그의 음성(말씀)을 들을 날이 와야 했고,
그 음성을 듣고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고 탕자가 "오 나의 아버지, 나를 구하소서.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왔나이다."하고
말했듯이 우리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아들은 자기가 아들임을 깨닫는데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진짜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이들은 암탉(교파 교회) 아래서 부화된 독수리 새끼 이야기와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독수리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내는 예표임을 아실 것입니다.
자, 한 농부가 독수리 둥지에서 알을 하나 가져다가 암탉 밑에다 두었습니다.
정해진 때가 되자 암탉 밑에 있는 알들이 다 깼습니다.
병아리 새끼들은 어미 닭과 함께 잘 지냈지만 그 어린 독수리는 닭들이 꼬꼬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먹이를 찾느라고 오물 더미를 헤집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살아나갔지만 모든 것이 아주 혼돈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 위 하늘에서 알을 낳았던 어미 독수리가 땅에 있는 그 어린 독수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어미 독수리는 놀랄 만큼 빠른 속력으로 내려와 새끼 독수리더러 날아 올라오라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그는 한 번도 독수리 울음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 외침을 들었을 때 안에 있던 뭔가가 요동되었고 그는 그리로 날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그 어미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자기를 따르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무섭다고 외쳤습니다. 다시 한 번 어미는 한 번 해 보라고 외치면서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날개 짓을 해 보다가 공중으로 몸을 던졌고 어미 독수리의 외침에 대답하면서
파란 창공을 가르며 솟구쳐 올라갔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새끼 독수리는 언제나 독수리였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 병아리처럼 행동했지만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큰 독수리가 부르는 소리를 듣자 자기
위치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일단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 말씀으로 성령의 외침을 듣게 되면,
그도 역시 자기가 누군지 깨닫고 그 위대한 선지자 독수리에게 달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리에 앉아 영원히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 성령 침례 위에 우리 승리의 머릿돌이 내려옵니다.
(갈라디아서 4:4-7), "그 때가 차니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셔서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시어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로 통한 하나님의 상속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 구속은 구입 즉 값을 지불함으로써 원 주인에게 회복시키는 것인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들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아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를 아들 명분(신분)으로 세우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육체 가운데 있는 동안에는 그의 아들로 인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아들이었습니다.
자, 이것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시어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오순절 날 누구 위에 성령이 내렸습니까?
아들들입니다. 고린도에서는? 말씀을 듣는 동안 아들들 위에 내렸습니다.
다음 성경 말씀으로 이 글을 끝마칠까, 합니다.
(사도행전13:40-48),"그러므로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들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보라, 너희 경멸하는 자들아, 놀라서 패망하라. 내가 너희의 날에 한 일을 행하리니,
누가 그 일을 너희에게 말해 줄지라도 너희가 그것을 결코 믿지 않으리라."고 하였느니라. 하자
유대인들이 회당을 떠나니, 이방인들이 간청하기를 다음 안식일에도 자기들에게 이런 말을 해 달라고 하더라....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읍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이더라.
그러나 유대인들이 무리를 보자 시기로 가득 차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모독 하니라.
그 때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너희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알았으나 너희가 그 말씀을 외면하고 너희 스스로가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였으니,
보라, 이제는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노라.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라."하였음이라." 하더라.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자 기뻐하며 주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그렀습니다. 창세전 하나님의 미리아심으로 아들로 입양에 이르도록 예정된 사람들이라면,
그들 모두는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모든 것을 미리아시는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지혜와 계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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