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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표된 시는 나를 떠난다
시론이 정연하다고 명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론은 추후에 정리해 놓은 지도와 같은 것. 그러나 지도가 오히려 길을 어렵게 흩어버릴 때도 있다.
대학에서 <시론(詩論)>을 강의하면서 시와 이론이 괴리되는 걸 자주 느꼈다. 나는 내 시에 시론을 적용해본 적이 없다. 발표된 시는 독자들의 이론과 안목에 맞게 재단된다. 애초에 시인이 의도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혹은 확대, 축소되기도 하면서 해석되는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시인의 발문을 쓸 때 이것이 과연 올바른 독해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내 생각만을 전개하지 않았던가.
지난 해 모 문예지 편집부에서 내게 특집용 시 다섯 편을 요구하면서 평론가는 임의로 선정하여 논평을 부탁했노라고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다시 걸려 왔었다.
“평론가가 작품론을 써왔는데 적절하지 않아서 다시 써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급박하여 이번 호에 게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독실한 크리스천인 평론가가 내 시를 무리하게 신앙시의 전형으로 이끌어갔다고 했다. 나는 시에 일정한 관형어가 붙은 시들, 신앙시, 통일시, 헌시 등 창작 동기와 목표가 뚜렷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가 무엇을 주장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래 우리들은 이념의 기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는 언어예술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회는 시인에게 인류와 역사의 대열에서 선각적 횃불이 되어주기 바란다. 시인이 그 요구에 미치지 못할 때 현실외면, 역사의식의 부재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시인의 의도와 달리 비판과 탄식 고발의 은유로 엉뚱하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안전벨트를 매었다 차장은 내 차표를 찢어서 반쪽만을 신표처럼 내밀었다 하나를 둘로 나누어 가진 우리들의 관계 온 강산 똘물처럼 굴러다녀도 반쪽씩의 차표를 품고 살다가 해지는 포구나 어느 주막가게 앞에서 다시 만나 반쪽씩을 맞추어 볼까 차는 산천을 가로질러 멀고 먼 시간 속으로 빨리어 가고 살아야지, 허리를 띠로 동이고 함께 달리는 슬프고도 아득한 우리들의 관계 불을 켜듯 그립게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반쪽 차표>-
40대 초반부터 지방대학에 근무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광주 서울 간의 고속버스를 탔다. 그때 고속버스엔 소위 안내양이라는 승무원이 있었다. 그들은 승객들의 표를 점검하면서 점선을 따라 둘로 쪼갠 다음 반쪽만을 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남북전쟁을 다룬 미국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절친한 두 사관생도가 각각 남군과 북군으로 출전하면서 “전쟁이 끝난 다음 죽지 않고 다시 만나면 이것을 맞추어보자”고 10달러짜리를 둘로 나누는 장면.
나는 안내양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우리도 이 “반쪽씩의 차표를 품고 살다가/해지는 포구나 /어느 주막가게 앞에서/다시 만나 반쪽씩을/맞추어 볼”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그것은 보통 해후를 바라는 이별의 스토리 속에 흔히 개입될 수 있는 화소이다.
그러나 평론가는 위의 <반쪽 차표>를 남북분단의 아픔을 그렸다고 논평하였다. 허리를 묶은 안전띠는 3·8선, 비극적 상황을 견디는 국민의 은유라고 여겼나 보다.
나는 당황하였다. 나는 당연히 위의 시에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야 했을까? 흔들리는 시대의 위험한 교량을 건너고 있는 지성인의 태도로서 안이하고 무감각한 대응은 질타당해야 할 대상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1980년대 후반이었고 교정은 연일 시위의 함성으로 시끄러웠다. 수업은 불가능하였고 교수들은 학생들이 제발 격앙된 행동으로 희생되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면서 그들의 뒤에 도열해 있었다.
그러나 시는 무의미한 언어와 리듬만으로도 성립될 수 있다.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피를 뿜듯 부르짖는 목소리는 주장을 관철하려는 수단이요 방법이지, 진정한 의미의 시는 아니다.
<반쪽 차표>는 드러난 그대로 아득한 그리움과 소망을 노래했다. 오히려 같은 시집 바로 앞의 <나는 지금 다시>가 행동하지 못하는 지성의 아픔을 노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꼭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니다. 무의식중에 토로된 내 양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는 발표함과 동시에 나를 떠난다.
나는 지금 다시 잠들려고 합니다
일몰의 그늘에서 깃발을 내리듯
순순한 육신을 꽃가지처럼 드리우고
활개 쳐서 갈 수 없는 요요한 꿈속으로
새털같이 즐겁게 떠나려고 합니다
사실, 지금 다시 잠들지 않아도
나는 사철 잠들어 있었습니다
눈뜬 자의 지혜에 불을 켜지 못하고
산 자의 고요가 독약보다 슬프게 퍼지는 것을
장승처럼 그냥 서서 보았습니다
이제 새삼 잠든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이제 거듭 잠든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이 절정의 죄짓는 나를 흔들어 주십시오
제발, 이 막판의 어리석은 나를
매질하여 주십시오.
-<나는 지금 다시>-
대낮의 팽팽한 긴장에서 풀려나 비로소 침몰하듯 잠길 수 있는 취침의 시간. 나는 아무런 회한도 가책도 없이 “순순한 육신을 꽃가지처럼 드리우고”, “요요한 꿈속으로 새털같이 즐겁게 떠나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지금 다시”라고 하였다. 그것은 부지불식중에 토로한 내 잠재의식일 것이다.
단순한 반복으로서의 ‘다시’이며 당연한 습관으로서의 ‘다시’인 동시에 아무런 가책도 각오도 아픔도 없는 ‘다시’. 그 ‘다시’는 나를 다그치고 매질하는 어조를 띤다. “지금 다시 잠들지 않아도 나는 사철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올바로 깨달아 알고 있는 자(눈뜬 자)로서 아무런 저항도 없고 행동의 몸짓도 없이 무슨 염치로 다시 잠든다는 것인가?
밤이면 눈을 감는 자연적 수면과, 이기와 외면 무관심을 은유하는 잠듦, 그 복합적인 잠에 대해서 나는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깨어 있는 자로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내가 또 잠이 들다니 “지금 다시 잠들지 않아도 나는 사철 잠들어 있었”으며, “눈뜬 자의 지혜에 불을 켜지 못하고 산 자의 고요가 독약보다 슬프게 퍼지는 것을 장승처럼 그냥 서서 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뻔뻔한 일인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 절정의 죄짓는 나를 흔들어 주십시오. 제발, 이 막판의 어리석은 나를 매질하여 주십시오.” 나는 절규한다.
평론가가 이 시를 간과하고 <반쪽 차표>를 언급한 것은 시의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의 첫 구절로 제목을 삼은 것은 너무 안이한 방법일 것이다. 그에 반하여 <반쪽 차표>는 “반쪽”이라는 말로 분단된 조국을 환기시키고 관심을 자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제목을 “잠들지 않으리”, 혹은 “죄 짓는 나”라 했다면 훨씬 호소력이 있었을 것 같다.
2. 가장 쉽고 친근한 소재
시는 생활과 무관한 것이라고 하는가? 시는 무작정 고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그러나 시에는 시인의 생활이 담기기 마련이다. 시는 시인이 자리 잡은 토양에서 스스로 몸을 삭히어 틔운 싹이다. 시는 그가 자란 기후와 흙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대표작을 언급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내 대표작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독자들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많은 독자가 읽는다면 그것은 내 대표작이 될 수밖에 없다. 시선집이 발간된 다음 어떤 독자가 “선생님, 백 편이나 되는 시 중 왜 <풀꽃>을 넣지 않았어요. 저는 그것이 제일 좋은데요.”했다. 후에 다시 읽어보니 넣어도 되겠구나 싶었다.
내 대표작으로 독자가 뽑은 작품들은 대략 <집으로 가자>, <빨래를 넣고서>, <저녁식탁>, <아지랑이가 있는 집>,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안녕하십니까>, <추억이란 말에서는>, <안부만 묻습니다>, <사죄>… 등이다.
이들은 결코 거창한 소재들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 그 중에서도 집과 가족과 가사에 집중되어 있으니, 누가 보아도 여성이 쓴 시라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시인들 중에는 여성적인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인들이 많다. 물론 성을 초월하여 포괄적 인간본성을 표현하는 편이 훨씬 이상적이겠지만, 나는 여성 친화적 소재를 피할 마음이 없다. 여성성이야말로 남성의 불가침지역이며 표현불가의 지역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것을 버리기보다 내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로 발전시키고 싶다.
집에는 내 부끄러운 풍속이 있다
밥통 같은
간장종지 같은
요강단지 같은
집에는 부스러진 내 비늘이 있다
머리카락 같은
손톱 같은
살비듬 같은
집에는 내 아지랑이가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세어보는 색깔
집에는 슬픈 껍데기 얼룩진 콧물
그보다 치사한 인정이 있다
집에는 내 냄새가
고집이 있다
앉아서 돌이 되는 집념이 있다
-<아지랑이가 있는 집>-
한 평생 끊임없이 반복해온 일이 집에서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집이 구조를 갖춘 House냐, 가족과 삶이 엮어지는 공간으로서의 Home이냐, 그것은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나의 집은 영육을 뭉뚱그려 일체를 이룬 그냥 ‘집’이다.
거기에는 자질구레하고 시시한 살림살이들로 차 있다. ‘밥통’과 ‘간장종지’, ‘요강단지’같은 것들. 없으면 아쉽지만 있어도 아무런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 집에는 내 몸의 비늘과 손톱과 살비듬 같은 것들, 내 “슬픈 껍데기 얼룩진 콧물”이 있고, “그보다 치사한 인정이 있”으며, 내 냄새와 고집과 “앉아서 돌이 되는” 집념이 있다.
집은 끊임없이 수련해야 할 내 자신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준다.
나는 이런 것들을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무지개의 일곱 빛깔 희망을 건다. “부끄러운 풍속”이면 부끄러운 그대로 남루하면 남루한 그대로 나를 구성하는 부품이며 조건인 것이다.
내가 집에 묶여 있으면서도 나는 집이 나를 구속한다고 생각한다. 결혼 전부터 시작된 내 사회생활은 나를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였다. 더구나 내외가 함께 그랬으므로 우리는 가출한 어미요 아비였다. 아마도 집으로부터 느끼는 억압과 부자유는 떠나 있음의 아쉬움과 그리움, 미안함과 죄책감의 변형이 아니었나 싶다.
<집으로 간다>에서 나는 “아침마다 가출했다가 저녁마다 참회하듯 돌아와/떨리는 손가락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이리와 승냥이와 여우굴을 지나”, “나 돌아왔노라/시리고 아픈 이름 가족이여/이렇게 돌아올 집이 있노라” 마치 개선을 울부짖듯 소리쳤다. 그러나 돌아온 집은 내 열등한 발목이었고, 발목을 잡아끄는 동아줄이기도 했다.
<집으로 가자>에서는 “이제 집으로 가자/쫓기다가 넘어지다가 이제는 가자/비단실 그물이 나를 묶어서/조이는 핏줄엔 듯,/끌리어 가자.” 재촉하였고, 집에 돌아가서는 “얼룩진 상처 이부자리 끌어 덮고/유순한 짐승처럼 이마를 맞대/눈물 콧물 문질러서” 나를 파묻었다.
<조갑지 같은 집 한 채>에서는 “굴딱지 같은 띳집”이라도 어떠냐고, “곤곤한 콧노래로 걱정거리 삭이”는 행복을 꿈꾸다가도 ”나는 혹시 어리석게 행복해져버렸는가”고 소시민의 안정에 익숙해지려는 자신을 힐책하기도 하였다. 집은 최대한으로 축소한 내 욕망인 동시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순치해야 하는 수련장이기도 하였다.
모두 내 잘못이야,그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흐르다 멈춘 개울물같이미안해, 용서해 줘,아무것도 겨냥하지 않은 그의 눈길이
대기 속에 가득 차오르는 동안나는 차라리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없어지고 싶었다내가 먼저 사죄할 걸
그가 잘못하지 않았음은 세상이 다 알 것이다
나대신 빌고 있는 그의 머리 위에
합창처럼 쏟아지는 저녁노을 목울음
모든 것은 때가 있음을 배웠는데도나는 이미 시간을 놓쳤다
-<사죄>-
나는 욕망을 최대한으로 축소하여 스스로를 길들였을 뿐 아니라, 솔직한 감정의 표현도 인색하게 통제하고 억압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없지만 친구와 토라져서 몇 달째나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의 모습이 얼핏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사실은 너를 좋아해”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그 말을 꺼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가 우리 둘 사이의 오래된 침묵을 깨고 모든 일은 자기의 잘못이라고 나를 앞질러 사과하고 말았다. 나는 그 때 “차라리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없어지고 싶었다”. “내가 먼저 사죄할 걸”, “모든 것은 때가 있음을 배웠는데도/나는 이미 시간을 놓쳤”던 것이다. “나 대신 빌고 있는 그의 머리 위에/합창처럼 쏟아지는 저녁노을 목울음” 소리를 나는 부럽고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들어야 했다. “모두 내 잘못이야”, “미안해, 용서해 줘” 사죄하는 사람은 이미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나는 그때부터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망설이면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는 어리석음. 나는 아직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시인다운 시인
적어도 시를 쓸 때는 진실의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시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이며 양심일 것이다. 공자의 시삼백 일언이 폐지왈 사무사(詩三百 一言以 蔽之曰 思無邪)란 말도 바로 진실을 강조한 게 아니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진실을 추구한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에게나 시인이 아닌 사람에게나 사람을 칭찬하고 싶을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정말 시인다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꼭 시인 같아요.”
그런데 나는 어떤가? 시인다운 시인인가? 50년간 시를 써왔으면서도 시인답지 않다면 내가 그 동안 써온 시들은 모두 가짜가 될 것이다. 나는 초조하게 나를 돌아다본다.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나는 나란히 사는 법을 배웠다
줄이고 좁혀서 같이 사는 법
물마시고 고개 숙여 맑게 사는 법
콩나물을 다듬다가 나는 어우러지는 적막감을 알았다
함께 살기는 쉬워도 함께 죽기는 어려워
우리들의 그림자는 따로따로 서 있음을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나는
내가 지니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나는 가져서 부자유함을 깨달았다
콩깍지 벗듯 벗어버리고 싶은
물껍데기 뿐
내 사방에는 물껍데기 뿐이다.
콩나물을 다듬다가 나는 비로소
죽지를 펴고 멀어져가는
그리운 내 뒷모습을 보았다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콩나물을 다듬는 일, 그런 일이야말로 선생님보다야 내가 훨씬 더 많이 했을 텐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요?”
“나도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문득 콩나물의 본 모습을 보았고 그 순간을 포착한 것뿐입니다.”
위의 시를 읽었다는 어느 주부와 주고받은 말이다.
우리 주변에 시가 될 씨앗들은 도처에 콩나물처럼 산재해 있다. 그것은 큰일도 놀라운 일도 아니며 어려운 일은 더욱 아니다. 일상의 생활에서 친근하고 익숙하게 스쳐지나가는 일들.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만 아직 공동의 광장으로 초대해 들이지 않은 일들. 그 일들을 소중하게 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시의 싹으로 틔우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밝아오는 것, 꽃이 벙글 듯 피어나는 것, 그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오랜 기후와 토양 가운데서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흐름으로 온다. 그것은 스스로 기척 없이 올 뿐, 낚싯대에 미끼를 끼우고 찌가 흔들리기를 기다릴 대상은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생활을 반복하는 동안 누적된 앙금이 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시 <빨래를 널고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지를 늘어뜨린 나의 포즈를 생각하며 빨래를 넌다. 포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고쳐 널기도 한다. 빨래는 하루 종일 태양을 향하여 두 팔을 쳐들고 무방비상태로 걸려 있다. 태양에게 당부하는 듯, 하루 종일 흔들리면서 진언을 읊조린다.
햇살이 쨍한 날 빨랫줄에는 “항복하는 사람처럼 두 팔을 들고” 가슴을 풀어 헤친 내가 있다. 눅눅한 세상에서 구겨지고 젖었던 몸을 통풍하고 제습하면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원망도 소원도 없이 눈부신 해를 바라보고 있는 나.
나는 빨랫줄에서 모처럼의 자유와 유희를 즐기면서 “그리움을 알리는 하얀 깃발”처럼, “마지막별처럼” 나는 축제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첫 구절 “빨래를 널었다/사지를 늘어뜨린 나의 육신을/창천에 표백하듯 내다 걸었다”로부터 “제 풀에 마르는 들풀처럼 누워서/유순한 복종으로 흔들리고 싶다” 마지막 구절까지 나는 걱정 없이 편안하게 빨랫줄에서 흔들린다.
나는 무엇인가? 겨우 물에 젖은 빨래인가? 구겨진 옷인가? 못마땅한 의문을 제기하고 부정하는 한 온전한 글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가 사랑이라면 사랑의 눈으로 발견해야 한다.
생활과 무관한 일, 모르는 일들은 시가 되지 못한다. 싫은 일 언짢은 일도 시가 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이고 싫기 때문이며 정겹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옴짝달싹 막혀 있는 걸 보면
아침 여덟 시 혹은 아홉 시
문을 열 시간들이 가까웠나 보다
오늘은 더구나 월요일
죽전에서 분당, 내곡터널을 지나
성수교로 청량리로 뻗치는 핏줄
내 팔다리에 쥐가 나고 저릴 때면 으레
서울 시내 큰길들도 막혀 있다
펄펄하던 친구가 관상동맥을 뚫었다는데
정신은 아직 멀쩡해도, 누워 있어야 한다는데
이른 아침 안개를 쓰고 밀리는 차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는 영동 3교
나는 베란다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고지혈증 하루 한 알
카듀엣을 삼킨다
내 온몸을 점령한 적체된 찌꺼기가
이제는 쓸데없이 거리로 나가
저렇게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나 보다
─<영동 3교>-
아침 출근시간 나는 베란다에 앉아서 교통체증이 심한 영동3교를 바라본다. 막혀 있는 영동3교와 고지혈증인 내 몸은 닮아 있다. “내 팔다리에 쥐가 나고 저릴 때면 으레
서울 시내 큰길들도 막혀 있”고, 서울 시내 큰길들이 막혀 있을 때면 내 몸의 혈행도 원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온몸을 점령한 적체된 찌꺼기가/이제는 쓸데없이 거리로 나가/저렇게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나 보다”고 서둘러 자수하듯 고백하는 것이다. 최근 펴낸 시집의 발문에서 평론가 장경렬 교수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시인은 제2연의 마지막 부분에 3행의 시적 발언을 덧붙임으로써 이 시 자체를 깊은 자기 성찰의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길을 핏줄에 비유하고 핏줄을 길에 비유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교통 체증의 원인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다 말한다. “내 온몸을 점령한 적체된 찌꺼기가/이제는 쓸데없이 거리로 나가/저렇게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나 보다. ”논리적으로야 이는 물론 가당치 않은 진술이다. 하지만 비유적으로 보면 ‘내 탓이오’를 끊임없이 되뇌는 경건한 신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내 탓이오’라는 말은 ‘mea culpa’라는 라틴어 표현을 우리말로 바꾼 것으로, 이 표현을 축어적으로 번역하면 ‘나의 잘못’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 온몸을 점령한 적체된 찌꺼기”는 시인이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저질렀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온갖 잘못을 지칭하는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길이 막혀 “저렇게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나 보다”라니? 과장이 감지되지 않은가. 여기서 시인은 이른바 ‘나비효과’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녕코, 나비의 날갯짓과 다름없는 사소한 나의 잘못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은 결코 과장이라는 이름 아래 폄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매사에 진지하고 깊은 자기 성찰의 마음을 잃지 않는 지극히 겸손한 인간이 지닐 법한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것이 제2연의 마지막 3행일 수 있다.-
시인의 의도를 무색하게 할 만큼 차원 높은 해설이다. 나는 경건한 신자의 모습으로 ‘내 탓이오’를 되뇌지도 않았고, “나비의 날갯짓과 다름없는 사소한 나의 잘못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나는 다만, 내 몸의 더딘 피의 흐름과 더딘 교통체증의 답답함을 엉겁결에 연결했을 것이다. “내 온몸을 점령한 적체된 찌꺼기가/이제는 쓸데없이 거리로 나가/저렇게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나 보다”라는 구절이 어쩌다가 흘러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마치 남의 글에 대한 논평을 읽는 기분으로 내 시에 대한 평론가의 글을 읽었다. 내가 만일 평론가가 지적한 바와 같은 것을 처음부터 계산에 넣었다면 독자들은 전혀 감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말한 바와 같은 것. 행간의 의미와 침묵의 여운과 생략의 진동, 고등수학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되는 어휘들의 조직, 그 중 하나의 음절만 줄여도 전체가 와해되고 마는 그 끈끈한 밀착에 놀란다. 시인은 더 이상 입이 없어도 될 것 같다. 그런데도 한 마디만 더 보태고 싶다. 이것이 오늘 생각해낸 내 대표작입니다, 수줍게 고백하는 마음으로.
짓밟히는 것이
짓밟는 것보다 아름답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피 흐르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흐르는 내 피를 허락하겠습니다
상처 속 흔들리는 가느다란 그림자
그 사람의 깃발을 사랑하겠습니다
천년 후에 그것이 꽃이 된다면
나는 하겠습니다
날마다 사는 일이 후회
날마다 사는 일이 허물
날마다 사는 일이 연습입니다
이렇게 구겨지고 벌집 쑤신 가슴으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을는지 몰라
나는 그것이 제일 걱정입니다-<그것이 걱정입니다>-
-2015년 <문예운동> 봄호 수록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