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감정의 눈은 하나님을 보지 못함 / 요한복음 5:10-18
감정은 마귀에 속한 것이다. 마귀는 감정 있는 자의 눈과 마음을 가린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따르면, 참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을 버려야 한다. 예물을 드리려면 먼저 감정이 있는 사람과 화해하고 난 후에 예물을 드려야 한다. 감정이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도 때로 노하시고 분하셨다며 감정이 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태양을 구름 한 점만 가려도 빛을 발하지 못하듯이, 감정의 구름이 가득하면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없다. 이 구름을 없애려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어지러운 문제는 감정의 눈으로 인해 죄가 발생한다. 오늘날 우리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죄악상을 목격할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감정이 매우 심각했다. 그들의 마음에는 시기와 증오가 가득하여, 38년 동안 앓아오던 환자를 고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안식일에 침상을 가지고 간 것을 문제 삼았다. 율법주의자들은 은혜를 모르고 있었다.
요즘에도 철학자나 문인들은 자신이 아는 것만 주장하며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은 세상의 것이지만, 은혜는 천국의 것이다. 한국의 독립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국민은 이를 알지 못한다. 국회에서 대통령이 하나님을 말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무신론적 사고방식이다.
최근 영동 지방에 폭설이 내려 수백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백 채의 가옥이 파손되었으며 수백 척의 배가 침몰되었습니다. 또한 유럽에서는 혹한으로 인해 수천 명이 동사했다고 합니다. 이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예수님의 피를 범한 까닭에 이런 재앙이 내린 것입니다.
어떤 굴 속에 있는 물고기에게는 눈이 없습니다.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태양을 보지 못해서 눈이 쓸모없게 되어 없어졌다고 해석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을 가리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눈은 쓸모없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은 그 굴 속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영적인 눈이 없으면 죄가 생기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걱정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기 원한다면 먼저 감정을 버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차별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업신여기며 예수님까지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배척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오늘날까지 방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믿음 없고 패역한 세대를 얼마나 더 참으실지요. 주님, 우리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