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7시 반에 눈이 떠졌으나 그냥 침대에 있고 싶었고 10시 20분이 돼서야 일어났다. 그러나 하루를 시작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졸면서 이상한 꿈도 몇 번 꿨다. 자세가 불편해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몇 페이지를 읽었다.
아침에는 시간의 흐름이 저녁 때보다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아침에는 5분 단위, 10분 단위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고 하고 있는 것과 해야 할 것들이 명료하게 생각난다. 아침에 중요한 일을 처리하라는 말도 있잖은가.
내일은 7시 반에 일어나면 바로 일어나 앉아 있을 것이다. 3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씻으러 갈 것이다.
아침, 점심은 안 먹었다. 그냥 책을 계속 읽었다. 펼쳐놓은 인적성 책이 보였지만 풀기가 싫었다. 딱히 풀어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화정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예약 필요없이 그냥 와도 된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갈지 말지 고민했다.
정말 꼭 가야만 할까? 지금 당장은 괜찮은 것 같은데 가야만 할까? 의사 앞에서 내 얘기를 늘여놔도 괜찮을까? 막상 가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조금 있다가 무료해져서 유튜브를 틀었는데 개쩌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앨런 베커, 마인크래프트 소재로 애니메이션 올리던 작가가 수학, 물리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너무 쿨하고 수작이어서 커피를 내려와 감상했다.
밖에는 비가 거칠게 내렸다. 한화에서 문자가 왔다. 결과를 열어보니 서류 탈락이었다. 이 기분으로는 주말을 못 버틸 것 같아 옷을 갈아입고 정신과를 가기로 했다.
정신과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애드인 에듀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저번에 상담했던 로봇팔, 자율주행 과정을 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해 달란다. 이제 남은 카드가 없으니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하는 동안 학원 과장과 통화했다.
개강 전까지 파이썬을 좀 연습하고 GOS2 영상을 보라고 했다. 잘 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다른 학원을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분명 두 달동안은 여기에 매몰되어 다른 것을 찾아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떻게 말할 지 준비가 안 되어 처음엔 횡설수설했다. 의사도 열심히 메모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예 배경부터 말했다. 대학 진학, 전공에 대한 감정, 내가 원했던 진로, 졸업 후 공백, 등
말하면서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 내 신세가 처량해져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의사는 기계를 전공했어도 바이오쪽 대학원을 갔으면 두 전공을 들여다 보는 기회는 매우 좋았을 것이며 기계공학을 배경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바이오를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매우 좋았을 선택이라고 했다.
내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안 찾은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무척 고마웠다. 내 생각이 막연한 게 아니라 관련 분야 종사자의 지지를 얻었으니. 엊그제 연세대 대학원에 지원하지 않은 게 몹시 후회됐다. 의사의 말이 맞다면 나는 가서도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의대생이 증원됐으니 다시 수능을 봐서 들어가는 것도 30%정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런 선택들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그런 선택지들 중 하나를 향해 나아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 이유는 그 가능성들이 주는 달콤함에 약간 망상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붕 뜬 긴 기간동안 마음이 많이 무너졌을 거라며 원인은 천천히 알아보자는 말과 함께 항우울제 복용과 심리 진단 검사 결과지를 다음주 진료 때 갖고 오라는 처방을 받았다. 의사의 말을 하나라도 더 머리에 담아왔어야 했는데 감정에 복받쳐서 우느라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
마음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피아노 연습실을 들렀다. 오늘은 털콩 결과가 나오는 날이고, 결과가 안 좋으면 당분간 칠 것 같지 않으니 차라리 지금 연습을 해 놓는 게 나을 것이고 결과가 좋으면 하루라도 더 연습해야 하니 오늘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내 연주는 너무 시끄러운 것 같다. 이게 음악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자아도취에 빠지면 개선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지 못 한다. 1시간을 치니 어느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집에 돌아왔다.
저녁은 어제 노브랜드에서 산 흑돼지 목심을 구워먹었다. 엄마가 가지를 손질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칼에 베이고 말았다. 상처가 깊어 출혈이 심했다. 괜히 내가 표정이 안 좋은 채로 들어오니 엄마도 기분이 안 좋아져서 일을 서두르다가 다치신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나도 올 해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어 저 상처가 얼마나 따갑고 성가신지 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화가 났다. 나는 때로 엄마를 함부로 대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보다 어른이고 낳아주신 어머니인데.
8시가 되니 털콩 예선 결과 발표가 났다. 나는 탈락이었다. 탈락을 예상했던 이유는 미스터치일 줄 알았는데, 다른 참가자들도 미스터치는 많았다. 오히려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코멘트가 많았다. 박자의 불일정함, 부분부분 뭉개짐, 양 손이 제 갈길 가는 듯한 서두름, 너무 빠른 템포, 스타카토가 스타카티시모보다도 짧은 것, 프레이즈 시작과 끝의 처리, 전체를 보고 계획하여 진행하지 못한 점 등 신기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내가 레슨 받을 때 많이 지적 받은 부분들과 일치한다. 습관은 어디 가지 않나 보다. 코멘트 해준 내용들이 음악의 기본이라 내가 얼마나 성의없이 그리고 음악에 대한 고민 없이 연습을 하는지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뭔가를 잘 하려면 그 수준을 요구하는 평가 기준은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좋아한다고 열정을 어필해도 잘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잘 하려면 요구되는 조건 파악하고 모두 만족시키는 게 첫 번째의 목표가 돼야 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때로 망각해서 내멋대로 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음악의 경우 최종 목표는 나 잘 친다 자랑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고 감동을 받게끔 연주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특히 내가 잘 하고 싶은 영역이라면 더더욱, 평가를 무릅쓰고 도전할 용기가 있는지, 평가의 요구사항들을 이해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지금 하는 것의 목표와 궁극적인 목표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지(일전에 내가 어딘가에 썼던 상위 목표와 하위 목표와 관련 있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도 들어봤다. 본선 진출자들의 연주는 납득이 가능했고, 탈락한 사람들의 연주도 내 귀에는 훌륭하게 들렸다. 음악의 엄밀한 구분은 참 오랜 훈련과 재능이 필요한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삶의 피아노 영역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또 다른 쇼팽 에뛰드에 도전해서 이 곡 연주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이제 긴 곡을 쳐서 긴 흐름을 음악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계획 세우기에 도전할 필요가 생겼다.
베토벤을 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중장기적으로는, 이 취미를 이어갈 생각이라면 지금의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돈과 시간을 써서 전공자에게 레슨을 받아야만 퀄리티를 올릴 수 있다. 혼자서 하게 되면 더 긴 시간과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같이 포핸즈를 연주할 수 있는 취미 동료를 만났으면 좋겠다. 동호회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지도.
그리고 내 연주를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올려서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곡 완성은 기한을 두고 해야 한다. 한 곡을 1년 2년 끌어봤자 실력 향상도 더디고 다른 곡들을 만날 시간도 줄어든다.
약 먹고 자야겠다.
[인공지능 요약]
이 글은 한 개인의 하루 일과와 내면의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정신과 방문을 고민하다가 결국 방문하여 의사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상담 후 피아노 연습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려 하고, 저녁에는 가족과의 일상적인 사건을 겪습니다. 피아노 대회 예선 탈락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연주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음악적 목표를 설정합니다. 또한, 피아노 연습 방법과 향후 계획에 대해 고민하며, 취미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