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악역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자신들의 의리와 정당성을 과시한다. 사람들을 그들에게 부여되는 매력적인 서사에 홀려 '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 탄생하는 이유다. 보통, 정상인이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통용될 만한 행동을 하고 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이와 반대되는 사람인 악인은 비정상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선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통용하되기만 한다면 정상으로 간주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정상으로 보는 관객들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는 악인을 선인으로 그려내는 데 최적화되어있다. 이른바 '프레임 이론' 때문이다. 대중들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틀에 따라 혼란을 겪고 정상과 비정상을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어금니 아빠'로 살인을 저지른 이영학은 처음 미디어에 노출되었을 때, 어려운 환경에서도 딸을 돌보는 선인으로 묘사되었다. 그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이영학의 모습이 선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상식적인 정상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상인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보냈다. 그러나, 이영학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그는 상식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비정상 프레임에 씌워졌다. 이번에 미디어가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악인이었다.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은 사실상 미디어의 프레임 안에서 결정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상인 선인과 비정상인 악인은 미디어에서 어떤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문제는 미디어가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지도 못하면서 여론 형성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기준에 관한 책임은 소실되었다. 최근 주목받았던 '강형욱 훈련사 갑질사건'에서 미디어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분명, 강형욱 훈련사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훌륭하고 믿음직한 전문가'였으나, 갑질 의혹이 제기되는 여론이 형성되자 미디어는 순식간에 그를 '두 얼굴을 가진 악인'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여론이 다시 재조정되자 미디어는 또 그와 관련된 프레임을 들고 왔다. 이처럼 미디어의 프레임이 기준 없이 흔들릴 때마다, 피해자는 등장했다.
그렇기에 미디어는 자신이 바로미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원래부터 객관적이지도 않은 기준점을 두고 시청자들의 선호에만 입각하는 미디어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악역이다. 미디어는 건강한 여론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정상으로 보는 여론에 주의를 주고, '악역 프레임이 씌워진 선인'에 의심을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미디어가 가진 감시의 역할이고, 사회의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진 여론으로 확대될 때,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명확히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