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어머니 주일(慈母主日, 어버이주일)
디모데후서 1:5, 요한복음1서 2:12-17
상동교회
1933. 5. 14.
시작은 美國 웨스트버지니아州 웹스타나村에 사는 안나짜비스孃이 別世한 母夫人을 爲하여 追悼會 연 것이 嚆矢가 되얏다.
世人言基督敎不知父母之恩, 甚哉,不知之甚也! 世人事父母, 或有孝子而多假面也. 或生時薄待而事後厚葬, 此謂之孝, 身行不義而對父母能奉則謂之孝, 擧例追從不遜故黜其妻, 今擧基督敎之敎訓, 對父母盡力事之, 主擧身親行之, 有貧婦人有一子, 爲人之傭, 洗濯裁縫得其賃而使敎其子, 其子多年遊學卒業, 而其母尙爲傭婦, 其子歸家時, 與友人同行至家, 路逢其母, 其母喜不自勝, 呼其子而語之, 其子聽若不聞, 其友問誰也, 答曰吾家之傭婦云. 甚哉世俗之薄也! 今說父母圖訓之思, 以警吾人孝心可也. 僉位已知之者, 然更聞之使益可也. 擧數條, 一父母常欲其子之善, 不求己之榮光, 而常求其子之榮光, 孟母三遷之敎, 文母胎敎, 金庾信之母訓, 乾提氏之成聖雄, 皆其例也. 敎會中其例甚多, 三友悅,듸모母皆其例也. 余曾聞京中某夫人, 其子爲郡守, 於其母夫人之生日, 多送物贐, 其母却之曰 汝爲郡守之後, 日聞惡聲, 此物皆汝之惡聲出也. 不可受云. 賢哉夫人也! 故吾等行一善, 思洽父母令名必果. 二父母常欲其子之國士, 不見王陵之母乎? 又不見摩西之母乎? 前者監理會有全牧師, 其言曰 吾曾爲辯護士, 其母曰汝棄此而爲主之事役可也. 每憶其幼時母夫人携其手往主日校, 此平生不可忘者也. 吾等常在父母之膝下, 奉事父母非孝也, 立身揚名以顯父母孝之始也. 且戰陣無勇非孝也, 男子初生父母以蓬蒿射四方者, 卽其子志在四方而爲大男也. 三父母常欲其子之免危險也. 兒初生家貧不能炊故房冷, 母恐兒病故, 母懷兒在腹上, 自己身冒寒突, 某夫人年至八十, 常戒其子曰不可往海邊也云, 其子年已六十也. 四父母常欲其子之貴, 余曾年應科, 母夫人做飯至夜半祭祀斗云, 吾至今不忘, 金弼淳之母, 送其子于京城, 其夫人每登山祈禱, 欲其子之卒業, 吾等果爲父母而獻此祈禱乎, 吾等愛子甚矣. 割此心之半, 事其父母則可爲孝子云. 誠哉是言! 父母曾愛子而爲子者, 不愛其父母者多, 主責猶人曰 고로반云, 恃舊敎五戒言孝.
어머니날의 시작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웹스터나 촌에 사는 안나 짜비스 양이 별세한 어머니를 위하여 추도회를 연 것이 효시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가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고 합니다. 이는 너무도 심하게 모르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모를 섬기는데 있어서 효자라고 일컫는 사람 중에는 가면을 쓴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부모가 살았을 때 박대하다가 죽은 뒤에 후하게 장사지내면 이런 사람을 효자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의롭지 못한 일을 하면서 부모를 상대하여서는 잘 모시면 효자라고 합니다. 예를 든다면 자신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자기의 아내를 축출한 자 같은 이를 말입니다.
여기 기독교의 교훈을 들어보겠습니다. 부모에 대하여 힘을 다하여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주님도 스스로 그 부모에게 효도를 행하였습니다.
어떤 가난한 부인이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남의 고용살이를 하면서 세탁일이나 바느질을 해 주고 받은 품삯으로 그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아들이 여러 해 동안 유학을 하고 졸업을 하였는데 그때도 그 어머니는 남의 고용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아들이 친구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길에서 그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어머니가 반가워서 그 자식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 자식이 못 들은 체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우리 집에 고용살이하는 여자라’고 하였답니다. 세속의 야박함이 이와 같이 심합니다.
지금 여기서 부모가 교훈을 주는 생각을 말하는 것은 우리들의 효심을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겠지마는 새로 들어봄으로써 유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대하여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부모는 늘 그 자식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영광은 바라지 않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 갔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있고, 주문왕의 어머니의 태교(胎敎)가 있으며, 신라 김유신장군의 어머니 교훈이 있습니다. 또 인도의 간디 어머니는 간디를 성웅으로 만든 일들이 다 그 예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예가 매우 많습니다. 사무엘이나 디모데 어머니가 다 그 예입니다.
내가 일찍 들은 이야기인데 서울의 어느 부인은 그 아들이 군수가 되어 부임하여 갔는데 어머니의 생일날 선물을 많이 보냈더랍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다 돌려보내면서 하는 말이 ‘네가 군수로 부임한 뒤에 그 지방으로부터 날마다 나쁜 소문이 전하여 왔었는데 지금 이 물건들도 너의 나쁜 소문에서 나온 것일 터이니 받을 수 없다’라고 하였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부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한 가지 착한 일을 함으로써 부모를 흡족하게 하는 좋은 명예가 반드시 결과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둘째, 부모는 늘 그 자식이 나라에 뛰어난 인재[國士]가 되기를 바랍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왕릉(王陵)이라는 사람을 충신으로 만든 그 어머니를 알지 못하십니까? 또 모세의 어머니를 보지 못하였습니까? 지난 날 감리교회에 전목사(全牧師)님이 있었는데, 그가 ‘내가 일찍이 변호사가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말하기를 너는 변호사직을 버리고 주님을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여 목사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늘 주일학교를 다닌 것이 생각난다고 하며 이일을 평생 못 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늘 부모 곁에 있어서 부모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고 세상에 출세하여 이름을 드날림으로써 부모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효도의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 나가서 용맹하지 못 한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남자가 처음 세상에 생겨났을 때 그 부모는 쑥대화살을 사방으로 쏘아 보내는데 이는 그 아들이 장래에 뜻을 사방으로 펴서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는 그 아들이 늘 위험을 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나자 집이 가난하여 불을 땔 수가 없어서 방이 차가우므로 어머니는 그 아이가 병이 들까봐 아이를 배 위에 품어 안고 자신은 차가운 냉돌에 등을 대고 잡니다. 어느 부인은 나이 팔십 살이 되었어도 늘 그 자식에게 훈계하기를 ‘바닷가에는 가지 말아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당시에 육십 살이었습니다.
넷째, 부모는 늘 그 자식이 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려고 하였는데 어머니께서 밥을 지어 늘 깊은 밤중에 북두칠성에 대고 제사를 올렸습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합니다. 김필순(金弼淳)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서울에 보내놓고 매일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서 그 아들이 학교에 졸업하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과연 부모를 위하여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기 자식은 매우 사랑합니다. 그 마음의 반만 베어내어 그 부모를 섬긴다면 가히 효자라고 이를 것입니다. 이 말은 과연 옳은 말입니다. 부모는 일찍이 그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자식은 그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주께서 유대인을 나무라시기를 ‘고르반’이라고 하여 부모를 섬길 것을 가지고 하나님만 섬기면 되느냐고 함으로써 십계명 5계명(舊敎五戒)을 믿는 것을 효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