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에서 오수개를 복원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티베탄 마스티프와 닮았다.
아마도 獒(개 오)자의 사전적의미에 충실한 개인 것 같다.
하지만 열하일기와 일본 블로그가 쓴 '당견과 남만견'이라는 글에서는
獒에 대해서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열하일기에서는 "오견(獒犬)이 동쪽으로부터 왔는데 흰빛에다 비쩍 말라있었다.
우리나라로 나온 것은 더욱 작은 놈인데, 우리나라 개와 비교해보면 훨씬 크다." 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당견과 남만견'에서는 "그레이하운드와 당견의 오견처럼 비슷한 외모의 개는
그림에서의 식별이 곤란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열하일기와 당견과 남만견에서는 오견을 조선 세구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세구를 중국황제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당시에는
세구를 종류별로 구분하여 기르고 있을 정도로 세구에 관하여 선진국이었다.
오수견을 복원하려고 하려면 현대의 사전적의미에서 그 유래를 찾기보다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기록을 토대로 그 유래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세조실록 47권, 세조 14년 7월 10일 정묘 2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김보가 족척의 승직을 청하다 도승지(都承旨) 권감(權瑊)에게 명(命)하여 진헌(進獻)할 향심(香蕈)·석균(石菌)·탑사(塔士)·마열(麻裂)·마른 복어[乾鰒漁]·곤포(昆布) 각각 1궤(櫃), 마른 팔대어[乾八帶魚] 4궤, 대포(大脯)·마른 오즉어 [乾烏鰂魚]·전건복어(全乾鰒魚) 각각 2궤, 옥비담황세구(玉鼻淡黃細狗)·옥비담흑세구(玉鼻淡黑細狗) 각각 1척(隻),담황세구(淡黃細狗) 2척, 백세구(白細狗) 3척을 강옥(姜玉)과 김보(金輔)에게 주니 강옥과 김보가 일일이 자세히 살펴보고, 모두 스스로 봉하여 쌌다. |
오(獒)의 사전 적 의미
| 獒 개 오
부수犬 (개견, 4획) 획수15획
- 1 개(갯과의 포유류)
- 2 길이 잘 든 개
- 3 키가 4척(尺)인 큰 개
獒는 '사나운개 오'라는 한자로, '개', '맹견'을 뜻한다.
훈을 나타내는 犬(개 견)과 음을 나타내는 敖(거만할 오)가 합쳐진 형성자이다. 獒犬
- 마스티프(털이 짧고 덩치가 큰 개. 흔히 건물 경비견으로 쓰임) (영어: mast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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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오견 | ‘7월 13일 밤, 성언(聖彦) 박제도(朴齊道)가 주머니에서 50전을 꺼내서는 술을 사오게 했다. 조금 술이 취하면서 운종가(雲從街)로 나와 달빛을 밟으며 종각(鍾閣) 아래를 거닐었다. 이때 밤은 이미 삼경하고도 사점을 지났으되 달빛은 더욱 환하였다. 사람 그림자의 길이가 모두 열 길이나 되고 보니, 자기가 돌아보아도 흠칫해 무서워 할만 하였다. 거리 위에선 뭇개들이 어지러이 짖어대고 있었다.
오견(獒犬)이 동쪽으로부터 왔는데 흰빛에다 비쩍 말라있었다. 여럿이 둘러싸 쓰다듬자,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이고서 한참을 서있었다.
일찍이 들으니 오견(獒犬)은 몽고에서 나는데, 큰 놈은 말만한데다 사나워서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국에 들어온 것은 다만 작은 놈이어서 길들이기가 쉽고, 우리나라로 나온 것은 더욱 작은 놈인데, 우리나라 개와 비교해보면 훨씬 크다. 낯선 것을 보고도 짖지않는데, 한 번 성이 났다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위세를 피우곤 한다. 시속(時俗)에선 `호백(胡白)`이라고 부른다.
특히 작은 놈은 `발바리`라고 부르니, 운남(雲南)에서 나는 종자다. 모두 고기를 좋아하는데, 비록 아무리 배고파도 불결한 음식은 먹지 않는다. 능히 사람 뜻을 잘 알아, 목에다 붉은 띠로 편지를 매달아 주면 비록 멀어도 반드시 전한다. 혹 주인을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주인 집 물건을 물고서 돌아와 신표로 삼는다고 한다. 해마다 늘상 사신을 따라서 우리나라에 오지만, 대부분은 굶어 죽는 수가 많다. 늘상 혼자 다니며 활개치지 못한다. |
일본에서의 오견의 개념 | 에도 시대의 일본에 있던 대표적인 품종, 일본견, 무궁견(노 또는 농견,삽살개), 오견(오견,오수견). 여기에 狆(소형 애완견, 발바리정도)가 추가됩니다.(무궁견과 소형견 狆은 별도 품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관정 원년(1789년)에 출판된 『두서증보훈몽도휘』에서 이 시대에서 곤란한 것이 그려진 당개와 남만견의 구별이 안 되는 것. 남만견 그레이하운드와 당견의 오견처럼 비슷한 외모의 개는 그림에서의 식별이 곤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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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오수견 | 오수개(獒樹-)는 불이 난 것을 모르고 잠든 주인을 구했다는 개이다. 고려 시대의 문인 최자(崔滋)가 1230년에 쓴 《보한집》(補閑集)에 그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거령현(오늘날의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金蓋仁)은 충직하고 총명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날 동네 잔치를 다녀오던 김개인이 술에 취해 오늘날 상리(上里)부근의 풀밭에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불이 계속 번져오는데도 김개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위를 뒹굴어 불을 끄려 했다. 들불이 주인에게 닿지 않도록 여러 차례 이런 행동을 반복한 끝에, 개는 죽고 말았으나 김개인은 살았다고 한다. 김개인은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의 주검을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훗날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를 합하여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되었다.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수 휴개소와 전북 임실군 오수면 시장마을에 오수개 동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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