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아닌 개척에 모여든 이웃들...동네작은도서관 김일수 목사의 개척 이야기

[김재광]

개척 아닌 개척에 모여든 이웃들

동네작은도서관 김일수 목사의 개척 이야기

여기 한 목사가 있다. 이스라엘 유학파다. 올해로 41살이고 미혼이다.

이력이 특이하다. 신대원 졸업 3년 후 이름 난 교회의 부교역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제안을 뿌리치고 유학길에 올랐다. 이스라엘에 가서 현대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귀국한 다음에는 사역지로 바로 가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얼마간 농사를 지었다. 이어 고향 근처 경북 구미로 가서 학원 강사로 취업했다.

강사 생활을 8개월 남짓 했다. 동네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입시 학원이었다. 아이들은 그가 목사인 걸 몰랐고, 동료 선생님들도 그가 목사라는 사실을 괘념치 않았다. 그렇게 그는 점점 학원 강사가 되었고, 목사 타이틀은 접어 두었다.

△김일수 목사를 만났다. 이력이 특이하다. 이스라엘 유학, 학원 강사, 입주 청소, 도서관 부관장. 

책 한 권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작은 교회의 별난 개척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뒤늦게 든 생각. 그동안 목사 타이틀만 접은 게 아니라 교회에 대한 기대도 접었던 건 아닐까.

그길로 상경했다. 인터넷을 뒤졌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목회자, 성도들, 교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소문한 끝에 한 교회를 발견했다. 교인 30명이 넘으면 분립을 하기로 다짐한 교회였다. 개척이나 분립은 교인 수가 아닌 지역의 필요, 사역적 필요를 보고 한다는 고백에 마음이 끌렸다.

교역자 지원서를 넣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 예배부터 참석하고 교인 등록 후 모임에 출석했다.

생계가 걸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다시 학원 강사를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서울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말 그대로 취업전선이었다. 입주 청소 일을 하기로 했다. 일을 나갈 때는 저도 모르게 모자를 눌러 썼다.

1년 반 청소 일을 했다. 생업 현장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구슬땀과 근육통이었다.

김일수 목사, 그는 지금 교회에서 설립한 마을 도서관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있는 도서관이다. 주택 밀집 지역에 거주자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들인데 마땅한 도서관 하나 갖추고 있지 않은 동네다.

처음 도서관을 개소했을 때, 한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우연찮게도 그들은 모두 도서관 사서 경험이 있거나 현직에 있는 분들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직업이 사서인데, 막상 거주 지역에는 도서관 하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차였다.

말문이 트이고 도서관을 연 취지를 설명하니, 두 사람 다 처음에는 놀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교회 오라는 얘기뿐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노라고 털어놨다. 동네를 위해 무언가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것이었다. 둘 다 어릴 적, 또는 군대 있을 때 교회를 다녀본 적 있지만 꾸준히 교회 출석을 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교회 간판 없이 교회가 연 도서관에 교회 안 다니는 부부가 팔을 걷어부쳤다. 전문 사서 둘이 붙으니 차곡차곡 도서관이 제법 근사한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동네작은도서관은 작년 3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문을 열었다. 김일수 목사는 작년 9월부터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이 도서관에는 거의 매일 저녁 밥상이 차려진다. 동네 이웃 대여섯 명이 저녁을 같이 먹는다. 도서관에서 밥상이라니. 한 켠 부엌에 조리 기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식탁에는 반찬 그릇들이 하나 둘 놓인다. 둘레로 앉은 이웃들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책 읽으러 나오고, 독서 토론 모임 때 만나고, 아이들 마실 삼아 놀러 오고 하다가 친해진 무리들이다.

사서 부부는 얼마 전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교회도 아닌 곳에서 전도를 받은 것. 남편은 이미 세례를 받아서 아내만 세례를 받았다. 세례는 김일수 목사가 집전했다.

한 달에 한 번 주일에는 도서관에 놀러오는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주일학교를 연다. 선데이스쿨이라고 이름지었다. 이웃한 작은 교회 아이들도 도서관에서 여는 주일학교에 온다. 도서관이 여는 주일학교에 교회 아이들이 온다고??? 뭔가 앞뒤가 바뀐 거 같은데...

△부엌에서 일하는 손길이 자연스럽다. 도서관 식구들과 저녁에 식사를 차려 먹으면서 담소도 나누고 독서 토론도 하고 동네 일도 살핀다.  

김일수 목사는 학원 강사를 할 때도, 출장 청소 일을 할 때도, 지금 도서관 부관장으로 일하면서도 마찬가지 고민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교회란 무엇이고, 목회란 무엇이고, 목사란 누구인가'. 이스라엘 유학을 다녀와서 바로 교회로 가지 않고 다른 일터를 찾은 이유도 그 물음에서 시작됐다.

저녁 때 도서관 식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는 '교회가 무엇이고, 목사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여전히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그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교회란 무엇이고, 목회란 무엇이고, 목사란 누구인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제8회 목회자/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가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 열린다.

둘째 날 김일수 목사와 동네작은도서관의 색다른 개척 일기와 사역 이야기를 소개한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러분들과 뜻 깊은 만남과 나눔의 시간 열리길 바란다.

● 제8회 목회자/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안내 - https://goo.gl/xyFX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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