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얼음의 말들
비밀이 하나 있다.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이다. 나는 이 사실을 도서관에서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 눈의 여왕은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다.
눈의 여왕이 카이의 입에 숨결을 불어넣자 차가운 기운이 들어가며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눈의 여왕 입에서는 차가운 얼음들이 쏟아져 나왔고 눈빛도 얼굴도 얼음처럼 차가왔다.
엄마의 입에서도 얼음들과 함께 그렇게 차가운 말들이 자주 흘러나왔다. 나는 엄마의 말들을 들으면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 들곤 했다. 때로는 얼음 송곳으로 찔리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니 엄마는 틀림없이 눈의 여왕인 것이다.
나는 엄마가 눈의 여왕이라는 걸 알게 되자 그동안 엄마가 내게 왜 그랬나를 알게 되어 속이 시원했다.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미워서라든가 모자라고 싫어서 그런 말들을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엄마는 눈의 여왕이니까 그런 것이다.
그뒤로 나는 엄마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다 눈의 여왕의 얼음창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맞으면 아프고 차가운 건 여전했다.
나는 계속 괴로웠다. 차라리 나도 카이처럼 심장이 얼어붙게 되면 좋을 텐데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눈의 여왕이 되버리고 싶었다. 무엇에도 마음이 아프지 않게.
12살이 된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가 눈의 여왕이라고 믿고 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가 어딨냐고 하겠지만 나는 확실히 믿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내게 말을 할 때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얼음들이 지금도 나는 똑똑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해보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학교에 있는 상담선생님에게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선생님은 내가 환시를 본다고 생각하고 조현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서 보는 얼음 외에는 이상한 것을 보는 것이 없으므로 선생님의 이런 말은 날 상처 입혔다. 때문에 다시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았다.
2회 이상한 존재의 방문
내게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게 있다면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에조차 너무 큰 의미를 주지는 않으려고 하고 있다. 나는 세상을 사는 게 별로 유쾌하지 않아서 언제나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의미가 있는 것을 두고 죽는다면 슬프지 않겠는가.
오늘은 내가 12년째로 이 생을 살아가는 것을 견딘 날이다. 즉, 나의 생일이란 말이다. 물론 아무도 내 생일을 축하한 사람은 없다. 나는 친구가 없고 엄마는 그런 걸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더 눈의 여왕이 될 때가 많아서 나는 항상 마음속에 방패를 가지고 심장을 보호하는 상상을 하면서 엄마를 상대한다.
나에게도 날 지킬 아이템이 하나쯤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신기하게도 엄마의 차가운 말이 주는 고통이 조금은 덜 한 기분이 든다. 엄마는 요즘은 눈의 여왕일뿐만 아니라 한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전에 팔팔하게 화를 낼 때가 낫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쓰기 싫지만 오늘 나는 내가 미쳤다고 느끼는 일을 하나 또 겪었다. 집을 가고 있는데 눈앞에 초록색 모자를 쓴 난쟁이가 눈에 보였다. 나는 이제 내가 진짜 환시를 보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애써 못 본체 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 형체는 내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눈의 여왕의 후계자시여, 제발 이 세상에 새로 눈의 여왕이 탄생하는 걸 막는데 도움을 주십시오.”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긴 존재가 눈앞에서 이런 말을 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하겠는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지 않을까? 나도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꺄아, 소리를 지르며 그앞에서 전력달리기를 해서 도망갔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 나니 이제 아무런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도 불안하고 엄마 때문에도 그러니까 내가 잠시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이상한게 보였나바.’
나는 애써 마음을 다독거리면서 숨을 헉헉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