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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전 천안함 모습
천안함 침몰 사건(天安艦沈沒事件)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피격되어 침몰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 명칭은 천안함 피격 사건(天安艦被擊事件)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전문가 24여 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 하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 발표는 미국과 유럽 연합, 일본 외에 인도 등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었으며 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조사결과에 비추어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과 함께 "공격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신들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형식적으로나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반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안보리 성명을 사실상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안함의 침몰에서 인양, 조사 발표까지 대한민국 사회와 주변국의 관심을 끌었으며, 침몰 원인에 여러 주장이 제기되었고 규명과정에서 언론과 각계 인사들은 다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침몰 원인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빚었다 개요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기준으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한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는 실신해 치료를 받았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사고 원인은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피격으로 좁혀졌다.
당초 정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은 어뢰에 의한 피격설과 좌초설의 가능성을 조사했었다.
일지 2010년 3월 26일 21시 12분 : 천안함 승조원이 해안 통신병에게 부상사실 통보(러시아보고서), 국방부는 사적통화로 해명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 : 해경이 "(배에) 물이 샌다"는 통보를 받음, 이후 천안함은 경비기동의 3.5배 속도(18노트)로 이동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 :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에 최초 상황보고, 2함대사령관과 해작사 작전처장의 통화 최고보고는 침수로 인한 좌초추정,사건당일은 어뢰보고없음
2010년 3월 26일 21시 16분 : 백령도에 있는 방공33진지에서는 폭음을 감지 2010년 3월 26일 21시 16분 : 천안함 승조원이 부친과 통화를 하던 중 지금 비상이라며 전화를 끊음 2010년 3월 26일 21시 17분 : 천안함 내부 폐쇄회로카메라(CCTV) 영상중지(러시아보고서), 국방부는 날짜오류로 해명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 대한민국 해군 제 2 함대 소속 포항급 1, 200톤 급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발생 시간) 2010년 3월 26일 21시 28분 : 2함대사, 천안함 침몰 상황 접수 2010년 3월 26일 21시 30분 : 2함대사, 대청도 고속정편대(5척) 긴급출항 지시 2010년 3월 26일 21시 31분 : 2함대사, 속초함에 사건현장으로 전속력 항해 지시 2010년 3월 26일 21시 32분 : 2함대사, 인천해경(해경 501함, 1002함), 관공선 긴급지원 요청 2010년 3월 26일 21시 34분 : 2함대사, 긴급조치반 소집 2010년 3월 26일 21시 40분 : 2함대사, 위기조치반 소집, 전 작전요소 전투배치 2010년 3월 26일 21시 47분 : 2함대사, 덕적도 LYNX 헬기 백령도 전개 지시 2010년 3월 26일 21시 56분 : 고속정편대(3척) 현장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1시 57분 : 2함대사, 대잠경계태세 발령 2010년 3월 26일 21시 59분 : 2함대사, 공군 탐색 및 구조전력 지원 요청 2010년 3월 26일 22시 07분 : 2함대사, 인천해경에 501함, 1002함 RIB 지원 요청 2010년 3월 26일 22시 10분 : 고속정편대(2척) 현장 추가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2시 28분 : 고속정편대(참수리 322호) 1명 구조(천안함 작전관 대위)
2010년 3월 26일 22시 41분 : 해경 501함, RIB 2척 현장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2시 50분 : 관공선(214, 227)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3시 13분 : 생존자 58명 이함 및 구조 완료 2010년 3월 26일 23시 13분 ~ 2010년 3월 27일 04시 35분 : 천안함 침몰 해역 야간 수색, 환자 후송 2010년 3월 26일 23시 30분 : 해양경찰청은 본청과 인천지청에 갑호비상령, 태안 · 속초지서,동해지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2010년 3월 26일 23시 50분 : 경찰청은 서울 · 인천 · 경기 · 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2010년 3월 27일 : 정운찬 국무총리는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 행정기관에 당직근무를 강화하고 모든 공직자가 유선 상으로 대기하도록 비상대비 체계를 발령했다.
2010년 3월 29일 : 함미에 공기 주입 시작. 2010년 3월 30일 : 용트림 바위 앞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 2010년 3월 31일 : 기상 악화로, 구조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구조팀은 선내진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4월 2일 22시 30분 : 수색작업을 나서던 저인망어선 금양 98호가 조난신호를 보내고 실종됐다.
2010년 4월 3일 18시 10분 : 남기훈 원사의 시신 식당 안에서 발견. 2010년 4월 7일 16시경 :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 발견. 2010년 4월 8일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의 만남.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할 민간, 군인 합동 조사단 구성 2010년 4월 12일 끌어올린 함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냄 2010년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인양되었다.
2010년 4월 15일 오전 11시 이후 방일민 하사, 서대호 하사, 이상준 하사 등을 포함한 36구의 시신 수습 2010년 4월 22일 오후 9시 20분 박보람 하사, 연돌(굴뚝) 안에서 발견. 2010년 4월 24일 천안함의 함수가 침몰 29일 만에 인양되었다.
2010년 4월 24일 오전 10시 54분 박성균 하사,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침몰로 사망한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됨. 2010년 5월 19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한자'가 표기된 사실을 근거로 이 어뢰가 중국제 '漁-3G' 음향어뢰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발표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한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 사건 관련 담화문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 도발시 엄중 대처하고 남북간의 교역 단절 2010년 6월 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러시아 전문가팀이 방한하여 조사에 착수했다
2010년 7월 8일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결과가 일부언론에 보도되었으나 러시아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침몰후 인양되는 모습
2010년 7월 9일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이 발표되었다. 2010년 9월 13일 국방부의 천안함 최종 보고서 발간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구조함 평택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건 지점에 배치했다.
사건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선체의 구멍을 조사했다.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수색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
해군 SSU, UDT 대원들과 육군 특전사의 잠수요원들이 수색,구조작업에 투입되었다.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 31일 함수쪽을 수색한 잠수사는, 격실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증언했다.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이 배는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해 탑승 선원 전원이 숨졌다.
4월 3일 천안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
4월 3일 실종자 가족 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
기타 수색작업 30일,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 부표에서 목적이 알려지지 않은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
사망자 및 실종자, 생존자 명단 사망자와 실종자는 모두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아래 목록은 모두 특진 후의 계급이다.
사망자 명단 원사 : 김태석(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 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상사 : 박석원(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고), 김종헌(후타실), 민평기(승조원 화장실), 강준(기관부 침실), 최정환(승조원 화장실), 정종율(기관부 침실), 안경환(기관부 침실), 박경수(승조원 화장실) 중사(진) : 임재엽(72포 하부 탄약고) 중사 : 방일민(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승조원 식당-기 관부 침실 통로), 이상준(승조원 식당), 차균석(유도 행정실), 서승원(디젤 기관실), 조진영(기관부 침실), 손수민(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제독소), 심영빈(승조원 화장실), 조정규(기관 창고), 김동진(후타실), 박보람(배 밖 연돌), 박성균(자이로실) 하사 : 이상민(1988년생, 승조원 식당), 강현구(기관부 침실), 이용상(후타실), 이상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 기관부 침실), 이재민(기관부 침실) 병장 : 안동엽(기관부 침실), 박정훈(기관부 침실), 김선명(기관부 침실), 김선호(후타실), 정범구(전기 창고) 상병 : 조지훈(승조원 화장실), 나현민(기관부 침실) 일병 : 장철희(기관부 침실) 최초 실종자 명단 준위 : 이창기 원사 : 최한권, 남기훈, 김태석, 문규석 상사 : 박경수(연평해전 생존자), 강준, 김경수, 박석원, 안경환, 신선준, 김종헌, 최정환, 민평기, 정종율 중사 : 임재엽, 문영욱, 이상준, 손수민, 심영빈, 장진선, 조정규, 서승원, 방일민, 박성균, 조진영, 서대호, 차균석, 김동진, 박보람 하사 : 이상희, 이용상, 이재민, 강현구, 이상민(1988년생), 이상민(1989년생) 병장 : 정범구, 김선명, 박정훈, 안동엽, 김선호 상병 : 강태민, 조지훈, 나현민 일병 : 정태준, 장철희 생존자 명단 중령 : 최원일 소령 : 김덕원 대위 : 이채권, 박연수 중위 : 김광보, 정다운, 박세준 상사 : 김병남, 김덕수, 오성탁, 김수길, 허순행, 김정운, 강봉철, 오동환, 정종욱 중사 : 이광희, 김현래, 조영연, 손윤식, 송민수, 김현용, 김광규, 하사 : 홍승현, 육현진, 공창표, 이연규, 허향기, 진경섭, 배성모, 전승석, 함은혁, 박현민, 강은강, 정재환, 김효형, 김기택, 서보성, 정주현, 유지욱, 정용호, 라정수, 신은총, 김정원 병장 : 전준영, 최광수, 김용현, 강태양, 최성진 상병 : 안재근, 김윤일, 정현구 일병 : 김수철, 오예석, 황보상준 이병 : 이태훈, 전환수, 이은수 금양98호 침몰 사건 이 부분의 본문은 98금양호 침몰 사고입니다.
저인망어선 금양98호는 4월 2일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 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침몰 원인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캄보디아 선적 화물선 '타이요호(1천472t급)'와의 충돌 때문이다.
충돌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타이요호는 사고 당시 조타실을 비워둔 채 운항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실종자수색작업에 참여했던 금양호 98호선원들에 대해 '의사자'지위를 부여할 수 없고, 의사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 의사상자법이 개정되고 2012년 2월 5일 시행됨에 따라 2012년 3월 29일 열린 보건복지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에서 사망 및 실종된 금양호 선원 9명 전원을 의사자로 인정하였다.
실종자(사망자) 가족협의회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2010년 3월 30일에 전체회의를 통해 46명의 천안함 실종 장병 가족당 1명씩의 대표를 뽑아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약칭 천실협)를 구성하였으며, 이 가운데 15 ~ 20명으로 실무단을 구성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발족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전원의 구조를 위해 마지막 1인까지 최선을 다할 것 △현재까지 진행된 해군과 해경의 초동대처 과정과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 △가족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할 것 등을 해군에 요구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고 최정환 중사의 매형 이정국 씨가 맡아 활동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장교는 7명(중령1, 소령1, 대위2, 중위3) 전원 구조된 것에 대해 지휘책임 회피 문제를 제기했다.
함장 최원일 중령은 “선체의 구조상 장교들이 머무는 작전상황실이 선두에 위치했고 선미만 가라앉은 사고였기 때문에 장교들은 모두 무사한 것이며 자신도 초계함이 침몰할 당시 약 5분 동안 함장실에 갇혀 있어서 부하들이 함장실 문을 부수고 나서야 함장실 밖으로 나왔는데 이때는 이미 선미부분이 침몰하고 난 이후였다”고 진술했다.
최원일 중령이 작전상황도를 검토하고 있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여 최원일 함장이 함장실에 갇혀 있게 된 것을 부함장 김덕원 소령이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문을 부수고 최원일 중령을 구조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당시 초계함의 모든 전력이 차단되어 정전상태였기 때문에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사고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다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2010년 4월 21일에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족 전체회의를 통해 직계 가족으로 이뤄진 새 가족대표단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약칭 천전협)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새로 조직된 천전협은 천안함 희생·실종자 가족당 직계가족 1명씩이 대표로 참여해 모두 46명으로 구성됐으며, 실무단을 따로 뽑지는 않았다.
천전협과 함께 5인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가 구성되어서 군과 장례절차를 협의하였다.
침몰 원인 대한민국 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조사단 운영 2010년 3월 31일 ~ 2010년 5월 20일), 인양한 함수, 함미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안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최종 발표하였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한국측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과학수사·폭발유형분석·선체구조관리·정보분석의 4개 분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근거 선체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고 분석해 보았을 때,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破斷)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인 것도 수중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가스터빈실 선체에 나타난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생존자와 백령도 해안 초병의 진술내용을 분석한 결과,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불빛을 관측했다는 진술 등은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부상자 상태와 시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어 충격파 및 버블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 폭발원은 동일하였으며,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1차 미국 측의 선체 변형 형상 분석 결과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총 폭약량 TNT 200~300 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2차 한국 정부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동일 지점에서 총 폭약량 TNT 250~360 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영국 정부 대표도 함께 참여하였다.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강한 조류로 인해 기뢰부설은 제한되는 반면, 어뢰 발사에는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폭약성분 분석 결과 HMX는 연돌·함수절단면 등 28개소에서, RDX는 연돌·해저 토양 등 6개소에서, TNT는 함안정기 등 2개소에서 각각 검출됨으로써 HMX, RDX, TNT가 혼합된 폭약성분임을 확인하였다.
증거물 침몰해역에서 프로펠러, 추진모터, 조종장치 등이 수거되었고, 이는 어뢰의 추진동력부로서 결정적인 증거물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 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 이라는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에 “4호”라고 표기된 표기방법과 일치한다.
당시 일부 인사들과 인터넷 등에서 북한에서는 1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나, 최근 장성택의 처형사건에서 1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번이란 글씨는 제조과정에서 기술자들이 써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완성품은 알루미늄 외피로 싸여 있어 이를 사용하는 북한군은 내부에 글씨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6월 29일, 1번이라는 글자는 청색 유성 매직이며, 솔벤트 블루5 색소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 프로펠러와 침몰한 천안함의 금속 부분의 부식 정도가 거의 비슷한 상태인 점도 어뢰 추진체가 함수와 비슷한 기간 동안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서해에서 끌어올렸다는 어뢰 부품에서 동해안 멍게 유생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오마이뉴스를 통하여 제기되었으나, 조사 결과 해당 물체는 멍게 유생은 물론 생물체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으며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해 사과하였다.
2010년 6월 29일 합동조사단은 증거물로 제시한 CHT-02D 어뢰의 설계도는 CHT-02D의 설계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이와 다른 별개의 북한 중어뢰인 PT-97W 어뢰의 설계도였다고 밝혔다.
5월 20일 공식 발표 때 총 3종의 CHT-02D 도면이 발표되었으며, 그 중 실물 크기의 수미터 도면이 잘못 발표되어 추후 실물 크기의 CHT-02D 도면을 다시 발표하였다.
어뢰 표면에 붙은 흡착물을 조사해 본 결과 폭발이었으면 알루미늄 산화물이었어야 하는데 물 속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녹이 슬었을 때 만들어지는 수산화물이었다.
6월 22일 국방부는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와 동일 기종으로 지목한 북한제 어뢰를 홍보하는 카탈로그에 북한의 국가명이 표기됐다"며, “북한제 어뢰를 홍보하는 카탈로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증한다’는 문구가 명기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로 미뤄볼 때 카탈로그가 북한 정부가 제작한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다국적 연합정보분석TF의 확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황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전에 황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되었다.
주변국의 잠수정들은 자국의 모기지 주변에서 활동 5월 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각 5개의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장치)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고 잉크로 쓰여진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4호)과 일치한다.
러시아산 어뢰나 중화인민공화국산 어뢰는 각기 그들 나라의 언어로 표기한다.
북한산 CHT-02D 어뢰는 음향항적 및 음향 수동추적방식을 사용하며 직경이 21인치이고 무게가 1.7톤으로 폭발장약이 250Kg에 달하는 중어뢰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형잠수정 및 음향/항적추적 어뢰 수출사실 및 시험발사 확인 결론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분석, 폭약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대한민국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했다.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정도이다.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사고와 관련된 많은 군인들이 승진했다.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 2010년 6월 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러시아 조사팀이 방한하였다.
이들은 천안함 침몰 증거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해군 기지를 방문해 선박 잔해와, 어뢰 잔편 등을 조사하였다.
이들은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뢰 잔편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이유, 1번 글씨가 남아있는 이유 등을 질문했다.
그들은 당시 서해안에 미군 핵잠수함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찰함인 천안함을 목표로 삼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조사단은 수중폭발이라는 조사결과에는 동의했지만 어뢰에 의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2010년 7월 8일 한겨레 신문은 러시아 소식통을 인용해 조사팀은 '북한의 어뢰 타격에 의한 침몰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보도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행의 결정적 증거로 한국 정부가 제시한 '1번 어뢰'를 천안함 침몰의 '범인'으로 볼 수 없으며 '1번 어뢰'의 페인트와 부식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어뢰가 물속에 있던 기간 및 출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또 스크류의 휘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에 손상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들은 사고시각 이전에 조난신호를 보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되었다.
또한 러시아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만 조사 결과를 통보하지 않아 대한민국 외교부가 러시아측에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는 방한했던 자국 전문가팀이 수집한 정보와 자료 등을 토대로 조사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우리가 추가로 제공한 최종보고서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8일 브리핑에서 '아직 한국에 통보한 게 없고 추가 검토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복수의 언론들이 이를 인용하여 보도하였는데, 국방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 조사단이 천안함 사태가 북한 소행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010년 7월 27일 한겨레, MBC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조사단의 요약보고서를 공개하며 러시아 측이 이를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만 통보하고 이를 한국정부에는 알리지 않았고 한국은 우방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요약본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방부측은 “러시아는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상당부분 신뢰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의장성명에 동의한 것”이라며 “일부 언론의 보도는 러시아의 이런 입장과 상당 부분 차이가 있어 신뢰하기 어렵고 검토결과 자료라는 것도 정체불명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도 한겨레의 보도와 관련해, 러시아 대사관측은 본국으로부터 조사결과를 받은 것이 없고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천안함 보고서를 한국 정부에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공개한 요약본 전문에는 "천안함의 사고원인이 접촉에 의하지 않은 외부의 수중 폭발이라는 주장이 확인되었다."는 부분이 명시되었고, 다른 결론은 내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러시아 대사관에 요약보고서에 대해 문의하자 '우리도 왜 이런 게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고 반응했고, 이러한 보고서는 출처불명으로 유엔 주변에서 떠돌던 3장짜리 미확인 문건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조사단은 3명이 일주일간 그야말로 '둘러본' 수준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논란이 일던 가운데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를 한국 정부가 막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정부는 러시아 조사단이 보고 싶어하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러시아 조사단이 제기한 의문에도 답변을 거부해 잠정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상세히 밝혀 모든 의문을 풀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러시아의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대응했다고 비판했다.
2010년 9월 15일, 한-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측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으나, 한-러 간의 협력을 확인했다.
또한 정상회담 전후로 러시아 국영TV에서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격침되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대한민국 당국자 인용으로 보도하였다.
이후 2010년 9월 21일 러시아 외무차관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는 당초 국가 지도부를 위해 내부용으로 작성된 비밀문서로 러시아 정부는 이를 한국이나 북한 어느 쪽에도 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11월 10일,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 베데프 대통령은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러시아 전문가들의 결과 보고서는 UN안보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러시아 내부적 분석의 목적을 위한 것이 었므로, 공식적으로 그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았으며, 또한 발표될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세간에 회자되는 천안함 보고서에 대해 인정하지 않음을 재차 확인했다.
이어 그는 "지난 7월 9일 채택된 UN 안보리 의장 성명은 균형 잡히고 객관적이라고 우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야로슬라블에서 개최된 한-러 정상회담시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UN에서 천안함 관련 논의에 있어서 러시아의 협력에 대해 사의를 표한 바 있습니다."라고 언급하며 UN 안전보장이사회 성명서와 지난 한-러 정상회담에서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고위급 탈북자 증언 '북한의 군사문제와 군수산업에 정통한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이 사건이 10년 동안 북한이 철저하게 준비해온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대한민국 해군에 참패해 피해가 크자, 사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군부는 이를 만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4군단과 작전부, 함대 사령부에 패배에 대해 보복을 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그 결과가 천안함 폭침이라는 것이다.
함정이 진행하면서 내는 소음은 주파수가 낮을수록 멀리가는데, 선체 프로펠러에서 나는 소음은 10km 이내에서 이뤄져야 감지되지만, 선체 자체의 소음은 저주파로 10km이상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 선체 소음은 각 함정마다 제각각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북한은 남측 함정이 내는 고유한 선체 소음을 어뢰 CPU(중앙처리장치)에 저장해 10km 이상 떨어진 원거리에서도 감지해 추적·격발되도록 해놓았고, 이는 천안함이라는 특정 함정을 깨기 위해 목표를 정해놓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의미이다."라고 주장했다.
잠수함 충돌설 경성대 김황수 교수와 케임브리지대 코레스타 교수는 천안함 침몰 당시 백령도에서 관측된 지진파 주파수를 분석한 결과 천안함이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구진은 당시 지진파가 저주파인 8.5㎐ 기본 진동수의 주파수에서 강한 피크 진폭을 보이는 데 주목했다.
이 지진파는 8.5㎐의 정수배(2·3·4배) 주파수에서도 차례로 강한 피크 값을 보이는 '조화 주파수' 형태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수중 폭발에 의한 지진파에서는 이러한 조화 주파수를 가진 지진파가 나타나지 않으며, 잠수함을 기하학적 형태의 금속 물체(튜브형)라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한 결과, 튜브형 금속 조형물 축 진동의 고유 진동수 스펙트럼과 지진파 관측 결과가 ‘만족스럽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잠수함의 충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군의 부적절한 대응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북한 잠수정과 해안포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됐는데도, 우리 군이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있다.
민주당 신학용의원은 천안함 사건 당일 아침 해군 2함대가 전파한 군 문자정보망 교신 내역을 공개하며 2~3일 전부터 북한 연어급 잠수정 한척과 이를 지원하는 배 6척이 기지에서 출동한 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천안함 침몰 직전 시점에는 북한 해안포 10문이 모습을 드러냈는데도 이렇게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태세 및 경계태세는 발령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국방부장관은 "오늘날 지나고 나서 다 이 사건이 북한의 잠수함 어뢰공격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고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쉽지 않았다"며, 그것을 침투나 도발 징후로 인정하지를 않았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많은 우리 장병이 이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 김태영 국방장관은 오늘까지도 국방장관을 엔조이하고 있다"며 국방부장관을 해임하고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그로 인해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는 표현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폭침에 의한 것임을 시인한 것” 이라며 "민주당은 지금부터라도 북한에 천안함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책임 있는 공당이 될 수 있다" 고 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우리는 한국의 공식 입장과 발표를 신뢰한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면서도 “ 여러 의혹이 정부에 의해 분명히 밝혀지지 않는 것도 사실인 만큼 문제 제기는 야당의 당연한 임무”라고 말했다.
정보 은폐 어뢰 피격 보고 묵살 : 사건 당시 침몰하는 천안함은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고 2함대사령부에 보고했다.
해군 작전사령부는 ‘폭발음 청취’ 등 외부 공격 가능성을 합참에 보고했다.
그러나 2함대사령부는 ‘어뢰 피격’ 내용을 합참 등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김태영 장관에게도 ‘폭발음 청취’ 내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건 발생 9일 뒤에야 어뢰 피격을 인지하게 되었다.
교신 일지 :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천안함에 승선해 있던 한 장병이 가족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다 오후 9시16분쯤 갑자기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통화가 어렵다.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방부 자료에는 천안함과 제2함대 사령부 간의 교신 기록 중에 사고 직전인 9시 15분부터 22분까지 7분 분량의 내용만이 사라져 있다.
TOD 영상 은폐 : 군 당국은 그동안 사고 발생 장면을 찍은 화면(TOD 영상)은 없다고 밝혀왔으나, 이 동영상이 존재하며, 민군 합동조사단이 봤다는 증언이 보도되었다.
또한 천안함에 근무하다 전역한 장병들은 "TOD영상은 항상 녹화하고 있는게 원칙"이라고 증언하였으며, 40분짜리 영상을 1분 20초로 편집하여 공개했다가 나머지 영상을 다시 공개하여 은폐 혐의가 불거진 점, 그 이후에 또 "40분 영상 이외의 영상은 없다"고 했으나 다른 영상이 더 있던걸로 또 드러났던 점, 침몰 전후의 장면이 모두 있지만 사고시각인 9시 22분의 영상만 없다는 점들 때문에 TOD 영상 은폐 가능성이 꾸준히 일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합동참모본부 산하 정보분석처에 소속된 A대령과, 정보작전처에서 B대령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동영상을 봤다"고 주장했으며,김태영 국방부장관은 TOD 동영상을 편집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는 처음에 "TOD 동영상은 버튼을 눌러야 녹화 된다"라고 말했다가 "스위치를 눌렀는데 안 찍혔다"라고 말했다가 "자동 녹화된 TOD 동영상이 있다"라고 수차례 번복했다.
생존 장병들의 외부인 접촉 차단 : 생존 장병들은 전원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일시적으로 불허하기도 했으며, 또한 지방선거 기간중 경남 진해의 교육사령부에서 2주간 격리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 사실을 감추고 "생존자들이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 절단면 비공개 국방부는 유언비어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선체 인양시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그물로 은폐하고, 언론의 300야드 이내 접근을 차단한 채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5월 20일 절단면을 공개했고 31일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며 사진 촬영도 허가했다.
보안 서약서 요구 인양 작업에 참여한 민간업체 관계자들에게 보안서약서를 요구했다.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한 백령도 주민들에 대해 기무사와 경찰이 추궁했다. 보고서 미공개 : 국방부는 사고 경위를 조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비공개로 하였다.
국방부는 250여쪽의 보고서를 500여부 발간하여 배포할 계획으로 사실상 공개할 방침을 정했으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보고서의 내용을 재편집해 백서를 발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의 9·11테러 보고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며 "군사적으로 예민한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언론이나 일반에게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스터빈실 인양 : 국방부는 가스터빈실이 침몰 해역에 그대로 있었는데도 이를 찾지 못하고 뒤늦게 인양하였다.
해난 구조 및 인양 전문가인 이종훈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가스터빈실은 함수, 함미가 부러진 자리에서 초기서부터 거기에 있었다. 군도 거기에 있었음을 처음부터 알고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왜 이제서야 인양됐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침몰 지역 해저에서 발견된 선박 : 국방부는 천안함이 침몰한 사고 해역에서 해저에 침몰해있는 선박이 존재함을 알고있었음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와 침몰 선박은 관계가 없고 원인 규명에도 도움이 안 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으나, 그동안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 규명을 해오던 중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정보 은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조사단의 구성원 문제 : 2010년 5월 3일 민간조사단으로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신상철은 "침몰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지휘통제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조사를 전담하고 나서는 것은 문제가 많다",
"국방부 발표를 보면 북한 소행으로 단정지어 놓은 상태에서 보복이니 응징이니 하면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이런 조사를 믿을 수가 있나.", "비밀유지 각서를 썼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뢰나 기뢰에 의한 공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며 정부의 은폐, 조작에 대해 우려했다.
조사단의 구성원 문제나 은폐 가능성을 제기했던 신상철(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외부 모 인사에게서 ‘신 씨가 가장 적합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신상철을 추천한 경위를 밝혔다.
신상철은 조사단 회의에 1회에 한해 2시간밖에 안 있는 등 조사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군사기밀 공개를 요청하고 진보성향 언론들을 통해 "미군 함선과 충돌했다" 혹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주호 준위 분향소를 방문한 것이 미군이 연루된 증거다"
등의 주장을 내세웠다. 이에 국방부는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에 적절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공식결론에 반하는 내용을 조사위원 자격을 내세워 주장하는 등 대외적으로 불신 여론을 조장하여 공신력을 실추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민주당에 교체를 요청했고, 신상철을 추천한 것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론도 제기되었다.
민주당은 조사단 활동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교체는 어렵지만 문제가 되는 활동에 대해서 앞으로 공명정대 하게 할 수 있도록 감독 하겠다고 밝혔다.
선체 안에 있던 탄약: 천안함에 탑재돼있던 무기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언론이 취재를 요청하자 국방부가 이를 공개하겠다고 해놓고도 이후 이를 의도적으로 폭발 처리한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법원의 판단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한 지 약 6년 만에 이 사건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폭발로 비롯됐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이흥권 부장판사)는 25일 "천안함은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했고, 여기에 사용된 무기는 북한에서 제조된 CHT-02D 어뢰, 또는 그와 같은 계열의 어뢰"라는 결론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