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루의 안동 선비길 순례기, 제2 제3코스 도산서원길 걷기
도산서원길은 추로지향 안동의 대표적인 선비길이다. 퇴계(退溪. 李滉. 1501~1570) 선생이 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
~1606) 등과 함께 걷던 사제의 길이며 퇴계의 숨결이 살아있는 길이다. 월천은 퇴계의 8 고제(八高第. 여덟 수제자) 중 평생
동안 스승 퇴계를 가장 가까이 모신 분이다. 선조 때 4년 여 짧은 관직(공조참판)에서 물러나 일찍 낙향했고, 특히 임진왜란
때는 스스로 의병을 모집해 동생 및 두 아들과 함께 곽재우(郭再祐. 1552~1617. 홍의대장군) 의병대에 합류했으며, 퇴계 사
후엔 도산서원을 건립해 강학을 펼치며 퇴계학풍을 계승했던 분이다.
지난 주말, 안동선비길 두 번째 코스인 도산서원길에 올라 구간 들머리에 있는 월천서당(月川書堂)을 찾았다. 해묵은 은행나
무가 뜨락을 지키는 서당(전면 4칸, 측면 2칸에 팔 짝 지붕)은 퇴계 선생 친필 편액을 달고 담장 앞 도산구곡 월천곡(月川曲)
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당 뒤쪽에 있는 퇴계의 팔고제를 기념하는 팔우당(八友堂)도 볼거리.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국
문화테마파크와 산림과학박물관을 거쳐 분천곡(汾川曲)을 찾았다. 예부터 도산구곡 중에서도 절경이 뛰어난 곳으로 이름난
곳이지만 지금은 이웃한 농바위(聾巖)와 함께 안동호에 수몰되어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농바위는 퇴계의 스승으로 유명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647~1555. 문신) 선생이 이곳에 올라 농암가(聾巖歌)를 짓고, 자신의 호(號)로 썼던 유명한 바위
다. 분천리 광현마을(廣峴- -)의 광운사(光運寺)와 광현고개의 농암가비(聾巖歌碑)를, 재 너머 토계리 낙동강 기슭에 있는 간
석대(磵石帶)를 둘러보고 도산서원을 찾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퇴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사적 170호 이자 오늘날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
재된 문화유적지요 퇴계학문을 이은 추로지향(鄒魯之鄕) 안동 유학의 산실이다. 퇴계의 손길 닿은 수수백 년 묵은 왕버들 노
거수가 앞마당을 지키는 서원은 중앙 전교당(典敎堂)을 기준해 전. 후. 좌. 우에 완락재와 암서헌 등 여러 당우들이 줄지어 있
고, 퇴계선생이 4년여에 걸쳐 손수 지었다던 퇴계서당은 댓돌 앞 부용지(靜友塘)와 함께 소담스러웠다. 퇴계가 물이 맑고 차
가워 마시기 좋다던 열정(우물)도 옛 그대로이고, 퇴계가 즐겨 찾아 산천을 완상(玩常)하던 천연대(天淵帶) 또한 굽 도는 낙
동강 기슭에서 시사단(試士壇)과 마주하며 옛 그대로 있었다. 시사단은 1792년(정조 16) 정조가 퇴계를 추모하는 의미로 전
시(殿試)가 아닌 특별과거(別試)를 치렀던 곳이다. 영지산 동릉을 넘어가는 퇴계로에 있는 퇴계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시비(詩碑)를 찾았다. "-- -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아니한고- -"로 유명한 이 시
비는 전 육곡, 후 육곡 두 개의 시비로 세워져 있었다. 재넘어 도산공원도 찾았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관이 있는 공원에는
군자못(君子塘)을 비롯해 퇴계가 사군자인 매. 란. 국. 죽과 소나무와 자신을 일러 육우(六友)라 했던 나무들을 심어 그 운치
를 더했다. 퇴계 종택을 돌아 토계천변(土溪邊)에 있는 계상서당(溪上書堂)도 찾았다. 퇴계가 50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토계
천 가에 지은 서당으로 율곡 이이(李珥. 1536~1584)가 불원천리 멀다 않고 이곳으로 퇴계(당시 55세)를 찾아와 처음 만난 곳
이며, 특히 서당 뒤의 한서루(寒棲樓)는 퇴계가 별세한 곳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이웃한 퇴계묘를 찾았다.건지산(557m)의 남
릉 끝 언덕 요처에 있는 선생의 묘소는 두 기의 문인석은 있지만, 대체로 소박했다. 수수한 묘비도 볼거리. 퇴도만은(退陶晩
隱)으로 시작한 비명이 이채로웠다. 퇴도는 선생의 호(號)인데 풀어쓰면 '퇴계 선생이 도산으로 물러나 만년에 은거한'이란
뜻의 비명이다.
퇴계 종택에서 이어지는 선비길 3코스는 청포도길이요 예던길이다. 퇴계선생이 스승 농암 선생과 함께 걷던 길이요, 시인이
자 독립운동가였던 육사(陸史. 李源祿.1904~1944)를 기리는 길이다. 청포도길을 따라 이육사문학관을 찾았다. 토계천이 낙
동강에 합류하는 어귀를 돌아 낙동강 상류로 오르면 윷판대가 있다. 육사가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 -"로 시작
하는 광야(廣夜)의 시상을 떠 올리던 곳, 그러나 육사문학관 앞 원천리 낙동강변 넓은 들판 모두도 그의 주옥같은 시상을 떠
올리던 곳이다. 이육사문학관으로 가는 고갯길은 벌써 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육사문학관 참관기는 다음회로
미룬다.
촬영, 2024, 09, 07.
▼안동 도산면 동부리, 도산구곡 제2곡 月川曲 / 옛 모습은 안동호에 잠겨 있음
▼ 안동선비길 제2코스 안내지도
▼도산면 동부리, 월천서당 - 1
▼월천서당 - 2 /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
▼ 월천서당 - 3
▼ 월천서당 - 4 / 팔우당(八友堂 - 퇴계의 수제자 여덟 분을 기리는 당)
▼월천 조목 선생 고택 / 복원
▼도산면 동부리,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 - 1 / 복합문화단지.
▼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 - 2 / 디지털 테마파크 놀팍
▼도산면 동부리, 안동국제컨벤션센터
▼도산면 동부리, 안동 산림과학 박물관
▼도산면 송티재와 분천리 입구 / 분천리 노인회관 앞
▼도산면 분천리 강변 - 1 / 도산 9곡 제4곡 汾川曲과 농암바위(聾巖)가 있던 곳(호수에 잠겨 있음)
▼ 도산면 분천리 강변 - 2 / 멀리 강 하류 동부리 쪽 굽이엔 도산 9곡 중 제3곡 오담곡(鰲潭曲)이 있음
▼ 분천리에서 만난 삼잎국화
▼분천리 광현마을 가는 길
▼ 분천리 광현마을 - 1 / 광운사
▼ 분천리 광현마을 - 2
▼광현고개 농암 이현보 선생 농암가비(시조 가사)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 간석대(磵石臺) - 1
▼ 도산서원 간석대(磵石臺) - 2 / 퇴계 선생 '간석대 답청' 시비
▼도산서원 입구 - 1
▼도산서원 입구 - 2 / 천광운영대 앞
▼ 도산서원 입구 - 3 / 추로지향비(선비 고을을 일컫는 말)
▼도산서원(陶山書院) - 1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도산서원(陶山書院) - 2 / 전교당 가는 계단
▼ 도산서원(陶山書院) - 3 / 한석봉이 쓴 선조의 사액 현판과 전교당
▼ 도산서원(陶山書院) - 4 / 전교당 측면
▼ 도산서원(陶山書院) - 5 / 도산서당과 정우당(연지)
▼도산서원 왕버드나무 - 1
▼ 도산서원 왕버드나무 - 2
▼ 도산서원 천연대
▼ 안동 시사단 / 도산별과를 신설해 과거시험을 치르던 곳
▼필자의 도산서원 방문 기념
▼퇴계 종택 가는 길
▼퇴계의 도산십이곡 시비 - 1 / 도산육곡 1
▼ 퇴계의 도산십이곡 시비 - 2 / 도산육곡 2
▼도산공원 가는 샛길 - 1
▼ 도산공원 가는 샛길 - 2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관
▼도산정원 군자연못(君子塘)
▼도산면 토계리, 퇴계선생구택 - 1
▼도산면 토계리, 계상서당 - 1
▼ 계상서당 - 2
▼계상서당- 3 / 한서암
▼계상서당에서 본 토계천
▼계상서당 앞에서 본 퇴계종택
▼토계마을 쉼터
▼퇴계선생묘 - 1
▼ 퇴계선생묘 - 2 / 묘비
▼낙동강에 합류하는 토계천 어귀
▼토계리, 수졸당 / 진성 이 씨 동암 종택
▼애국지사 李東峰 묘비 입구
▼도산면 원천리, 윷판대 입구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 선생 동상과 절정 시비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문학관 - 1
▼이육사문학관 - 2
▼이육사문학관 - 3 / 광야
▼이육사문학관 - 3
▼이육사문학관 - 4
▼이육사문학관 - 5
▼이육사문학관 - 6
▼이육사문학관 - 7 / 육사가 친 난도
▼이육사문학관 - 8
▼이육사와 함께 /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가 시상을 떠 올리던 들판
첫댓글 이날도 고르지 못한 날씨여서
고생하셨습니다.
퇴계선생 묘비에 죽기 4일전
지었다는 자명문이 새겨져 있다는데
당일날 이를 미처 알지 못해
사진을 찍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이곳 부천의 최고기온은
섭씨 33도입니다.
추석이 지나면 더위도 한풀 꺾이겠지요.
늘 건강하세요.
다시 여러자료를 확인해 보니
퇴계의 묘비 자명문은 묘비 전면 좌측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네,
좋은 지적이었습니다.
"- - - 금심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근심 있는 법(憂中有樂 樂中有憂)
조화타고 자연으로 돌아가니 무었을 다시 구하랴(乘化歸盡 復何求兮)!"로 끝을 맺는
퇴계자찬묘지명(退溪自撰墓誌銘)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줄여서 퇴계자명(退溪自銘)으로 쓰기도 하지요.
유명한 다산자찬묘지명도 후일 이것을 보고 쓴 것으로 알고 있고요.
비석이 오래되어 읽기도 어렵고
사진은 더 담을 수 없어
退陶晩隱으로 시작하는 묘비만 언급했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