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사람이 무엇이기에
히브리서 2:1-끝, 제(題)는 2절, 시편 8편
장 목사(張牧師)
此舊約大衛之詩, 而大衛幼時爲牧者生活, 仰觀穹蒼發見神之性能也. 東洋古諺曰, 人之始祖出于牛, 此何言也? 今觀牛而人不可出于牛. 或云猿爲人之始祖, 而亦不可信. 創世記曰神始造人以土云, 且以神之像造人, 人屬于神, 而神返屬于人. 日前新聞報內親王誕生, 而特生于皇室, 故云親王也. 예수以神之子, 返生于人, 世人欲以人種返屬于獸類而行, 獸行人不可以肉體行之, 肉體不可恃, 肉體雖强, 以顯微鏡不能見之. 黴菌一入肉內則病死. 靈的不然, 常常創作, 極其初則神性也. 故人亦創作者, 今觀方言則亦創作也. 朝鮮人造朝語, 日人造日語, 吾向往滿洲, 不知方言故大困, 今觀文字, 各國文異, 漢字縱書, 英語橫書, 各其創作, 東洋縱讀, 西人橫讀, 亦各異方, 亦皆創作, 天堂無文字, 獸類界亦無文字, 人亦造火, 天堂無火, 動物無火, 諸動物皆畏火, 山行者執火, 火亦創造, 衣服各國, 亦各異服, 에듸손亦創作者, 發明八十餘種, 世之文明利器皆創造, 人能創造自己也. 世人有善惡而皆自己爲之也. 行善亦自爲之, 行惡亦自爲之也. 古有요셥幼時見賣于埃及, 侍衛隊將官 此時此兒, 易爲落心, 而요셥 欲造自己, 主婦欲誘惑入獄, 後入相府, 自初至終無一人助요셥者, 必皆自爲也. 大衛幼生猶京, 而看指揮而牧羊, 見自然界而吟詩, 又被掃羅之禍, 常常愛掃羅當崇拜. 邊成玉氏生于貧家, 而欲學英語而終學英語而爲牧師, 今人多怨環境, 怨父母, 怨時代甚不可也. 예슈亦自造, 佛敎多詤說, 生于脇云者其何說, 其時手術何人也? 主依正則而生亦創作, 主曰汝爲世之光世之鹽, 亦創造環境之說也. 朝鮮之人當造環境而怨時代, 欲逃入北間島, 是何故無創造之性也. 日人不然, 欲造環境而入朝鮮多改造, 朝鮮人皆草屋柴扉而已也. 自食自衣可也. 余疾時家人餽叛甚無味, 人則不然, 人不自造則亡敗也. 或問人若有如是創造之力則何必信예수也. 余答曰地殼亦有生命, 而太陽不及則生物不發, 如是而人雖有生命, 而聖神不臨則生命不長也.
이것은 <구약성경> 중에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 목자(牧者)생활을 하며, 위로는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발견하였습니다.
동양의 옛 속담에 ‘인간의 시조는 소에서 났다’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소를 관찰해 보면 사람이 소에서 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원숭이가 인간의 시조라고 하는데 이 또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고 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일본 공주(內親王)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는데 특별히 황실(皇室)에서 태어났다 하여 친왕(親王)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인종을 가지고 짐승 무리에 소속시키고 짐승의 행동을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로써 짐승의 행동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비록 강하다고 하지만 현미경으로써 들여다 볼 수는 없습니다. 곰팡이 균[黴菌]이 한 번 육체 내에 들어가면 병들어 죽습니다. 영적(靈的)인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늘 새로 만들어지는 창작을 하는데 그 시초를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역시 창작자입니다. 지금 방언(方言 : 사투리)을 보면 방언도 역시 창작품입니다.
조선인은 조선말을 만들고, 일본인은 일본 말을 만듭니다. 내가 지난번에 만주를 갔는데 그 지방 말을 몰라서 큰 곤란을 겪었습니다. 오늘날 문자(文字)를 보면 각국의 글이 달라서 한자는 종서(縱書), 영어는 횡서(橫書)로 쓰도록 각기 창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동양은 세로로 읽고, 서양은 가로로 읽으니, 이와 같이 읽는 방향도 다르게 창작된 것입니다.
천당(天堂)에는 문자가 없으며 짐승에게도 문자가 없습니다. 사람은 또한 불을 만들지만 천당에는 불이 없고, 동물도 불이 없으며 모든 동물은 불을 두려워합니다. 그리하여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불을 들고 가는데 그 불도 역시 인간이 제작한 것입니다. 의복도 각국이 다 다른 의복을 입습니다. 에디슨은 역시 발명가입니다. 팔십여 종류를 발명하였으니 세상의 문명의 이기(利器)를 창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기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선악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자기가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곧 선을 행하는 것도 스스로 하는 것이고, 악을 만들어 내는 것도 역시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옛날 요셉이 어릴 때에 애굽의 시위대장에게 팔려갔는데, 이때 이 젊은이는 낙심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를 창조하려고 하였는데, 주부가 유혹을 함에따라 감옥에 들어갔고, 뒤에 정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 일의처음부터 끝까지 요셉을 도운 이가 한 사람도 없었고 반드시 모두자기가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유대의 서울에 태어나서 말을 지휘하고 양을 기르는 것을 보았으며 자연계를 보고 시를 읊었습니다. 또 사울의 화를 입었으나 사울을 사랑하고 공경하였습니다.
변성옥(邊成玉)씨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영어를 배우려고 하였고 마침내 영어를 배워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환경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시대를 원망하지만 이는 매우 옳지 못 합니다. 예수님도 역시 스스로 개척하셨습니다. 불교에는 황당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부처가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데 이것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 당시에 수술은 누가 하였습니까?
주님은 바른 법칙대로 태어났으니 역시 창작되었습니다. 주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는데 이 역시 환경을 창조하라는 말입니다. 조선 사람은 마땅히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대를 원망하며 북간도(北間島)로 도망가려고 합니다.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창조하려는 성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여 환경을 창조하려고 조선에 들어와서 개조를 많이 하였습니다. 조선 사람은 다 초가집에 가시로 만든 사립문뿐입니다. 스스로 먹고 입는 것으로 가하다고 합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집 안 사람이 밥을 지어주는데 매우 맛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패망합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사람이 만일 이와 같이 창조하는 힘이 있다면 하필 예수를 믿겠습니까?’하였습니다. 나는 답하기를 ‘땅껍질인 지각(地殼)에도 역시 생명이 있으므로, 태양이 그것을 쬐지 못하면 생물이 싹트지 못합니다. 이와 같으므로 사람이 비록 생명을 가졌으나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