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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
84년의 세월속에
우리들의 생활방식이 믾이 변하며 발전 하고 있거늘!
부모님께서
1942년도에 날 낳으시고 (아버님 23 년전 어머님 14 년전 돌아 가시고)
부인은6년전에 뇌경색으로 하늘 나라로 가버린후
아들셋 며느리셋에 손자만 각각 1 명씩
큰아들 손자 현욱 대학을 졸업을하고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이고 둘쩨 아들 손자 형민은대학교 재학중이며
셋쩨 아들 경호는 올해 수능 시험을 쳤다네요
많은 농토에 열심히 농사즐 짓다가 농촌 인력이 부족해서
경영도 모르르면서 자동차 부품 공장을 차려 운영을 하다가 25여년전에 부도를 맞어
가산이 모두 허무러졌어 죽을 생각을 하다가
지금은 마음을 다 비우고 노인 복지회관에 가서 체력을 단련 하면서
핵가족 시대라 혼자 외로히 살아가고 있답니다
부모님이 계셨길래
아들 손자 증손자 건강하게 잘자라도 있답니다.
제가 어릴때회충배 앓이를 하면서
초등학교 3 학년때 6.25 사변이 일어나
미숫가루 보따리를 장방안에 넣어두고
대포소리가 가까워지면 피란길에 나설 마음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구멍난 양말에
솜 핫바지를 입고 호롱불 밑에 책을 보면서 공부를 했답니다.
풀 피리 꺾어 불면서 소풀을 뜯으며 밀사리, 콩사리로 맛을 보며 허기를 채우며
성장했던 시절!
냇가에서 벌거벗고 목욕을 하면서 자치기.구슬치기. 총껍대기 치기로 오락을 즐기며 ~
가을이면 나락 빗갈이를 다듬으시는 아버님 뒤를
캄캄한 밤중 호롱불을 들고 지루한 지정을 맞으며
잘땐 빈대,벼룩, 살을 물어 뜯어 밤잠 설치며
옷속에서는 이가 스물대던 그시절!
도리깨로 타작을 하고 훌찌로 논,밭을 갈던 그시절엔
놋그릇, 놋 대저접의 고봉밥도 금방 배가 고팠답니다.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손 펌브로 방제를 하면서 그후 발동기로 그다음 경운기로~~
엊그저께 같은데제 나이 벌써 84 세 랍니다.
아버님 형제 7 남매
아들 형제 6 남매 동생들과자식들을 키우시며 무척이나 고생하신 부모님!
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편안히 잘 꼐시는지요!
방학이 끝나고 완행열차 10 시간이나 키타를 퉁기며
서울로 공부하러 가던때거 엊그저께 같은데
사천만의 바닷 바람결에 육군 항공학교 학생대대 서무계(부관학교 졸업 709)
틈새 "보그르르" 생활 글을 편집 발행을 하면서
군민 위안의 밤을 연출 하였던 때도 있었답니다.
제대후 지금 유명한 임권택 밑에 조감독을 하다가
천춘고고 씨나리오를 쓰서 감독데뷰 하였으나 그당시 아주 어려웠던 영화계라
도중하차 하고 말았답니다. 1973년 과수원 200 여평 날려먹고
빈 털털이로 하향 하여 부인 금반지 등 퍠물을 팔아 돼지 2두로 부터
그후 돼지 200 여두 소 100 여두 을 키우면서 2000 여평의 과수원으로
열심히 과학 영농을 실천 하며 경북 농촌 진흥원 으로 부터 생산 농장으로 지정받아 경북 청소년
근 10 년이나 년 10 명씩 숙식을 제공 하면서 함께 연구 토론을 하였던 때가
(새마을 포장 수상) 상금으로 면민 가가호호 양발을 싸서 나ㄴ어 가졌답니다.
그후 농협 중앙회로 부터 새농민 종합상을 받아(석탑산업훈장)
부상을 88 올림픽 유치를 가념 하여 실크 보자기에 참가국 국기를 넣어
경산 농협 군지부 시청직원 전부, 면민 가가호호 나누어 주었답니다.
모교 장학회와 이순신 장군상 아동독서상. 을 추진 건립 하였건 때사
전두환 대통령 선거 인단으로 당선되어
조국 평화통일을 홍보 하였던 위원으로
전두환 노태후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영으로 부터 위촉장, 임명장 공로장 받기도 했으며
김영상 대통령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답니다.
지역주민으로 부터 지지를 받아 시의원 3 선으로(의장 엮임)
뀌어 다녔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자고 했는데 우리지역도 많이 발전을 가져 왔다고
자부 하고 싶은 마음속에 주민 화합을 위해 장학회,번영회. 청년회 총 동창회. 목요회. 문화보존회
오찬회 등
지역 심부름 꾼으로 열심히 노인 복지. 생활수, 농로포장 회관 건립등도 열심히 추진 하였답니다.
나의 인생이 나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나 또한 나의 인생을 만들었는지도
농촌 인력이 부족해 과수원을 1500 여평을 잘라서 팔아서 자동차 부품 고무 공장을 차려
경영을 하다가 부도를 맞어 가산이 파산 되어 죽을 까 도 생각을 했다
6 년전에 부인을잃고 핵가족 시대라 혼자 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석양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제조업이 농사보담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머리 싸메고 열심히 귀고 있는 자식들을 보니 우리들의 삶이 쉽지만은 아닌것을
마음 다 비우고 작년 부터 백천 노인 종합 보지관에 가서 체력은 단련 하며
참되게 생활 하면서
인간 답게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즐거운 인생을 만들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