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및 수업의 첫 시간은 항상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글을 쓰고 싶으세요?” 특별한 목적이 없었던 나는 괜찮은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여러 책에서 감동과 위로를 받았듯이, 저도 이러한 글을 써 남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고 싶어서요.”라고 답하곤 했다. 하지만, 겉만 반지르르한 말인 듯 했고, 정작 내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답변이었다.
재작년 회사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되면서 글쓰기와의 만남에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직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나는 공황장애와 PTSD 진단을 받았다.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복합적인 감정과 신체적인 반응을 타인에게 설명해야만 했다. CT나 MRI와 같이 내 상태를 보여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타인에게 내 상태를 전달하려고 할 때마다 너무 답답했다. 단순히 ‘숨쉬기가 힘들어요. 불안해요.’ 이런 말들은 너무나 단순했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매 순간 증세가 발현될 때면 핸드폰 메모장을 급히 열고 그 순간의 증세, 기분, 감정 상태를 세밀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큰 바위가 내 가슴 위에 올려진 느낌이에요.’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기분이에요.’ ‘올랑올랑해요.’ ‘심장이 콩콩해요.’ ‘손가락이 찌르르해요.’
평안한 오후, 집에 있는데 갑자기 뜻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여 울고만 싶은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적었다. ‘마치 5살 어린아이가 아는 사람 없이 갑자기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기분 같아요.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낯설고 이상하고 무서워요.’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다급함과 절박함이다.
책 중 한 학인이 젊은 시절 장사의 추억을 떠올리면 썼던 문장을 보고, 울컥했다. 어두웠던 시간에 적은 일기에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고 짜증난다.’ 같은 차원의 문장들만이 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이 학인처럼 나도 구체적인 ‘사실’의 옷을 입을 기억 복구 작업으로서의 글쓰기를 하고 싶다.
여전히 나의 평범한 일상은 멈춰있고, 계속 병과 싸우고 있다.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조급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과 상태를 최대한 이해시킬 수 있을까. 매일 쓰는 상태 기록과 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독서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본다. 혹시 현재 나의 상태를 적확히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한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따라서 지금 나에게 글쓰기는 갈급함이다.
첫댓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참 용기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안고 살아야만 할 아픔들이 있기도 하더라구요. 지은 선생님께서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신 것은 정말 현명하신 일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일으키는 반응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바라보고 글을 쓰셨다는 것은 작가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뜻으로 여겨져서 부럽습니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메모도 잘 못할 때가 많아서 부끄러워집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세작교 에세이를 통해서 모두가 글도 삶도 더 밝은 쪽으로 성장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을 알려주신 글을 읽으니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저도 그랬어요는 아니지만 공감하려 노력합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아픈 마음을 열어주는 솔직한 글이네요.
글 쓰는 힘으로 분명 건강해 지실 겁니다.
글을 통해 남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주인공은 물론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