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부부들이 함께하는「들뫼꽃모임」의 10월 정기 나들이 날인 22일. 하루 종일 비가 이어진다는 일기 예보에 그 목적지가 변경되었습니다. 애초에는 국립식물원이 된 평창의 한국자생식물원과 ‘구원자의 정원’으로 번역할 수 있는 살바토레정원을 탐방할 예정이었지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주로 식물원이나 정원, 자연 문화유산 등을 탐방하며 밥도 함께 먹는 일이 우리 들뫼꽃모임의 오랜 활동이었습니다. 오늘의 나들이는 국립춘천박물관 관람과 삼악산 케이블카 등정. 비가 와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일정이었습니다.
춘천은 나의 학향(學鄕)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이곳 춘천에서 다녔기 때문입니다. 봄내 춘천(春川)은 아름다운 산과 호반의 도시지요. 이탈리아에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 나폴 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통영이라는 항구 도시가 있고, 북부 이탈리아의 내륙에 호수를 낀 아름다운 도시 코모(Como)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춘천이 있습니다. 1960년대 말의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와서 영어 회화(Spoken English)를 가르쳤던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일원이었던 제임스 카튼(James Cotton) 선생님은 춘천이 이탈리아의 호반 도시 코모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춘천 호반 풍경(자료: 네이버 블로그) 춘천은 학창시절의 많은 추억이 어려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떠난 지 5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옛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은 발견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습니다. 눈에 익은 구석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먼저 찾은 국립춘천박물관도 과거에는 산골의 야산이던 곳에 시립도서관과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과 함께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서편을 향하고 있는 미술관 본관의 오른편에는 가을꽃을 피우는 참느릅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단풍색을 머금기 시작하며 무성하게 서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감나무 한 그루는 노란 감을 달고 있었고요. 박물과 앞 참느릅나무 박물관 앞 감나무 박물관에서의 첫 번째 관람은 2층 전시실에 상설 전시 중인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 전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지혜를 얻은 성자를 아라한, 나한이라고 합니다. 오백나한은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 이후 그의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해 모인 5백 명의 나한을 말하는데, 이들 5백 성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돌을 깎아 새긴 것들이 간혹 남아 있습니다. 영월의 창령사(蒼嶺寺) 터 오백 석조 나한은 2001년 절터에서 발견되기 시작하여 모두 300여 나한 조각상이 발굴되었습니다. 많은 것들은 그 형체가 많이 부서지거나 크게 훼손되기도 했지만, 16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유물로 추정되는 것들이며 특이한 형상의 나한상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형체가 온전한 형태의 것들을 포함 약 100여 개의 나한상이 다소 어두운 명암의 전시실에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 크기는 석상의 높이가 30cm 남짓한 것들로 하나같이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의 것이었습니다. 그 자세는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아주 친근한 표정과 편안한 모습의 촌부를 닮아있고 더러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해학적이기도 합니다. 불도를 깨우친 보살이기보다는 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 도를 깨우친 보통사람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불교를 천대하던 조선 시대에도 불교가 민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시된 일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 사실 춘천박물관 관람의 백미는 전국 순회 전시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춘천박물관에서 전시 중인《〈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춘천박물관 특별전》이었습니다. “강원 별장에서 나누는 ‘수집가’와의 마지막 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특별전은 이건희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수많은 작품(2020년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사후에 이건희컬렉션으로 불리는 23,000점의 작품이 국가에 기증되었음) 중에서 국가지정문화유산 19건 24점을 포함하여 총 282점의 기증 유산이 전시된 것입니다. 전시품은 석조상, 도자기, 그림, 고문헌, 청동 불상, 고가구 등 국내외에서 수집한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시물 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뜨인 것은 여러 모양과 형태의 도자기였습니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의 여러 도자기 중에서도 역시 눈에 들어온 것은 국보로 지정된 조선백자〈대나무무늬 각병〉, 보물로 지정된 고려청자〈철채 인삼 잎 무늬 매병>과 조선백자〈동정추월무늬 항아리〉였습니다. 이 세 작품 모두 다른 보통의 청자나 백자와는 그 모양 자체가 달랐고,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또한 특별했습니다. 조선백자 대나무무늬 각병은 국보의 품격에 알맞게 이 각병 하나를 4면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의 출구 부분에 전시된 동정추월무늬 항아리에 그려진 청화의 그림은 중국 동정호의 물과 산이 아득하게 어우러진 풍경 속에 조각배 하나가 떠가는 모습인데, 흡사 춘천의 여유로운 호반 풍경을 닮은 것도 같았습니다. 조선백자 대나무무늬 각병(자료: 네이버 블로그) 철채 인삼 잎무늬 매병(자료: 네이버 블로그) 동정추월무늬 항아리 이번 전시회에는 한꺼번에 보여주기 아까운 작품들이 워낙 많은 탓인지 전시 기간 중에 순차적으로 작품을 교체해서 전시하는 작품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 전시된 작품의 자리에는 앞서 겸재 정선의〈인왕제색도〉(국보)가 전시된 바가 있었고, 지금은 단원 김홍도의〈추성부도〉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단원이 송나라 문학가인 구양수의 시〈추성부(秋聲賦)〉를 읽은 뒤 그 의미를 담은 그림이 추성부도입니다. 쓸쓸한 가을밤 나무 사이에서 들려오는 가을의 소리를 들으며 흘러간 삶의 무상함을 노래했다는 구양수의 시가 그림과 함께 김홍도의 글씨로 쓰여있습니다. 며칠 뒷면 이 그림의 자리에는 겸재 정선의〈금강산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합니다. 추성부도(자료: 네이버 블로그)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을 보고 기억에 남는 전시물은 그 수집가가 기록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수집했다는 한글 불교 서적입니다.〈석보상절(釋譜詳節)〉과〈월인석보(月印釋譜)〉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편찬된 석보상절은 부처의 일생과 설법 등을 한글로 펴낸 책입니다. 역시 세조가 직접 지은 월인석보는 불경을 한글로 풀이해서 지은 언해서입니다. 두 책 모두 한글과 한자, 그리고 크고 작은 글씨가 아름답게 조화된 멋진 디자인의 책입니다. 월인석보의 한 페이지 그러고 보니 어느 수집가라고 지칭된 인물인 고 이건희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작품을 모아서 개최하는 특별전에는 그간 빠지지 않고 발걸음을 이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8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이건희컬렉션 이중섭 특별전』에서는 그가 기증한 87점을 포함한 97점의 이중섭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근미술관 개관 20주년을 맞이하여 양구에서 2022년 8월부터 열리고 있던 박수근 특별전『박수근의 시간 – 미석의 공간』전시회에서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41점의 작품이 큰 비중을 점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4월 리움미술관에서 관람했던『조선의 백자』전시회도 고 이건희 회장 유업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국립춘천박물관에는 이 전시 이외에도 강원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시대별 전시 공간은 물론 역사 속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전시하는 공간, 그리고 별관으로 되어있는 어린이박물관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는 금강산도 식후경, 춘천중앙시장 골목에 있는 춘천 닭갈비거리의 한 맛집에서 매콤한 닭갈비 요리와 막국수로 점심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삼악산이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편안하게 삼악산 일대의 가을 산과 호반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세차지는 않지만 쉼 없이 내리는 가을비와 자욱한 운무가 시야를 가려서 아름답기만 할 한가을의 풍경과 정취는 즐길 수 없었습니다. 산을 걸어 오르내리며 거닐 수 있었던 고즈넉한 사찰 흥국사와 상원사의 가을 정취도 느낄 수 없었고요. 삼악산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춘천 풍경 (자료: 네이버 블로그) 몇 번이고 올랐던 삼악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7부 능선쯤의 산상 카페가 있는 곳까지 오르면서는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봄 소풍이나 가을 소풍 때 찾았던 강촌역 강변과 등선폭포. 개교기념일 행사를 기념하는 단축마라톤을 삼악산 인근까지 달려서 되돌아오고는 했습니다. 강촌역 쪽의 구곡폭포까지 걸어가서는 멱도 감고 산딸기를 따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서울 춘천 간 고속국도가 뚫린지라 경춘국도의 교통량은 그 옛 시절처럼 뜸하고 호젓하기만 했습니다. 한편 가려진 시야 때문에 삼악산 높은 곳에서도 춘천 시내를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소담하니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줄줄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 따위로 그 풍경이 어찌 변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기회에 다시 한번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지만 벌써 또 다른 나들이를 생각합니다. (202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