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의 ‘그러나’
- 『미당 서정주 전집』-
2018. 10. 백란주
은행나무 출판사가 최근 『미당 서정주 전집』 전 20권을 완간했다. 스무 권이나 되는 그 분량에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미당은 2000년 말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거의 거르는 날이 없이 글을 썼다. 양이 방대하고 좋은 글도 그만큼 많다.
전집은 시가 다섯 권이고, 자서전이 두 권이고, 이런저런 산문이 네 권이며, 시론도 있고 희곡도 있고 번역도 있다. 물론 쓰지 않았어야 할 글도 있다. 미당은 어떤 방식으로 서두를 끌어내어 이야기를 엮어도 중간에 ‘그러나’를 넣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시인이다.
미당은 명백하게 친일시를 썼고 광복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시대적 과오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 ‘그러나’ 이후의 말은 복잡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명백한 것은 한국어를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 그의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당은 한국어가 말살될 위기에 처했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한국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깊이를 만들었다.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가 한국 근대시의 기초를 닦았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그 영향이 우리의 거의 모든 시에 여전히 그리고 깊이 남아 있다는 점도 우리가 위선적이 아니려면 반드시 말해두어야 한다.
미당의 문학적 공로와 정치적 행적을 구분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 구분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중이 크건 작건 그의 정치는 그의 문학적 영광을 등에 입은 것이어서 그에게서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문학을 자신의 정치에 이용한 사람은, 아니 최소한 그렇게 이용당하도록 협조한 사람은 바로 미당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미당을 옹호하기 위해서도, 비판하기 위해서도 그의 전모를 알고 그를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당의 정치적 과오는 하나같이 우리의 역사적 비극과 연결돼 있다. 그 접점에서 미당은 옹호되고, 비판돼야 한다. 미당의 과오를 그의 문학과 연결시켜 비판하고, 그 결과를 역사적으로 정리하자는 것은 그의 업적을 폄하하자거나, 그의 명예에 먹칠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고뇌의, 혹은 그 비겁함의 짐을 역사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 문학이 그렇듯이 미당은 안타깝게도 흠집 많고 일그러진 진주지만 또한 안타깝게 여전히 빛나는 진주다.(2017.8.28.)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중에서 -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푸르른 날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옆에서 -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
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
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
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어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 -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을 듣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찻물을 올렸다. 그리고 내게 전해진, 전해질 가을 소식들을 그려본다.
미당은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여름을 만나고 돌아서오며 가을을 향해 한 발 성큼 들여 놓는다. ‘푸르른 날’로 그리움의 명치를 툭툭 건드린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을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가을날 그리워하지 못할 날이 없을 듯 몰아친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간밤의 무서리를 핑계로 극점을 향한다. 깊은 가을 무서리를 부른 후, 애비는 종이었음을 밝힌다. 가을추수 모두 끝낸 종은 깊어질 겨울 앞에서 무얼 느낄까. 그럼에도 나를 키운 것, 팔할이 바람이었다 말하는 시인은 가을이다. 내게 있어 미당은 가을이다.
가을이 시작되면 그의 시어를 만나기 위해 질마재 고갯길을 넘어가고 싶어 한다. 미당의 시는 가을 들판을 따라 피어나는 느낌이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섭섭할 때, 그래서 섭섭했고 그러므로 섭섭했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가 쉽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좀 섭섭한 듯만 할 수 있는 내공이 내게 허락된다면 세상을 사는 것이 훨씬 수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만나러 가는 바람의 설렘보다 만나고 가는 그리움이 더 짙은 계절의 부름이 가을인 듯하다. 그런데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란다.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가슴 밑자락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리움이다.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가슴은 왠지 그리움에 대한 먹을 갈아야 할 것 같다.
나는 가을 시작을 건초냄새에서 찾는다. 여름날 한껏 자신들의 생명력을 입증하듯 추켜올린 풀들을 제초기로 싹둑 잘라버린다. 그 잔해의 흔적을 발견하며 커피향보다 짙은 가을 부름의 건초냄새를 맡는다. 논두렁 풀도, 산소에 피어난 풀도 백전백패로 패잔병이 되어 드러눕는다. 산화되듯 풍장으로 그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콩레이 태풍이 지나갔다. 문득 태풍이 포말로 대신 할 곳을 찾았다. 거제 여차바다, 역시 ‘집채만한 파도’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밀려왔다. 가장자리에 와서도 화가 쉬이 누그러지지 않은 듯 바위를 치며 부숴짐을 스스로 자초하는 모습은 콩레이가 아닌 한 두 철 전 만나 고 간 바람을 그리워하는 몸부림 같았다.
여차 마을 위로 홍포마을 가는 길이 있다. 거제 해안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감탄사를 인정하게 되는 곳이다. 숲에서도 곳곳에 태풍의 손길이 닿았음을 고자질했다. 솔잎들은 길 위에 이불을 깔아놓은 듯 수북하게 떨어졌다. 태풍이 자연을 벌초한 느낌이다. 가을날에 대한 심란함을 태풍이 먼저 가지치기 하듯이 자연도 그리움을 느끼는 것으로 다가왔다.
태풍의 역기능에 대해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태풍을 순기능으로 다가가는 삶도 있다. 아버지 집 대문이 망가졌다. 발 빠르게 대문, 샷시 등을 수리하는 아저씨는 방송을 시작했다. 순접의 상황만 연속된다면 삶에 대한 탄력이 없을 것 같다. 뜻하지 않게 만나는 이 역접의 상황이 있기에 우리는 상대가 되어보기도 한다.
황현산의 미당의 ‘그러나’를 읽으며, 자신의 친일 정치적 상황은 오로지 시를 쓰기 위함이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내 나이도 마흔이 넘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라는 잣대로 나는 그의 시어를 깊게 맛보고 싶지 않았던 나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시를 읽고 또 읽다보니 ‘그의 시는 정부(政府)’라고 말했던 고은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는 때로는 내게도 시 정부(頂部)가 되었다.
〈푸르른 날〉에서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주로 푸르른 날은 암송하던 시라 문장부호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느낌표와 물음표가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나의 무지를 인정해야 했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이타적인 삶에서 올 수 있는 내어줌의 상징일 수 있는 느낌표의 삶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이기적인 기류의 흐름으로 나의 의도와 상관없더라도 타인으로 나의 삶이 연장되었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물음표속의 길 잃은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느낌표와 물음표 사이의 행간에 생략된 ‘그러나’를 읽게 되었다. 손바닥과 손등처럼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한 나의 선택이 늘 최선일 수는 없다. 그래서 핑계도 불러보고, 변명도 하게 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러나’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리게 한다. 그렇게 길을 찾게 되는 ‘그러나’를 만났을 때 나는 나의 속내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역접은 약자들이 꿈꿀 수 있는 희망의 시소다. 강자의 ‘그러나 ’는 추락이다. 때로는 혁명의 선봉장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그러나’의 책임 또한 나에게 있다.
서정주, 아직도 우리들 가슴에 평행선으로 그는 ‘그러나’의 정반합으로 질마재 고갯길에서 기웃거린다. 무서리 내리기전 나는 고갯길의 부름으로 질마재를 넘어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