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과 북발해(北渤海)의 패망(敗亡)
발해(渤海)가 건국(建國)한지 200여년에 차차 쇠약(衰弱)하여 가더니 애왕(哀王) 25년 12월에 동몽고지방(東蒙古地方)에서 새로 일어난 요태조(遼太祖) 아보기(阿保機)가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내침(來侵)하거늘 여러 번 싸워 다 이기지 못하고 익년(翌年) 무술(戊戌) 정월(正月)에 부여(扶餘) 동평부(東平府)가 무너지고 국도(國道) 한홀성(汗忽城)이 이어 함락(陷落)됨에 애왕(哀王)이 요병(遼兵)에게 잡혀가고 최후(最後)까지 싸우던 남해(南海) 장령부(長領府)가 마저 무너지고 북발해(北渤海)가 망(亡)하니 발해유민(渤海遺民)들이 고국(故國)을 회복(回復)코자 하야 남해(南海)와 안변(安邊) 2부(府)는 동년(同年) 5월에 다시 기병(起兵)하고 철주랄사위균(銕州剌史衛均)은 7월에 기병(起兵)하고 왕제부(王弟部)는 부여성(扶餘城)에서 기병(起兵)하여 구투(舊鬪)하다가 마침내 패몰(敗沒)하고 태자(太子) 대광현(大光顯) 이하(以下) 귀족평민(貴族平民) 수만호(數萬戶)가 고려(高麗)에 와 붙이고 왕손(王孫) 열만화(烈萬華)는 홀로 북부(北部) 일우(一隅)에 정안국(定安國)을 세워 발해(渤海) 종사(宗祀)를 받드니 태조(太祖) 대조영(大祚榮)으로부터 애왕(哀王)까지 역세(歷世)가 14왕(王)이요 역년(歷年)이 228년 이러라.
- 한글
발해가 건국한 지 200여 년이 지나면서 점차 쇠퇴해 가던 중, 애왕 25년 12월에 동몽고 지방에서 새롭게 일어난 요나라 태조 아보기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왔습니다. 여러 번 싸웠지만 이기지 못하고, 이듬해 무술년 정월에 부여의 동평부가 함락되고 국도인 한홀성마저 함락되자 애왕이 요군에 잡혀갔습니다. 최후까지 싸웠던 남해 장령부까지 무너지면서 북발해가 망했습니다.
발해 유민들은 고국을 회복하고자 하여, 남해와 안변 두 부에서는 그해 5월에 다시 봉기했고, 철주랄사위균은 7월에, 왕제부는 부여성에서 봉기하여 싸웠지만 결국 패배했습니다. 태자 대광현 이하 귀족과 평민 수만 호가 고려로 건너왔고, 왕손 열만화는 홀로 북부 한 구석에 정안국을 세워 발해 종사를 받들었습니다. 태조 대조영에서 애왕까지 역대 왕은 14명이었고, 발해는 228년간 지속되었습니다.