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 심장 보호 방패
“이제부터 눈의 여왕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법력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은수님이 이미 전부터 이 마법을 쓰고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의 여왕이 되지 않은 것이고요.”
나는 마법의 마,자도 잘 알지 못 했기 때문에 초록 난쟁이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난 마법 같은 거 할 줄 몰라.”
“아까 제가 마법이 뭐라고 했죠?”
“상상력과 말”
“은수님은 어머니께서 얼음의 말을 쏟아낼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는 지긋지긋한 그 때를 떠올려봤다. 그래, 나는 엄마가 또 헛소리를 하려고 하면 내 심장을 보호하는 방패가 있다는 ‘상상’을 하곤 했지.
“아, 방패로 심장을 보호하는 상상을 했어!”
“바로 그겁니다. 은수님이 상상한 심장 보호 방패에는 실제로 힘이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장이 완전히 얼어붙지 않은 것이지요. 전에도 말했지만 은수님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배우지 않고서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부터는 그 심장 보호 방패가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거라고 믿도록 노력해봅니다. 모양도 자세히 생각해보고요. 그리고 한번 그려보세요. 마법력을 실체화하는 데는 그림도 큰 힘이 됩니다.”
나는 초록 난쟁이의 말을 듣고 왠지 신이 나서 스케치북을 꺼냈어. 여태까지 내가 나도 모르게 마법을 쓰고 있었다니 뭔가 기특한 느낌이 들었거든. 난쟁이가 자꾸 칭찬을 하는 것도 듣기 좋았어. 처음에는 듣기 좀 간지럽더니 계속 들으니까 마음에 힘이 되더라.
나는 스케치북에 내 심장을 보호해줄 방패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렸어. 조금 멋있게 그리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그리고 싶었는데 초록 난쟁이가 말리더라구. 그냥 자신의 마음 속에 지금 있는 방패 모양이 제일 강한 거래. 그래서 갈색의 테두리를 가진 평범한 방패를 그리곤 말았지. 하지만 내 마음에는 들었어.
내가 그림을 다 그리자 초록 난쟁이가 말했어.
“이 그림을 벽에 붙여두고 자주 보세요. 그리고 어머니가 공격을 시작하면 방패로 심장을 보호하는 상상을 강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계속 할수록 방패의 효과가 커질 것입니다.”
나는 방패가 그려진 그림을 마치 진짜 방패인 것처럼 끌어안아 봤어. 무언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쥔 느낌이라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거든. 여태까지 엄마가 내게 뱉는 나쁜 말들이 항상 끔찍하게 싫었지만 ‘심장 보호 방패’의 효력을 늘리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그것도 어느 정도 견딜만 할 것 같았어.
6회 - 1차 대결
심장 보호 방패를 써먹는 날은 역시 빨리 왔어. 엄마는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또 내게 차가운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지.
“은수 너 내가 집안정리 좀 똑바로 해놓으라고 했지? 엄마는 힘들게 일하는데 그런 것도 못해?”
이런 사소한 일이 시작이었어. 그러면서 그동안 엄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 행동들에 대해 날 깎아내리기 시작하지. 아주 예전에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그게 사실인줄 알고 엄마에게 미안해했지.
하지만 좀 자라서는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냥 엄마의 화풀이라는 걸 알았어. 그때부터는 한 귀로 듣고 흘리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
그리고 오늘! 나는 초록 난쟁이와 함께 연습한 심장 보호 방패를 사용하기로 했어. 우선 먼저 그림으로 그렸던 심장 보호 방패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생각했어. 엄마는 여전히 눈앞에서 얼음을 엄청 내뿜고 있었지. 그리고 그 방패를 내 심장 앞에 두는 상상을 했어. 크고 튼튼한 방패였지.
근데 글쎄 전에는 방패를 상상해도 그냥 좀 덜 괴로운 정도였는데 지금은 방패 앞에서 엄마의 얼음들이 막혀서 흩어지는 게 보이지 뭐야! 방패가 정말 잘 막아주고 있는 거였어. 나는 너무 신기하고 기뻤어. 왜냐하면 이제 엄마의 말들 때문에 밤에 혼자 눈물 흘리고 속상할 일이 적어졌거든.
아는 사람은 알거야. 가슴 아픈 말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마음에 남는 가시 같다는 것을. 우리 엄마의 말은 얼음 가시처럼 내 심장에 남아서 내 심장마저도 얼어붙게 만들려고 했어. 물론 똑똑한 내가 그걸 이렇게 막아내고 있지만 그동안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
어쩔 땐 차라리 엄머가 나를 때리면 어떨까 싶었어? 그러면 어딘가에 신고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언어폭력이라는 말이 있잖아? 말로 하는 폭력도 때리는 것만큼 사람은 아프게 한다고. 나는 기억하는 한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말로 항상 얻어맞아왔어. 그러다가 얼음으로까지 공격 당하고.
내가 심장 보호 방패를 세워두고 방패에만 집중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엄마의 말은 멈춰있었어. 이렇게 마음의 상처기 별로 없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본 건 처음이었어. 앞으로는 이러면 되겠구나 싶으니까 저절로 안심이 되더라.
내가 기억하는 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세상이 조금은 안전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했어. 항상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조금 있었는데 그게 조금 사라졌어.
‘나는 아무것도 못 하지 않아.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어.’
라는 말을 속으로 계속 말했어. 무언가 점점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