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독서 노트 [준주성범 1-21] 절실한 통회심(痛悔心) 하늘나그네 11.11.29 23:37
<댓글> 지도사제 11.11.30 12:41
이 준주성범은 참으로 훌륭한 영신서적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거 스토아 신학의 영향으로 육체를 멸시하는 금욕주의가 많이 스며 있는 것이 흠이 아닌가~~
그리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김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크게 작용하시게 하는 측면보다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과 인내와 고행으로 덕을 닦아 성덕에 이르는 측면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듯 느껴집니다.
내맡긴 영혼들은 이를 잘 분별하여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 ^
영적독서 노트 성령안에 머물러라-자크 필립- 김명희(마리아) 12.06.07 09:00
<댓글> 지도사제 12.06.07. 14:16
우리 교회 안에는 아직도 고행을 통하여 덕을 쌓아야 한다는 "고행주의" 사고가 잔재하고 있습니다.
고행주위는 아마 역사적으로 얀세니즘의 영향과 불교 내지는 힌두교적인 수덕 방법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저도 어린 시절, 소신학생 때는 훌륭한 신학생은 고행을 즐기고, 고행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이라 여기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행은 영적 생활에 큰 성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행 내지는 금욕주의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소수의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이사53,4)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가 나았다."(이사53,5)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를 고통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만 믿고 뜨겁게 사랑하면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위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걸 위탁하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 입니다.
╂ 오늘의 복음 2월 25일 연중 제 7주간 화요일 줄리엣(완전한영광) 14.02.25 06:21
<댓글> 지도사제 14.02.25 08:53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싸는 소리" 크으~~~
요강에 오줌 누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네요.
어린시절, 엄마 누나들과 같은 방에서 자던 생각이나요. 엄마도 요강에 쉬이~ , 누나들도 요강에 쉬이~ , 저도 요강에 쉬이~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정겨운 시절이었는지 모릅니다.
"엄마! 왜 엄마, 누나가 쉬이~ 할 때 어떤 때는 피리소리가나?"
다같은 인간의 조건! 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잘먹고 잘산다 하여도, 그리고 지 아무리 고고하고 도도하여도 벗어날 수 없는 건 <人間>!
너무 뻐기고 살지 맙시다!
댓글을 못쓰면 못쓰는 대로, 잘쓰면 잘쓰는 대로, 주님이 써 주시는 대로 쓰면 되지,
남이 어떻게 쓰나, 무신 야그를 하나, 뭐 저런 야그를 하나, 잔~뜩 지켜만 보지 맙시다!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싸던 시절이 무지 그립습니다.
지는 요즘도 짝은 사제관에 손님이 머무르시면, 손님 잠깨실까 페트병 잘라 요강 만들어 사용하고 있답니다.
옛날에~ 옛날에 어떤 자매가 있었는데~~~ 성당에 앉아 성체조배를 하다 보면, 제대 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생각이 자꾸 떠올라서 미치겠답니다.
자꾸 예수님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성체조배인데 왜 미치겠냐고 했더니,,,,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허리에 걸쳐진 수건 안쪽이 자꾸 떠올라 불경죄를 짓기 때문이라고~
참으로, 참으로~~~ 그래서 제가 으떻게 대답했는지 아시겠어요,
크으~~~
이 얘기는 쩡~말로 중요한 얘기에요, 우리 신앙인들에게요.
"봐라! 내가 하느님이다! 나는 초월자나 유령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처럼 살이 있고 피도 흘리며 너희들처럼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느끼며 또 눈물도 흘리지 않느냐?
나도 너희들처럼 길가다가도 응가도 다 해 보았고 설사도 해 보았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거룩하신 너희 엄마도 화장실에 가서 응가도 다 했고 너희들 엄마처럼 매달 거울에 뜬 달(月)도 보았단다.
나는 너희들보다 뛰어나지만 뛰어난 내가 만든 너희도 영적으로 성장하면 나처럼 뛰어난 내 자식이 될 수 있단다.
그렇다고 너희를 벗어나 우주의 저멀리에 있는 초월자가 아니란다.
나를 이용해 돈벌어 먹는 넘들이 마치 나를 귀신이나 되는 것처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너희를 홀려 놓았기 때문이란다. <단상, 평생 딸랑 이거?>
+ + + + + + +
여러 종교 중에서 우리 가톨릭은, 유독 <인간의 性>을 무시하고 더 나아가 죄악시한 역사가 많습니다.
그런 풍조가 언제부터 우리 교회에 들어온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짐작이 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열씸한 신앙인들이 도를 닦기 시작하면서부터(修道)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상 중에서 고대의 "스토아이즘"과 "네오플라토니즘"은 <인간의 육체와 특히 性을 죄악시하는 경향>을 가져오게 했답니다.
교회역사에 나타났던 여러 이단 중에서,
<육식, 살생, 생식, 혼인, 소유 등 일체의 세속생활을 부정하고, 가끔 단식해서 가혹한 고행을 실행하였다. 가족, 서약, 권력 등 일체의 사회관계도 부정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타리파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중세 유럽의 <카타리파>가 그 좋은 예가 될겁니다.
인간의 性(sex)은 절대 惡의 근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 男性으로 태어나셨고 그래서 남성을 지니고 있었고,
성모님은 분명 女性이셨기에 여성을 지니고 계셨고
두 분 다 태어나신 그 조건에 따라서 살아가셨던 분들이십니다.
우리의 어린시절 잘못된 교육으로 <거룩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신앙인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거룩한 성인, 성녀라고 화장실에도 안가고 이슬만 먹고 사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분들도 우리들처럼 인간으로서 <性慾>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의 성욕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예수님이 완전한 한 인간, 남성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면> 분명, 예수님도 우리처럼 <성적인 욕구>를 느끼셨을 겁니다.
거룩한 수도복을 입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끊고 봉쇄수도원에서 살아가시는 수녀님, 수사님들이라고 <성적인 욕구>까지 완전히 다 반납하고 살아가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거룩한 수도자들이 거룩한 수도복을 걸치면 그분들의 性이 저절로 하늘로 사라집니까?
제가 어떤 그 자매님께 드린 말씀은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매님! 모든 남성들이 다 고추가 있듯 예수님도 마찬가지셨고, <고추를 생각하는 것을 너무 죄악시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마태5,28>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음탕한 욕심" 없는 생각은 저는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性>은 <하느님의 거룩한 선물이요, 거룩함의 도구>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성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죄악시 해야지 인간의 성 그 자체를 죄악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각자의 성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모든 부부는 성실한 부부관계를 통해, 부부애를 완성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가끔 보면 <부부관계가 없는 것>을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영성(마처예함) 1신부와 신랑(5) 지도사제 16.01.07 08:31
<댓글> 지도사제 16.01.07. 09:18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이 기회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중에 이미 너무나 잘 경험한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에 육체적인 여러 질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질병도 겪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은 누구나 자연스레 인정하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성적인 문제는 터부시?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 문화 자체가 오랜 세월 유교문화에 젖어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답을 해 드리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겠지만 혹시, 성적인 면에서 상담을 원하는 분이 계시다면 저에게 쪽지나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영 성 5. 영성의 대가들(아우구스티노2) 지도사제 14.04.17 06:45
3-5 수덕 : 엄격한 금욕주의
아우구스티노는 근본적으로 엄격주의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비판을 받는다.
그는 당시의 사회가 도덕적으로 퇴폐해 있었고 또한 자신이 젊은 시절에 향락적 생활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있었음을 절감했기에,
개종을 하면서 그러한 악습으로부터 해방되고 유혹에 대항하기 위하여 성스러운 열정을 가지고 엄격한 금욕자세를 취하고자 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개종이 마니교를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졌을지라도 그의 영성에 마니교적 색조가 나타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실체 대립의 이원론이 그것이다. 바로 거기에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영성이 나온다.
예를 들면 육신의 이끌림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몰아내든지 하는 것이다.
한편 수도생활에 대한 관념은 그러한 영성에 더욱 자극을 주었다. 단호한 희생만이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자유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개종의 과정에서 만났고 도움을 받은 신 플라톤 사상이 그 안에 스며들어 영성적인 발견과 이해를 통한 감각적인 것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의 금욕주의는 애덕의 발전과 사목적 관심에 의해 어느 정도 조절되기도 했으나 신비적 영감에 의하여 여전히 자극을 받았다.
아우구스티노는 개종하면서 금욕적인 생활 외에 다른 어떤 형태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금욕을 실천한 어떠한 형태의 생활도 (따라서 기존의 수도생활의 형태고) 따르려하지 않았다.
결국엔 그가 새로운 형체로 변형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수도생활이란 형태를 통해서 그것을 수행하게 된다.
-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 -
지도사제 16.01.07. 09:38(마처예함)
우리 교회에 팽배해 있던 금욕주의를 잘 나타내 주는 사건이 교부 오리게네스의 자기 거세 사건입니다.
그가 성인반열에 오르지 못한 이유도 바로 그 이유였고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오리게네스는 신학자이다. 철학과 문학적 소양도 쌓았던 오리게네스는 동지의 교리학교 일을 맡는다.
청빈하고 금욕적으로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을 따라 자기 스스로 거세하기도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설교하다 교회규율 위반으로 이집트로 가서 집필에 전념한다.
그 후에 팔레스타인 사제에 임명되지만 교회관할상 문제로 교리학교에서 쫓겨난다.
[출처] 오리게네스|작성자 탐험가>
힐데가르트
힐데가르트는 '몸과 영혼이 하나'라는 신념을 더 굳혔다. 후에 자신의 비전에서 힐데가르트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혼만이 아니라 몸도 창조하신 것이므로
몸도 하느님의 선물이며 영혼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이 살찌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며,
'그러므로 몸은 잘 돌보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덕인데 지나치게 몸을 학대하는 극단적인 금욕은
오히려 창조주가 주신 덕을 유지하는 힘, 겸손과 사랑을 잃게 하고 평화로운 모습보다 분노에 싸인 모습을 보이게 한다'
고 밝힌다.
12세기에 공공연히 널리 만연하던 극단적인 금욕과 육체를 죄의 근원이라고 보는 태도를 힐데가르트는 거슬러 균형을 잡으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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