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출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유전하듯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실과 부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진부한 말 가운데에 진리가 있고 대수롭지 않은 것 가운데에 삶의 원리가 숨어 있는 경우는 많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특히 미루고 망설이면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충고 비슷하게 해봄직한 말이다. 무슨 일이든지 일단 시작해 놓고 보면 마음이 안정되면서 헤쳐 나갈 길도 보일 수 있지 않던가.
요리를 해 보려고 하면 마땅한 재료가 없고, 대청소를 하려고 해도 적절한 도구가 없다. 연구에 매진하려고 하면 참고 자료를 구하기 어렵고,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도 최소한의 자본이 없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말하기 쉽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힐책하면서 그의 소극적이고 나태한 태도를 책망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펼쳐놓고 따지면 그것은 단순한 핑계로서만 그치지 않는다. 가진 것은 모자라는데 어디에도 비빌 만한 언덕이 없으며, 사방을 둘러봐도 냉혹할 뿐 호소할 자리가 없는 것이 세상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조건이 될 때를 기다리다가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경쟁자들의 들끓는 아우성에 귀가 먹을 것 같다. 이제나 저제나 좋은 소식을 기다리다가 때가 오지 않으면 의욕도 시들해져 버리기 쉽다.
이른 아침 만원 전철에 흔들리며 출근하고 있는가?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보수가 얼마인가는 둘째 문제다. 당신의 목에는 직장의 로고와 당신의 이름이 적힌 목걸이가 자랑처럼 걸려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일자리를 찾으려고 이력서를 수십 번 써내도 연락이 없는 취업희망자들은 당신을 부러워할 것이다, 이력서를 안주머니 깊숙이 넣고 이리저리 뛰는 취업희망자들, 합격통지서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수험생. 맞선을 예순여덟 번이나 보았지만 번번이 어긋나서 나이만 더해간다는 과년한 남녀.
그러나 낙심할 일은 아니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니까, 오늘의 실패가 오히려 보약이 되고 불행을 막는 디딤돌이 될지 알겠는가. 뜻하지 않았던 방향에서 문이 열리고 드디어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패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인생이 180도 전환하고 주저앉았던 내가 쓰임을 받고 광명을 떨칠 수도 있다.
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길을 선택해야 한다. 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한 후에는 그 외의 다른 길은 미련을 버려야 한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후회가 있기는 마찬가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은 언제나 아쉬움과 매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간 후에 한숨을 쉬면서,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그중에 하나의 길을 택하였다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하게 될지라도 과감하게 하나를 선택한 걸 축하해야 한다.
나는 한때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음을 후회하였다. 후회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지만, 무엇을 선택했든지 거기 만족하기도 어렵다. 선택한 바로 그것이 운명이며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작한 자는 출발한 자다. 출발한 자는 이미 진행하고 있는 자이며 성취의 도상에 놓인 자다. 지금 막 출발한 자와 아직 출발하지 못한 자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몇 걸음의 차이가 아니라, 하고 있는 자와 하지 않은 자의 차이, 이론과 실천의 차이가 있다, 아무 때나 누구나 다 시작하고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길을 떠나기 전 목적하는 곳이 어디인가, 몇 시간이나 소요될 것인가, 거기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가늠하면서 차표를 산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서 결실과 수확의 시기를 생각하듯이. 어떤 일에든 알맞은 때가 있다. 새벽에 떠나야만 할 길을 저녁나절 떠난다면 그는 한밤의 어두운 늪과 가시덩굴을 이겨내고 졸음을 견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잠가둔 문을 흔들고 사람을 깨워야 하는 번잡함과 늦게 떠난 자로서의 부끄러움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늦게라도 출발했다면 포기하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오늘 시작한 나의 일이 부디 큰 성과를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내 앞에는 갈 길이 구만리로 뻗어 있고 되돌아설 수 없다는 각성과 의지가 불빛처럼 구원처럼 손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