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지난해 12월 초, 화랑문인회 사무총장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매년 1회 발간하는 동인회지에 실릴 수필을 작성한 나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터라 뭘 써서 보낼까 생각하였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어 고민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진도 멋지게 찍고 학력과 경력 등 나를 자랑할만한 소개서에 양념도 발라 잘 준비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바로 편집에 들어가야 하니 이른 시일 안에 보내달라는 부탁에 그런저런 생각 없이 그냥 이름 석 자와 출생한 장소, 육사 31기 졸업, 현역 시 마지막 보직과 현재 소속 회사만 작성하여 덜렁 보냈다. 그 다음 날 카톡으로 그로부터 답변 메시지가 들어왔다. “선배님, 잘 받았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많이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나의 프로필이 그가 보기에 좀 초라해 보였나 보다. 나는 또 고민했다. 뭘 첨부해야 하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특별히 나를 여러 사람 앞에 소개할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2년 전에 갈헌(葛軒)의 도움으로 수필가로 등단했지만, 대중들에게 감동이나 감명을 줄 만한 글을 작성하지도 못했고 남들처럼 책을 저술한 적도 없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그렇다고 책을 발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서 이름 앞에 나의 호 ‘월몽’을 첨부해주십사 요청했다. “죄송합니다, 사무총장님. 저는 가방끈이 짧아서 더 이상 보여드릴 게 없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띄웠다.
우리는 가끔 친구 간에 대화하다가 실력이 모자라거나 내세울 만한 학력이나 경력이 미천할 때 가방끈이 짧다는 식의 비유법을 사용하곤 한다. 이런 비유가 왜 생겨났는지 그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추측하건대 가방은 학교 다닐 때 책을 넣고 다녔던 책가방을 뜻하는 것 같고, 끈은 가방 속에 얼마나 많은 책이 들어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준을 삼은 데서 이런 비유가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청소년기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의 책가방은 겉으로 봐도 빵빵하여 무거워 보였고 농땡이 친구들은 얇고 가벼워 보였던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는 교과서와 두꺼운 참고서, 그리고 공책과 필기구, 심지어 알루미늄 도시락도 두 개나 넣고 다닐 정도였으니 가방끈이 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중간 정도나 되었을까. 요즘 말로 가방끈은 스펙이었다.
통상 우리는 입사 시험을 볼 때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면담(interview)을 하게 된다. 입사의 당락에 결정적일 수도 있는 면담에 성공하기 위하여 사전에 자기소개서를 잘 작성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 속에는 자기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은 학력과 경력 그리고 자기의 생각과 철학 등이 담겨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차별성이다. 면담을 주관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독특한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학력에는 좋은 학교와 성적표가 포함되어야 하고 그 직장이 원하는 인재상에 나를 대입하여 특별히 설명해야만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스펙으로서 필수적이다.
올 4월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해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및 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을 때마다 출사표를 던진 지망자들의 가방끈이 소개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 소개서에는 미주알고주알 빡빡하게 자기를 설명한 것도 있고 대충 굵직한 것만 골라 써놓은 것도 있다. 그걸 전달하는 방법과 수단은 전단지나, 합법적인 절차의 방송 또는 유튜브를 통해서 유권자들에게 소개된다. 제한된 시간에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려야 하기에 별의별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구체적 내용은 주로 학력과 경력, 저서 및 사회활동 등이다. 소위 일류대학 출신과 석박사를 획득한 사람은 글자를 아주 크고 선명하게 인쇄해놓은 경우도 있고, 혹자는 우리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인물임(influencer)을 거론하며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경우도 있다. 속(俗)된 표현으로 가방끈이 짧은 사람도 있고 긴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방끈이 꼭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짧더라도 사회와 국민을 위하여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희생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 프로필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우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특별한 경험이나 노하우도 없으면서 과장되거나 허위로 표기한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돋보이려고 가방끈을 늘이기도 한다. 난무하는 선거전에서 모든 국민은 과연 누가 민의를 제대로 떠받들고 국가를 제대로 지키기 위한 옥석을 가진 선량인지 똑바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책을 고르고 읽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책의 저자다. 저자의 학력과 경력 그리고 생각과 철학을 보면 책에 담겨 있는 내용과 저자의 마음을 대충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프로필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가방끈의 길고 짧음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저자의 글에서 풍기는 냄새가 중요하다. 얼마나 독자에게 감동과 감명을 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한 마디로 공감대다. 글의 생명은 저자의 솔직담백과 진솔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오는 전율과 찌릿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길을 걷거나 등산을 할 때 가방끈이 너무 짧아도 안 되지만 너무 길어도 안 된다. 짧으면 어깨가 조여지고 길면 엉덩이 아래로 가방이 축 처지기 때문이다. 자기 몸에 맞게 적당한 길이로 조정하여야 한다. (2023.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